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전환기 업무보고 빗발…정부부처 '체력전' 돌입
용산·국정위 회의…"몸이 5개여도 모자랄 지경" 토로
[세종=뉴스핌] 이정아 기자 = "아침에 세종에서 출발해 정부서울청사에 보고하고, 오후엔 예금보험공사 들렀다가 곧장 반포에 있는 서울지방조달청에 갔어요. 저녁 먹을 시간도 없이 다시 세종으로 내려왔죠. 길 위에서만 5시간을 버렸어요."
최근 한 경제부처 국장급 관계자가 털어놓은 일상입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신임 장차관 업무보고가 빗발치면서 서울↔세종 왕복 출장이 이어지고 있는 건데요. 대통령실과 국정기획위원회가 잇따라 회의를 소집하면서 경제부처 공무원들은 하루가 다르게 지쳐가고 있습니다.
정부세종청사에서 정부서울청사까지 직선거리로만 약 130㎞. 하지만 공무원들이 오가는 현실적인 거리는 그 이상입니다. 교통체증까지 겹치면 왕복 5시간은 기본입니다. 기재부 한 관계자는 "어느 하루는 지도에서 거리를 찍어봤더니 276㎞가 나왔다"며 "서울 전역을 누비면서 식사를 거르는 일도 제법 된다"고 토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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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ChatGPT] |
서울에서 하루 두세 군데 기관을 돌고 다시 세종으로 내려오는 건 더 이상 예외적인 일이 아니게 됐습니다. 대통령실은 경제부처 보고를 수시로 요구하고, 국정위는 전날 밤에 회의 일정을 통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한 경제부처 과장급 관계자는 "전날 오후 8~9시에 내일 아침 회의 연락을 받으면 바로 서울로 올라갈 준비를 한다"며 "덕분에 같이 야근해야 하는 과 직원들에게 미안하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대통령실과 국정위 사이에서 업무보고 방식이나 정책 우선순위를 두고 엇갈리는 기류가 감지되기도 합니다. 경제부처 또 다른 국장급 관계자는 "용산과 국정위가 서로 성과를 내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일례로 대통령실은 국정위에 일단 업무를 보고하라고 하고, 국정위는 '통실에도 자료를 올렸냐'고 묻는다. 우리는 둘 다 챙겨야 하므로 이중고"라고 밝힐 정도인데요.
아직도 문제는 남아있습니다. 이달 말 세법개정안 발표가 예정돼 있지만, 국정과제가 확정되지 않아 기재부 세제실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산실 상황도 녹록지 않습니다. 내년도 예산안 편성을 8월 말까지 마무리해야 하는데,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이 불투명한 탓에 매일 야근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재부 예산실 한 관계자는 "예산 총액이 확정돼야 부처들과 협상을 시작하는데, 그걸 잡아줄 국정과제와 경제정책 밑그림이 없다"며 "저녁을 먹다가 밤에 다시 들어와 근무하는 건 양반이고, 하루를 꼬박 야근하다 새벽 6시 헬스장 샤워장에서 씻고 재출근하는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세종 관가는 이 상황을 두고 '지독한 체력전'이라고 부릅니다. 부처별로 장차관 업무보고까지 겹치며 공무원들의 일정은 숨 돌릴 틈이 없기 때문인데요. 또 다른 경제부처 관계자는 "장차관 업무보고 자료 만들다가 밤샘하고, 새벽에 서울 가서 보고하고, 바로 세종으로 내려와 다시 자료 수정한다"며 "어서 빨리 이 기간이 흘러가길 바라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정권 교체기인 지금, 공무원들의 출장 기록이 국정의 무게를 대신 말해주고 있습니다.
plu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