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범 군사안보전문가·전 특전사령관
한국군 30만명, 美·남베트남軍과 싸워
북한, 핵무기·미사일·재래식 현대화 지속
국방, 군인만 아니라 국민 모두의 책임감
국민 대비·정신력·공공인식 무기만큼 중요
군사력뿐 아니라 사회적·심리적 준비 철저
1975년 4월 30일, 전 세계는 북베트남군 진격에 의해 사이공이 함락되는 모습을 충격과 슬픔 속에서 지켜봤다. 단 몇 시간 만에 남베트남, 즉 베트남공화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미 대사관 옥상에서는 헬리콥터가 마지막 미국인들과 절박한 남베트남 피난민들을 긴급히 대피시켰다. 그 이후 베트남에는 평화가 아닌 재교육 수용소와 탄압, 대규모 탈출, 수천만 명의 고통스러운 세월이 뒤따랐다.
그 참담한 날로부터 50년이 지난 오늘, 대한민국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넘어서 왜 그것이 우리에게 중요한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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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범 군사안보전문가(前 특전사령관) |
◆美 '개입 없음' 시사하자 순식간 붕괴
대한민국은 베트남전쟁의 직접적인 참전국이었다. 30만 명 이상의 한국군이 미국과 남베트남군과 함께 싸웠다.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파병한 나라다.
하지만 한국의 베트남과의 연관성은 단순한 군사동맹을 넘어선다. 1975년 4월의 교훈은 한국 역사와 깊이 맞닿아 있다. 대한민국 역시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분단된 땅에서 태어났다. 북쪽의 이념적 적대 정권으로부터 지속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남베트남의 몰락은 자유국가가 외면당하고 내부적으로 분열되며, 스스로를 지키는 준비가 부족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남베트남의 붕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었다. 남베트남은 기능하는 정부와 100만 명이 넘는 군대를 갖추고 있었다. 상당한 외국 원조도 받았다.
하지만 마지막 몇 년 간 미국의 군사와 경제 원조가 대폭 삭감됐다. 이에 따라 남베트남의 사기는 급속히 떨어졌다.
반면 소련과 중국의 무기를 등에 업은 북베트남은 빠르고 강력한 공세를 감행했다. 미국 의회가 더 이상의 개입은 없을 것임을 시사하자 마지막 붕괴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미국 내 초당적 지지 확보 계속 노력
오늘날 대한민국 역시 끈질기고 집요한 적수인 북한을 마주하고 있다. 북한은 경제적 파탄과 심각한 인권 유린에도 불구하고 핵무기와 미사일, 재래식 전력을 계속 현대화하고 있다.
북한의 군사 위협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현실이며 지속되고 있으며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 한국은 일시적인 긴장 완화나 희망 섞인 낙관론에 눈이 멀어서는 안 된다.
남베트남이 너무 늦게 깨달았듯 국가 생존은 끊임없는 안보의식과 내부 단결, 굳건한 결의에서 나온다.
남베트남은 미국 안보 우산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그 우산이 갑자기 접히자 결과는 참혹했다.
오늘날 한미동맹은 강력하지만 동맹이란 정치적 의지에 따라 좌우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준다. 워싱턴의 전략적 우선순위 변화와 미국 국내 정치 상황, 여론 변화는 언젠가 한국의 가장 가까운 우방의 결의를 시험할 수도 있다.
동맹을 의심하라는 말이 아니라 자강의 중요성을 인식하라는 의미다. 대한민국은 스스로 방위력을 강화하고, 한반도 너머로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하며, 미국 내 초당적 지지를 확보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1975년의 교훈은 '배신이 가능하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우리는 어떤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엄중한 메시지를 준다.
남베트남의 몰락은 고통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수십만 명이 재교육 수용소에 수감됐다. 수백만 명이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배를 타고 탈출했다. 많은 이들이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고 한 세대 전체가 단숨에 미래를 잃었다.
◆전쟁 일어나면 수백만 '인도적 재앙'
만약 한반도에서 대북 억제가 실패한다면 인도주의적 재앙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 된다. 수도권 전체가 북한의 포병 사거리 안에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 한반도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의 사회적·경제적 질서가 흔들린다.
국방은 군의 몫만이 아니다. 국민 모두의 책임이다. 시민의 대비와 정신력, 공공 인식은 전차나 미사일만큼이나 중요하다. 대한민국은 군사적 역량만이 아니라 사회적·심리적으로도 철저히 준비돼 있어야 한다.
역사의 기념일은 단지 학자들만을 위함이 아니다. 시민과 정책결정자, 미래세대도 알아야 한다. 남베트남의 몰락을 잊는 것은 실수다.
과거는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배우지 않을 때 되풀이된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번영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희생과 절제, 자유에 대한 굳건한 의지로 이룩된 성취다.
대한민국은 위대한 유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1975년 4월 30일의 50주년은 단지 한 동맹국의 몰락을 기억하는 시간이 아니다. 우리가 공유하는 가치와 유지해야 할 동맹, 지켜야 할 평화에 대한 재다짐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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