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젠 1년에 두 번 맞는 주사제
머크 하루 한 번 알약 개발
버브 영구적인 유전자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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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혈관 질환 치료의 패러다임 변화가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월가는 혁신을 주도하는 제약주에 선제적으로 베팅하는 움직임이다.
40여년 전 콜레스테롤 억제제인 스타틴(statin)의 등장 이후에도 심장 마비와 뇌졸중은 전세계 사망 원인 1위로 손꼽힌다. 미국인들 가운데 이른바 '나쁜 콜레스테롤'로 알려진 LDL 콜레스테롤이 높은 인구가 4분의 1에 달한다. 이 중 스타틴을 처방 받는 환자는 절반 가량이고, 약을 복용하는 환자의 10% 가량은 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개선되지 않는 실정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알약부터 주사제, 유전자 편집까지 다양한 형태의 혈관 질환 치료제가 개발중이고, 2025년부터 앞으로 2~3년 사이 중차대한 임상시험 결과와 함께 신약 승인이 이뤄질 전망이다. 약품 개발이 성공적일 경우 앞으로 수 년 이내에 수 천명의 생명을 구하는 한편 제약업체의 비약적인 이익 성장이 기대돼 월가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제약사 리제네론 파머슈티컬스(REGN)과 프랑스의 사노피(SNY)는 지난 2015년 스타틴에서 진일보한 치료제 개발에 성공했다. 2주에 한 번씩 맞는 주사제 프랄루엔트(Praluent)를 출시한 것. 이들 업체가 개발한 프랄루엔트는 혈중 LDL 수치를 악화시키는 PCSK9이라는 효소를 제거하는 항체 주사다.
몇 주 뒤 미국 제약사 암젠(AMGN)도 PCSK9 항체 주사 레피타(Repitha)를 출시했고, 2021년에는 노바티스가 렉비오(Leqvio)를 출시했다. 이들 중 렉비오가 가장 커다란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1년에 두 번만 맞는 주사제로, PCSK9을 만드는 유전적 지시를 차단하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PCSK9 항체 주사는 LDL 수치가 높은 환자들에게 생명줄이나 다름 없지만 정기적으로 주사를 맞아야 하고, 평생 3만달러 가량의 치료비가 발생한다. 비용과 불편함으로 인해 약효에 비해 제약사들의 매출이 기대만큼 크지는 않은 실정이다. 리제네론과 사노피의 프랄루엔트는 2024년 5억8500만달러, 암젠의 레파타와 노바티스의 렉비오는 각각 22억달러와 2억6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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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브 연구진의 손 [사진=블룸버그] |
미국 공룡 제약사 머크(MRK)가 기존 PCSK9 항체 주사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코드명 MK-0616으로 LDD 수치를 개선하기 위한 신약 개발에 뛰어든 것. 업체는 이 약물이 거대한 매출을 올리는 면역 항암제 키트루다의 특허 만료 이후 매출 공백을 상당 부분 채울 것으로 기대한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머크는 지난 4월7일 유전성 고 LDL 콜레스테롤 환자 300여명을 대상으로 임상 3상 시험을 완료했다. 하루 1회 복용하는 알약 형태의 약물로, 오는 8월에는 심각한 심혈관 질환자 약 2800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 시험이 완료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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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크 주가 추이 [자료=블룸버그] |
두 개 연구 모두 LDL 수치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확인됐고, 규제 당국은 이를 심혈관 질환도 예방할 만큼 충분한 근거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월가의 애널리스트는 머크가 2025년 11월 미국심장협회 회의에서 관련 연구 결과를 공식 발표할 것으로 예상한다.
머크는 단순히 고 LDL 환자보다 더 큰 시장을 목표하고 있다. MK-0616의 세 번째 3상 임상시험에서는 약을 복용한 환자들이 실제로 심장마비와 뇌졸중, 그 밖에 심혈관 질환의 치료 효과를 보이는지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1만4000명이 참여하는 연구는 2029년 완료를 목표로 진행된다.
