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사실상 같은 절차 반복해
1987년 이래 합의 성공 7회뿐
'특고' 등 비임금 노동자 급증세
영향력부터 제도 전반 고찰해야
[세종=뉴스핌] 양가희 기자 = 내년도 최저임금을 정하기 위한 최저임금위원회 심의가 한창이다. 최저임금이 각종 임금과 수당 등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그 심의가 중요하지만, 실제 논의 과정은 사실상 같은 단계가 매년 반복되면서 소모적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올해도 물 건너 간' '법정기한 또' '내년으로 미뤘다' '불참' '파행' 반쪽 회의' '또 무산' 등 최저임금위원회 앞뒤로 붙는 수식어와 서술어는 심의 절차와 내용의 한계를 보여준다. 정부는 2019년과 올해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을 발표한 바 있으나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혁신적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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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희 경제부 기자 |
현행 최저임금법 및 동법 시행령에 따르면 매년 3월 31일까지 고용노동부 장관이 위원회에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한다. 고용부 장관의 요청에 따라 4월경 최저임금위원회의 첫 전원회의가 시작된다. 간혹 첫 자리부터 파행에 이르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상견레 수준에서 마무리된다.
두 번째 전원회의부터는 노사 간 신경전이 팽팽해진다. 최근의 쟁점 두 가지는 특수고용직(특고) 및 플랫폼 종사자 대상 최저임금 적용 보장과 업종별 최저임금 구분 적용이다. 근로자 대표는 전자에 찬성하고 후자에 반대한다. 사용자 대표는 반대로 전자에 반대하고 후자에 찬성한다. 논의가 차례대로 일단락되면 마지막으로 실제 최저임금 논의가 시작된다.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위한 공식 논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사용자 위원과 근로자 위원 각각에 최초 요구안을 제시하도록 요청해야 시작한다. 최초 요구안이 나오면 다음은 합의점을 찾기 위한 시간이다. 이 과정도 쉽지 않다. 1987년부터 2024년까지 38회의 최저임금 결정 가운데 노사공이 합의한 적은 7회에 불과하고, 나머지 31회는 표결에 부쳐 공익위원안이나 근로자안, 사용자안 가운데 하나로 결정됐다.
최초 요구안 제시 요청 전까지 통상 반복되는 일종의 '역할극'을 거치면 5~6차 회의가 지나간다. 실제 최저임금 논의에 착수해도 노사가 각자 의견을 개진하다 보면 간혹 분위기가 과열돼 회의가 파행에 이를 때도 있다. 결국 내년도 최저임금 최종 결정을 위한 논의는 마지막 전원회의 즈음에 집중된다. 이때가 되면 몇 시간씩 이어지는 마라톤 회의, 자정을 넘기는 밤샘 회의 등이 매년 예사로 이뤄진다.
법령에 따르면 최임위는 고용부 장관 요청을 받은 후 90일 이내 심의를 마쳐야 하고, 고용부 장관은 매년 8월 5일까지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한다. 법정 심의기한 준수는 의무가 아닌 일종의 훈시규정이기 때문인지 실제 논의에 돌입하기 위한 예열이 길다. 그간 법정 기한이 준수된 사례는 9회에 불과하다.
이번에도 공익위원이 기한 준수를 강조했으나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4월 열린 1차 전원회의에서 권순원 공익위원 간사는 "공익위원들은 법정 기한 내에 심의 완료하는 것이 최저임금으로 인한 정치 경제적 불확실성을 줄이고 고용과 경영의 예측 가능성을 제고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올해 법정 기한은 오는 29일까지다. 최초 요구안 제시 요청은 지난 10일 열린 4차 전원회의서도 이뤄지지 않았다.
논의 장기화가 특히 소모적이라고 비판받는 이유는 노사가 매년 비슷한 근거를 대며 전년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논리구조를 반복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일 것이다. 노사가 각자 양보할 부분과 양보하지 못할 부분을 구별해 무조건 반대가 아닌 생산적 논의를 한다면 현행 결정체계에서도 최임위를 향한 부정적 판단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1987년부터 2024년까지 38회의 심의 가운데 합의에 성공한 건 7회에 불과하다는 데에서 현행 체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반감된다. 특수고용직·플랫폼 업종 등 '비임금 노동자'가 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233만4768명 증가하면서 최저임금의 영향력과 그 위치에 대한 의문도 인다. 고용형태가 급변하고 있는 지금 최저임금제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
shee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