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건 넘는 청원에 비해 응답률 낮아...해결된 문제 적어
국회청원 활성화·기존 민원 창구 활용도 높여야
[편집자] 문재인 정부의 상징으로 불렸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5년 만에 문을 닫았다.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취지로 시작된 국민청원은 그 목적에 걸맞게 이룬 성과도 있지만 부작용도 적잖다. '현대판 신문고', '갈등과 선동의 공론장'이라는 엇갈린 평가 속에서 국민청원은 윤석열 정부에서 새로운 모습으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다. 국민청원이 지나온 5년의 시간을 되돌아봤다.
[서울=뉴스핌] 박우진 기자 = 전문가들은 지난 5년간 운영돼 온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한다는 국민청원의 취지와 역할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데다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 "국민청원, 실효성도 낮고 청원 관련 법과 어긋나"
전문가들은 국민청원의 일부 긍정적인 기능이 있었다고 보면서도 제기된 청원에서 나타난 문제가 실제로 해결된 사례가 많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시로 들을 수 있는 방을 만든 것이어서 국민청원의 도입 취지나 시도는 좋았다"고 보면서도 "실효성은 없었다"고 봤다.
이어 "100만건이 넘게 청원이 올라갔지만 실제 응답률은 낮았고 대통령이 직접 응답한 경우도 많지 않아서 가성비가 떨어졌다"면서 "청원에서 제기된 문제가 명확히 해결된 것도 많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실패한 프로젝트"라고 평가했다.
[서울=뉴스핌]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쳐 2022.04.06 |
청와대 국민청원이 민주주의의 가치와 청원 관련 법 조항과 어긋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청원권은 헌법 제26조에서 규정하고 있고 관련법인 청원법에 의해 구체적인 사항이 제시돼 있다.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청와대 국민청원이 민주주의에 반하는 측면도 있다"면서 "민주주의는 시민의 다양한 의사를 시민대표들이 합법적으로 논의해야 하는데 국민청원은 정치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 여론 동원 정치로 이어졌다"고 봤다.
또한 "청원은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이고 청원법에 근거해 이뤄져야 하는데 법에서는 개인이 청원한 모든 내용에 대해 공공기관이 문서로 답변하도록 돼 있다"면서 "국민청원은 20만명 동의로 숫자를 기준에 두고 답변 여부를 정하고 있는데 자극적인 이슈나 관심도 높은 사안만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청원 대상 제한해야...민원 대응 역량 강화·국회청원 활성화가 대안"
윤석열 정부는 지난 9일 서비스가 종료된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해 청와대 국민청원을 계승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제20대 대통령실 홈페이지에는 '국민제안'이라는 카테고리가 만들어져 있으나 아직 플랫폼이 개설되지 않은 채 준비중인 상황이다.
정부가 청와대 국민청원과 유사한 방식의 청원 플랫폼을 만들 경우 청원 안건의 대상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청원을 계승한다고 하면 행정에 관한 것으로 청원대상을 한정해야 한다"면서 "청와대 국민청원은 오바마 대통령의 위더피플을 모방한 것인데 위더피플도 행정적인 이야기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예를들면 음주운전자를 엄벌해달라고 하면 입법청원이 될 수 있지만 음주단속을 강화해달라는건 행정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서비스가 종료되면서 공론장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반면 이미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에 갖춰진 민원 창구를 활성화하고 민원에 대응하는 직원들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종훈 평론가는 "기존에 정부부처나 공공기관에는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수단들이 있었지만 부처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서 "민원업무를 담당하는 담당관을 육성하고 민원이 제기되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청와대 국민청원보다는 국회의 국민동의청원을 활성화하고 운영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를 해소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청원인이 국회의원 소개 없이 일정 수 이상의 국민 동의를 받으면 국회에 청원을 제출할 수 있는 제도로 지난 2020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청원이 제출되면 해당 분야 상임위원회에 제출되고 심사를 통과하면 본회의에 부의된다.
하지만 청원 심사 등을 이유로 제기된 청원의 처리가 늦어지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관계자는 "청와대 국민청원 종료에 대한 성과와 한계에 대해 내부에서 논의되는 부분은 크게 없으며 헌법에 보장된 청원권을 확대하는 측면에서 국회의 국민청원을 활성화하는 데 집중해왔다"면서 "실제 추진 과정에서 청원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문제가 있어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의 성립 요건이 낮아지기도 했다. 기존에는 청원 성립요건이 30일 내에 10만명의 동의를 얻는 것이었지만 기준선을 5만명으로 낮췄다.
국회에서도 국민동의청원 운영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청원이 상임위원회에 회부되고 30일이 지난 날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위원회에 청원이 반드시 상정된 것으로 보도록 했다. 청원의 심사기간 추가연장은 최대 6개월 범위에서 한 차례만 하도록 제한했다. 이를 통해 청원 심사가 장기간 미뤄지는 것을 방지하고 청원인이 소관위원회에 출석해 청원 취지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게 목적이다.
krawj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