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4일 치러진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이 승리하면서 일본은 사상 첫 여성 총리의 탄생을 눈앞에 두게 됐다.
국회 총리 지명선거가 예정된 15일 이후 '다카이치 시대'가 열리면, 한일 관계에도 새로운 변화가 불가피하다. 특히 한국과 일본 관계의 향방을 좌우할 최대 변수로 꼽히는 것은 바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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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이 의원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 야스쿠니, 한일 관계의 뇌관
다카이치는 자민당 내에서도 보수색이 강한 인물로 꼽힌다. 위안부 문제나 역사 교과서 기술과 같은 사안에서 "일본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반복해왔고, 전통적 가족 제도와 성 역할을 강조하는 사회적 보수주의 성향도 두드러진다.
특히 한국 등 주변국과 갈등을 빚어온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관련해서는 거의 매해 참배해왔으며, 이번 총재 선거 과정에서도 "종교와 신앙은 개인의 자유"라며 향후 참배 여부를 명확히 부인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야스쿠니 참배 문제는 전범 미화와 역사 왜곡과 직결된 민감한 사안이기에, 다카이치가 총리 취임 직후 야스쿠니 신사를 찾을 경우 한일 관계는 곧바로 냉각기에 들어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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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치러진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이 승리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 안보와 경제 현실은 '협력' 요인
그러나 양국 관계가 갈등만으로 채워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점차 고도화되고 있고,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되면서 동아시아에서의 안보 협력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도 반도체, 배터리, 핵심 소재 공급망 안정화는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전략적 과제다. 다카이치가 경제안보담당상 시절 강조한 "산업과 안보의 일체화"라는 구상은 이 같은 분야에서 협력의 필요성을 오히려 부각시킨다.
다시 말해 역사 문제로 갈등이 불가피하더라도 안보·경제에서 실리적 협력이 병행되는 '이중 궤도'가 현실적이라는 관측이다.
일본 내에서는 "다카이치가 보수적 색채가 짙은 것은 사실이지만, 자민당이 의회 과반을 상실한 상황에서 총리가 지나치게 강경한 노선을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다"며, "실제 국정은 정치적 제약 속에서 안보·경제 실리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의 KEIA(한미경제연구소)는 "미국 역시 한일 협력 강화를 요구할 것"이라며, "다카이치가 미일 동맹을 최우선시하는 만큼 한국과의 관계가 극단적으로 악화되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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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이 4일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후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손을 맞잡고 축하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 역사문제 정치화하면 한일 대립 고착화
향후 한일 관계는 크게 세 가지 시나리오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관리된 갈등'이다. 역사 문제에서 충돌은 이어지지만 안보·경제 협력이 병행되는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다. 두 번째는 '단발적 충돌'이다. 야스쿠니 참배나 관련 발언이 나올 때마다 외교 마찰이 반복돼 관계가 개선과 악화를 오가는 불안정한 국면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구조적 악화' 시나리오다. 다카이치가 역사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며 한국과의 대립이 고착화되는 경우다. 이 경우에는 한미일 안보 협력에도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다카이치 정부 출범 후 초기 100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총리 취임 직후 야스쿠니 참배 여부는 단기적 한일 관계의 성격을 결정할 핵심 변수다. 외교·안보 라인 내각 인선은 협상 여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다카이치 사나에의 사상 첫 여성 총리 취임은 일본 정치사에서 상징적 전환점이 될 사건이다. 그러나 한일 관계에서는 야스쿠니라는 오래된 뇌관이 여전히 남아 있다.
다카이치가 일본의 새 총리로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양국은 단기적 갈등과 실리적 협력 사이에서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goldendo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