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액공제 종료로 전기차 판매 위축 불가피…유럽 사례 재현 우려
중고 전기차 급성장·中 공급망 규제, 업계에 기회 요인
드론·휴머노이드·ESS 등 차세대 수요 선점 전략 시급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미국이 30일(현지시간) 전기차 구매세액공제를 종료하면서 한국 배터리 산업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대 7500달러(약 1000만 원)에 달했던 세액공제가 사라지면 전기차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고, 이는 곧 한국 기업의 판매와 수익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다만 중국을 겨냥한 공급망 규제가 강화되면서 일부 분야에서는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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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취임식에서 전기차 보조금 철회 계획을 밝힌 트럼프 대통령 [사진=뉴스핌DB] |
◆유럽서 이미 확인된 보조금 효과…美 시장도 '수요 위축' 불가피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세액공제 종료 이후 전기차 수요 위축과 한국 배터리 기업의 판매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전기차 보조금이 축소되거나 폐지된 유럽에서는 시장 재편이 현실화됐다. 산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과 프랑스는 보조금이 축소되자 전기차 판매가 각각 27.4%, 2.6% 줄었고, 스웨덴도 15.9% 감소했다. 반대로 보조금이 유지된 네덜란드(15.6%), 벨기에(36.9%)는 성장세를 이어갔다. 이에 따라 유럽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점유율은 2022년 63.5%에서 2024년 48.8%로 급락한 반면, 중국은 같은 기간 34%에서 47.8%로 치솟으며 한국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산업연구원은 "유럽 사례에서 보듯 보조금 정책이 전기차 수요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라며 "미국도 세액공제 종료 이후 전기차 수요 위축과 한국 배터리 기업의 판매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운영되던 세액공제가 폐지되면 소비자는 즉각적인 가격 인상 부담을 떠안게 되고, 이는 시장 위축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매출 감소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배경에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가 있다. 배터리 1kWh당 최대 45달러를 지원하는 제도지만, 판매량이 줄면 세액공제 규모 역시 감소한다. 산업연구원은 "전기차 세액공제 종료는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구조"라며 "580GWh 규모로 진행 중인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 계획도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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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전경 [사진=현대차그룹] |
◆中 규제 강화·중고 전기차 열풍…K-배터리의 새로운 기회
반대로 한국 기업에 불리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는 2027년부터 중국 기업이 금지외국기관(PFE)으로 지정돼 AMPC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면서 미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상대적 우위를 확보할 가능성이 커졌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중국산 배터리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경우, 유럽에서처럼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가 가격 경쟁력으로 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은 재현되기 어렵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보조금 종료와 별개로 미국 현지 내 살아난 중고 전기차 인기는 배터리업계의 또 다른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지난 4월 미국 중고 전기차 판매는 전월 대비 14.4% 증가한 3만8763대를 기록했으며, 전년 대비로는 60.6%나 급증했다. 또 올 2분기 중고 전기차 판매는 전분기보다 27%, 전년 대비 45%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인기는 몇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먼저 신차 보조금 축소로 전기차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고차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 세액공제 축소·폐지 움직임으로 전기차 신차 가격이 내연차 대비 여전히 1만 달러 안팎 비싸다는 점이 소비자 선택을 제한하고 있다.
또 테슬라를 비롯한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판매 부진과 재고 조정 과정에서 대규모 중고 매물을 내놓으면서 시장에 공급이 크게 늘었다. 이는 소비자 입장에서 선택지를 넓히고 가격 협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마지막으로 중고 전기차의 평균 거래가격이 1년 새 30% 이상 떨어지면서 가격 접근성이 한층 개선됐다. 3만 달러 이하 가격대 매물이 확대되자 전기차를 처음 경험하려는 수요층까지 유입되며 중고 전기차 시장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배터리업계는 군사용 드론과 휴머노이드 로봇 등 차세대 산업에서 신수요를 창출하고,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소재 분야에서 미국 시장 기회를 적극 확대해야 한다"며 "전기차 배터리 기술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고 공급망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sy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