'의상과 구룡의 쟁투'·'단하동천'·울진 정신사의 배태지 '주천대'...스토리텔링 보고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경북 울진군의 불영계곡은 하늘이 점지한 유토피아, '단하동천(丹霞洞天)'으로 오르는 길이다.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으로 불리는 울진 불영계곡이 푸른 물을 하늘로 퍼트리며 물안개에 싸여 가을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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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절벽과 속살이 환하게 들여다보이는 맑은 광천(光川, 빛내)을 품고, 바위와 소(沼)마다 사람과 자연을 엮어주는 이야기를 간직한, 스토리텔링의 보고인 울진 불영계곡이 가을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사진=울진군] 2025.10.09 nulcheon@newspim.com |
울진 불영계곡(佛影溪谷)은 경북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杏谷里)에서 서면 하원리(下院里) 불영사(佛影寺)에 이르는 15㎞에 달하는 웅장하고 수려한 계곡이다.
기암절벽과 속살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광천(光川, 빛내)을 품고, 바위와 소(沼)마다 사람과 자연을 엮어주는 이야기를 간직한, 스토리텔링의 보고이다.
그 품세가 인공으로는 도무지 흉내조차 낼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기괴하고 수려해 사람들은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으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1979년 12월 명승 제6호로 지정되었고 이어 1983년 10월 군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불영계곡은 누천 년 제자리를 지키며 바람과 비와 햇살에 제 몸을 맡겨 창옥벽(蒼玉壁)ㆍ의상대(義湘臺)ㆍ산태극(山太極)ㆍ수태극(水太極)ㆍ명경대(明鏡臺) 등 30여 개의 명소를 사람들에게 선사했다.
수려한 자연 풍광만 선사한 게 아니다. 불영계곡은 울진지역의 역사와 삶을 오롯이 반영하는 스토리텔링의 보고이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 불영계곡을 성역으로 삼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투영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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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대사와 구룡의 쟁투'를 품은 '신라 천년 고찰'인 경북 울진의 불영사.[사진=울진군]2025.10.09 nulcheon@newspim.com |
대표적인 것이 '의상대사와 구룡(九龍)의 쟁투'이다.
아득한 옛날, 한반도 도처를 떠돌며 불사를 일으키던 신라의 의상대사가 울진 온정 백암산 기슭에 '백암사(白巖寺)'를 창건하고 고개를 들어 서쪽을 보니 '싯달타가 수도하던 인도의 천축산을 닮은' 산을 보고 그곳을 향해 지팡이를 던졌다. 부처님을 모시기 위한 사찰을 짓기 위함이었다.
지팡이가 꽂혀 있는 곳에 당도하니 아홉 마리의 용이 길을 가로막았다.
의상대사는 혼신의 힘을 다해 구룡과 쟁투를 벌여 여덟 마리의 용을 퇴치하고 마지막 한 마리의 용과 일진일퇴의 사투를 펼친 끝에 마침내 '주천대(酒泉臺, 현 근남면 행곡리 구미 마을)'에서 용을 물리친다.
의상대사는 쟁투를 벌였던 아홉 마리의 용과의 인연을 빌어 사찰을 창건하고 '구룡사(九龍寺)'라 이름 지었다. 이후 구룡사는 '용이 살던 못에 부처의 설법 형상'이 비치자 '불영사(佛影寺)'로 불문의 이름을 바꿨다.
의상과 구룡이 석 달 열흘에 걸쳐 벌인 사투(死鬪)로 형성된 것이 오늘날의 '감입 사행 계곡'인 불영계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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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조선조 울진지역 유교 철학사의 배태지이자 정신사의 요람인 경북 울진군 근남면 주천대.2025.10.09 nulcheon@newspim.com |
의상에게 패한 용이 하늘로 올랐다는 '주천대'는 또 다른 세계관인 유학(儒學)의 울진지역 발상지이다.
울진이 낳은 대철학자이자 천문학자인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는 이곳 주천대에서 울진 철학의 대계를 세웠으며, 만휴(萬休) 임유후(任有後, 1601년~1673년)와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1645~1703)은 임천(臨川) 남세영(南世英),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년~1722년)과 함께 울진지역 철학의 숲을 이뤘다.
국내 최고의 비구니 학습 도량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불영사로 들어서는 초입의 깎은 듯 매끄러운 절벽에 '단하동천(丹霞洞天)'의 네 글자가 또렷하게 음각돼 있다.
'붉은 노을이 걸린 지상의 낙원'이라는 뜻을 지닌 '단하동천'. '동천(洞天)'은 '천상의 동네'라는 의미로 도가(道家) 사상이 투영돼 있다.
의상대사가 불영에서 부처님의 세상을 열기 전, 울진 사람들은 이곳을 '천상의 비처'로 여기고 '붉은 노을과 흰 물안개와 푸른 물'이 솟는 이곳의 우람한 절벽에 '丹霞洞天'' 네 글자를 새기고 '사람살이의 평온'을 갈망했다.
웅장한 불영계곡을 밟고 계곡이 빚은 순백의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비처인 '단하동천'에서 천년 사찰인 불영사로 이어지는 길은 '신(神)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이자 가히 천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nulche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