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오피니언 외부칼럼

속보

더보기

[기고] 외국인 가사근로자 고용허가제는 안된다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김도균 제주한라대 특임교수 (한국이민 대표행정사)

몇 년 전 일이다. 국내 항공사 회장 일가의 갑질 논란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기내 땅콩 서비스 문제로 항공기를 회항시킨 것에서 시작했는데, 그 회장님댁에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불법으로 고용한 것까지 문제가 되었다.

대기업 회장조차도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합법적으로 고용하지 못해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항공사 직원인 것처럼 위장해서 국내로 데려와 집안일을 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 처럼 동남아 출신 가사근로자를 직접 고용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고, 국내 주재 외교관이나 고액 투자자 등 일부 외국인에게만 허용된 특혜처럼 운영되고 있다.

심지어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부모가 국내에 있는 자녀의 출산이나 부모님 간병을 위해 자기가 고용하고 있는 가사근로자를 일시적으로 데리고 오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민 당국에서는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국내 부유층만의 전유물로 인식하고 국민 일자리 보호 차원에서 이렇게 엄격한 비자 관리를 하고 있다.

김도균 제주한라대 특임교수(한국이민 대표행정사).

이런 와중에 얼마 전 오세훈 서울시장과 조정훈 국회의원이 동남아 출신의 가사근로자를 최저임금 이하로 데려오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사실관계와 현실에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이 비판의 주요 내용이었고, 정부도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그런데 고용부와 서울시가 필리핀 가사근로자를 고용허가제로 시범실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필리핀 가사근로자 100명을 고용허가제로 데려와서 출퇴근 방식으로 근무하되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잘못된 정책이다.

첫째,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없다. 사상 최저의 출산율을 조금이라도 높여보자는 고육지책으로 보이지만 외국인 가사도우미로 출산율이 올라갔다는 나라가 없다. 오히려 일부 부유층의 편법적인 고용방식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둘째, 여성의 경력단절과 가사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이 필요하지만 고용허가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고용허가제는 정부가 인력을 선발하고 고용을 관리하는 것이 기본이고, 일정한 기간 후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각 가정별로 특성에 맞는 맞춤형 인력을 공급할 수 없다.

셋째, 고용허가제는 최저임금과 근무 장소 변경을 기본적으로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인권침해 논란이 국제적인 문제로 다루어지고 있으며, 현재 국내 장기체류 외국인 중 무단이탈이 가장 높은데 외국인 가사근로자도 이 같은 방식이라면 인권침해와 무단이탈이 문제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다.

결론적으로 외국인을 고용하는 방법은 고용허가제, 취업허가제, 노동허가제로 나누어지는데 가장 낮은 단계가 고용허가제이다.

우리나라 고용허가제의 문제는 세계 이민정책에서 실패한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이제는 그 수명을 다해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하는 제도인데, 서비스 분야인 가사 근로까지 확대한다면 인력 부족이 더욱 심각하고 외국인력 도입이 긴급한 간병 분야나 자영업까지 고용허가제가 확산될 수 있다.

돌봄서비스는 다양한 수요를 반영하도록 외국인의 자격을 검증하되 민간이 주도하는 시장 논리를 반영한 취업허가제로 가는 것이 맞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적인 수준의 이민정책이나 백년대계는 물 건너 간다.

김도균 교수는 출입국 이민정책 전문가다. 1988년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법무부 이민정보과장, 출입국심사과장, 주중국대사관과 주칭다오총영사관 영사로 역임하는 등 30년 넘게 출입국과 이민정책 이슈를 다뤄왔다. 특히 2018년 제주출입국외국인청장으로 재직할 당시 예멘 난민 사태를 일선에서 지휘했다. 공직 퇴직 후에도 한국이민재단 이사장, 제주한라대학 특임교수, 행정사법인 한국이민 대표행정사로 활동하면서 한국이민정책론을 출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사진
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