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우크라이나가 향후 러시아의 재침략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미국·유럽 등 서방의 어떤 안전보장 약속보다 군사력 증강이 더욱 절실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가 장기적 생존을 위해 군비 확충에 전력투구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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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 로이터=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왼쪽)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주미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마르크 뤼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 등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유럽의 정상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양자회담을 마치고 온 젤렌스키 대통령으로부터 회담 내용을 듣고, 이후 이어질 확대정상회담에서 내세울 유럽의 전략과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2025.08.19. ihjang67@newspim.com |
우크라이나는 냉전 해체 이후 세계 열강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았지만 결국 러시아로부터 침략을 받게 됐고 최근 전쟁 종식과 평화 정착, 전후 다국적군 파병 등과 관련된 서방의 논의도 뚜렷한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NYT는 "우크라이나는 유럽이 자금을 지원하는 대규모 군비 증강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는 미국의 지원이 줄어들고 서방의 안전보장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군사력만이 국가 생존을 보장하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호르 클리멘코 우크라이나 내무장관은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항상 전투 태세를 갖춘 완벽하게 훈련된 군대"라고 말했다.
◆ 유럽 자금 지원으로 패트리엇 등 적극 구매
현재 우크라이나의 군비 증강에 결정적 도움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유럽의 국방비 증액 전략이다.
유럽연합(EU)은 올 들어 '유럽 재무장' 프로젝트에 돌입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도 강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지키지 못하면 유럽도 위험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3월 총 8000억 유로에 달하는 자금을 동원해 유럽의 군사력 증강과 무기 산업 육성을 추진하는 '유럽 재무장 계획(ReArm Europe Plan)'을 발표했다. 특히 EU가 27개 회원국에게 제공하는 1500억 유로의 대출을 통해 각종 무기를 공동 구매하고, 이중 일부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도록 했다.
실제로 지난달 28일 미 국무부는 우크라이나에 총 8억2500만 달러(약 1조1500억원) 규모의 무기를 판매하겠다고 발표했다. 판매 무기에는 장거리 순항미사일 3500발과 GPS 내비게이션 키트 등이 포함됐다. 비용은 덴마크와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이 내기로 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최근 "우크라이나는 잠재적 침략자들에게 소화되지 않는 강철 고슴도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NYT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EU의 지원을 통해 매달 10억 달러 규모의 무기 구매를 기대하고 있다"며 "특히 미국산 패트리엇 방공 시스템 도입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900억 달러 상당의 미국산 무기 구매를 제안하기도 했다. 구매 자금의 대부분은 유럽이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 장거리 순항 미사일 등 자체 무기 제작에도 심혈
우크라이나는 자체적으로 무기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능력을 갖추는 데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 플라밍고(Flamingo) FP-5의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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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로이=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우크라이나에 배치된 패트리엇 방공시스템의 모습. 장소가 어디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2025.07.17. ihjang67@newspim.com |
최대 사정거리가 3000㎞에 달하는 이 미사일은 실전에 배치되면 직선거리가 약 750㎞ 정도인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를 직접 타격할 수 있다. 특히 탄두 무게가 1150㎏에 달해 우크라이나가 현재 보유한 어떤 미사일보다 파괴력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는 또 지난 6월 자체 개발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사프산(Sapsan)에 대한 시험 발사에 성공했으며 양산 과정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이 미사일의 사거리는 약 300㎞ 정도이며 탄두 중량은 480㎏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러한 무기들이 서방의 어떤 안전 보장 약속보다 러시아에 대한 훨씬 강력한 억제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대 무기 전문가 파비안 호프만은 "플라밍고와 같은 대량 생산된 장거리 전략 무기는 전후 유럽 질서에서 우크라이나의 가장 강력한 안보 보장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의 뼈저린 교훈
옛 소련이 무너지고 냉전이 해체된 직후인 1994년 12월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영국, 러시아 등이 참여한 가운데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영토와 주권을 보장받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1900여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는 러시아·미국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핵무기 보유량이었다. 하지만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통해 이 핵무기를 모두 러시아에 넘겨줬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보장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지난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 민병대 세력의 무장 투쟁을 적극 지원했다. 이어 2022년 2월 말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격적인 기습 침략을 단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