의학계에서는 머크가 개발중인 알약이 주사제에 비해 편의성이 높고, 때문에 환자들과 의료진들 사이에 선호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불편함이 없지 않다. 환자들이 MK-0616을 공복에 복용해야 하고, 다른 약물들과 함께 복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 제약사가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AZN)다. 업체가 개발중인 AZD0780은 금식이 필요 없는 알약이다. 지난 3월 업체는 스타틴의 치료 효과를 보이지 않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 2상 시험을 진행했고, 이를 통해 AZD0780이 LDL을 50% 감소시킨다는 결과를 얻어 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PCSK9 알약의 연간 시장 규모가 50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기대한다.
심혈관 치료제 시장의 외형 성장과 기존의 PCSK9 약물들의 문제점은 유전자 편집 업계의 관심도 끌고 있다. 관련 업계의 이른바 크리스퍼(Crispr) 기술은 인간의 DNA 30억개 링크 중에서 특정 문제가 발생하는 부분을 정확히 찾아내 영구적으로 비활성화하거나 고칠 수 있다.
크리스퍼는 노벨상을 받은 기술이지만 최근까지 유전자 의학 기업들이 실제로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대표적인 유전자 편집 업체 크리스퍼 테라퓨틱스(CRSP)를 포함한 관련 업체들이 겸상적혈구 병을 포함해 심각하지만 다소 드문 질환에 집중했고, 이 때문에 수익 창출도 더디다.
버브 테라퓨틱스(VERV)은 차별화된 전략을 취했다. 처음부터 심혈관 질환을 정조준한 것. 업체는 빔 테라퓨틱스로부터 '베이스 에디팅(base-editing)'이라는 2세대 크리스퍼 기술을 라이선스 했다. 베이스 에디팅은 DNA 유전 코드에서 한 번에 하나의 문자를 매끄럽게 바꾼다. PCSK9 코드를 영구적으로 파괴해 한 차례의 치료로 평생 LDL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업체의 주가는 지난 4월 14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초기 1상 임상시험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발표하면서 강한 상승 탄력을 보였다. 일회성 치료 후 2년이 지난 시점까지 LDL이 약 60% 감소했다고 업체는 밝혔다. 이 같은 결과는 기존의 PCSK9 주사제와 비교할 만한 수치다.
또 다른 미국 대형 제약사 일라이 릴리(LLY)는 버브 테라퓨틱스의 심혈관 프로그램에 파트너십 옵션을 확보, 2025년 중 시험 참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대형 제약사가 관심을 보일 만큼 유전자 편집을 통한 심혈관 치료법이 각광 받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유전자 편집으로 혈관 질환의 치료가 모든 임상 시험에서 성공을 거두고 공식 승인되면 의료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부상할 전망이다.
유전적으로 고콜레스테롤을 가진 젊은 환자가 평생 스타틴을 복용하거나 PCSK9 주사를 맞는 대신 단 한 번의 DNA 편집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부작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첫 번째 유전자 편집 환자들은 15년에 걸쳐 추적 관찰을 시행해야 하는데 심각한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혁신으로 불릴 만 하다는 데 의료계와 월가가 입을 모은다.
미국 금융 매체 배런스에 따르면 PCSK9에 대한 다른 유전자 의학 접근법들은 영구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장기간 지속되는 치료에 도전하고 있다. 비상장 업체인 스크라이브 테라퓨틱스가 대표적으로, 유전자를 켜고 끄는 분자들을 후성유전학적으로 편집하는 방법을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해 흥미로운 결과를 보고한 바 있다.
후성유전학이란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학문 가운데 하나로, DNA 염기 서열이 변화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유전자 발현의 연구에 중점을 둔다.
PSCK9 이외에 심혈관 질환을 일으키는 다른 요인에 대한 연구도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PSCK9 이외에 CETP 단백질도 있다. 나스닥 시장에 상장된 뉴암스테르담 파마(NAMS)는 이 단백질을 겨냥한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업체는 5월 초 CETP 단백질을 차단하는 항체인 오베세트라핍(obicetrapib)의 두 가지 임상 3상 시험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 항체 당족으로는 LDL의 수치를 3분의 1 가량 줄였고, 스타틴과 함께 사용했을 때 수치는 절반 가량 떨어졌다.
shhw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