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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부동산PF 규제 방안, 유예기간 두고 단계적 시행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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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여건 변화 무시 못 해, 자산건전성 일시 악화 가능성 존재
자기자본 대비 채무보증 한도 설정해 익스포져 증가 경계 해야

[서울=뉴스핌] 전선형 기자 = 금융당국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규제 방안을 충분한 유예기간 및 업계 의견 담아 단계적으로 시행할 것이란 입장을 발표했다.

12일 금융위원회는 보도참고 자료를 통해 "'부동산PF 익스포져(위험에 노출된 금액) 건전성 관리 방안'은 금융시장 안정 및 시스템리스크 방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며 "방안이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충분한 유예기간을 두는 등 제도개선 사항들을 단계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진=금융위원회]

금융당국은 지난 5일 부동산PF 익스포져 건전성 관리 방안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자기자본 대비 부동산 채무보증 한도 100% 설정 △부동산PF 채무보증에 대한 신용위험액 산정시 위험값을 18%로 상향 조정 △조정 유동성비율 100%미만 증권사에 대한 리스크 관리 및 점검 강화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부동산대출에 대한 신용위험 특례 폐지 등이다.

내용이 발표되자 증권업계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간 증권사들의 수익에는 부동산PF 등을 포함한 투자은행(IB) 성장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특히 부동산PF에 대해 '질적인 고려 없이 양적 규제를 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위는 이런 반발에도 증권사에 대한 부동산PF 규제 진행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금융위는 "증권회사의 경우 타 업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규제 수준과 고수익 추구 등으로 부동산PF 대출 및 채무보증 관련 익스포져의 규모가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러한 부동산 부문에 대한 쏠림현상은 관련 시장여건이 변화할 경우 개별 금융회사의 건전성뿐만 아니라 금융시스템 안정성을 빠른 속도로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6월말 기준, 전 금융사의 총 28조1000억원의 부동산PF 채무보증에서 증권업계는 26조2000억원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은행은 1조2000억원, 여신전문회사는 7000억원 수준이다.

이어 금융위는 "부동산시장의 여건이 변화하면 여러 사업장의 사업성에 동시에 영향을 주는 만큼 현재 우량한 자산이라고 할지라도 관련 자산 건전성이 일시에 급격하게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자기자본 대비 부동산 채무보증 한도 설정 등을 통해 과도한 익스포져 증가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특히 금융위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들의 부동산PF 확대도 경계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일부 종합금융투자사업자를 중심으로 중소기업 등에 대한 모험자본 공급 확대를 위해 마련된 제도를 본래 취지와 다르게 부동산PF 익스포져 확대 수단으로 활용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종투사에 부여한 기업신용공여 추가한도에서 부동산 관련 대출을 제외하고 부동산대출 신용위험 특례를 폐지키로하는 등 종투사가 역량을 집중해야 할 기업금융업무에 대한 당국의 정책방향을 명확히 밝혀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관련 규정 개정 등 향후 업무추진과정에서 업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합리적인 부분은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겠다"며 "아울러 금융투자업자가 혁신기업 등에 대한 모험자본 공급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다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intherai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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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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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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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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