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송주원 기자 = 지난 19일,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 회의 취재를 마치고 나오면서 문득 5년 전 일이 떠올랐다.
기자는 그때 서울중앙지법을 출입 중이었다. 법원 재판은 주요 증인이 나오거나 하는 등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첫 재판과 결심 공판, 선고기일에만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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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원 사회부 기자 |
2020년 9월 23일. 그날도 기자 입장에서는 흔하디 흔한 속행 공판이 있던 날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피고인 측 변호인단이 기자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공판 직전 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겠다는 것이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재판이었다.
화교 출신 탈북민으로 2011년부터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던 유우성 씨는 국내 탈북자들의 정보를 동생 유가려 씨를 통해 북한 보위부에 넘겨준 혐의로 2013년 기소됐으나 검찰의 증거가 허위로 드러나면서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이 재판은 국가정보원 조사관들이 가려 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가해 자신의 오빠가 간첩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강요한 사건이었다. 법원은 피고인이 국정원 직원이라는 이유로 앞선 재판들을 비공개로 진행했고,
이에 변호인단이 공개재판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것이었다. 재판 직전 재판이 열리는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기 때문에 기자회견이 끝난 뒤 대부분의 기자들이 함께 법정에 들어갔다.
변호인단은 법정에서 "국정원 직원 신분을 악용해 고문 범죄를 행한 피고인들이 재판에 와 이 신분을 이용해 이익을 보고 있다. 수많은 고문 행위를 직접 실행한 피고인들의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건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보도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1, 2차 재판은 지났지만 지금부터라도 형사소송법과 헌법에 의거해 비공개 신청을 기각해 달라"라고 재판부에 강하게 건의했다.
재판부는 공개재판으로 진행하돼, 국정원 조직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내용을 심리할 때만 방청을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순간 과연 변호인단이 기자회견을 열지 않고, 으레 다른 속행 공판들이 그렇듯 기자들의 관심이 없었다면 이 같은 결정이 나왔을까 하는 의문이 스쳤다.
인사 발령으로 기자가 법원을 떠난 후 이 사건이 대법원에서 무죄로 최종 결론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차피 무죄로 결론 날 사건, 유난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기자의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그날 재판을 공개함으로써 법원 판단은 더욱 권위를 얻었다.
우리나라는 국가범죄로 개인이 희생되고 법으로도 구제받지 못한 트라우마를 가진 나라다. 아무리 시대가 변한들 개인에 대한 국가의 폭력 여부를 가리는 사건, 만약 변호인 요청에도 재판부가 비공개를 고수했다면 법원의 무죄 판단은 이런저런 오해를 낳았을 것이다.
무용론에 이어 해체론까지 대두된 끝에 가까스로 다시 태어난 국교위가 권위를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건 투명성이라 생각하는 이유다.
국교위 1기 활동은 비밀 유지 기조 아래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의 개혁을 책임지는 대통령 직속 기관이지만 국민들은 도대체 3년간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차정인 신임 위원장 취임 이후 처음으로 공개된 회의에서는 이배용 전 위원장의 '매관매직 의혹'이 터진 직후에 열린 긴급회의 내용마저 활동기록으로 보존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비밀은 불필요한 오해를 키우는 법이다. 만약 국교위 1기 3년간 활동내용이 투명하게 공개됐다면 국교위원들이 흘린 구슬땀의 양 역시 알 수 있었을 것이고, 지금과 같이 뚜렷한 성과 없이 1기를 마무리했더라도 해체론까지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반대로 3년 간의 나태와 과오가 낱낱이 드러났다면 그때마다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받으며 지금보다 기관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첫 공개회의에서 한 위원은 회의가 공개된데 "오늘 회의하면서 언론에 공개되는 게 의아했다. (회의 공개가) 새롭게 적용되는 규정이라면 의견을 모으는 것이 아름답지 않겠나"라고 불쾌함을 표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우리나라 교육에 사명감을 가진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백 년의 미래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고민하는 현장을 보며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국민들이 더 이상 실망감을 느끼지 않고 아름다움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도록, 국교위가 더욱 솔직해지기를 바란다.
jane9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