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글로벌 특파원

속보

더보기

[격동의 모스크바 이야기]...(8-4) “한국에 형님 계신다”-타스통신 사장

기사입력 : 2019년04월24일 17:34

최종수정 : 2019년04월24일 17:35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이그나텐코 사장 20여년 연임한 '처세 달인'...부총리 등 겸직
한국과 인연 깊은 대표적 친한파..."YS를 큰 형님으로 모신다"

[서울=뉴스핌] 김흥식 객원논설위원 = 소련 해체 직후부터 무려 4반세기 동안 타스통신 사장을 지낸 비탈리 이그나텐코는 우리와 여러 가지로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친한 인사로, 한·러친선협회 회장을 오랜 기간 맡기도 했다. 2010년에는 명예 서울시민증을 받을 정도로 한국과 친숙하다.

타스 통신 사장직을 20년 이상 유지한 '처세의 달인' 이그나텐코가 협력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2004.09) [사진=뉴스핌DB]

◆옐친 이후 20여년간 타스통신 사장 연임...공보 부총리·상원의원 등도 겸직  

그의 화려하고 다채로운 이력을 보면 ‘처세의 달인’이라고 할만하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발탁된 이그나텐코는 크렘린 명대변인으로 국제무대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고르바초프가 몰락하자 재빨리 옐친 호로 갈아타고 러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인 타스통신 사장 직을 꿰찼다.

옐친에 이어 푸틴, 메드베데프, 다시 푸틴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무려 20년 이상 타스통신 사장 자리를 지키는 기록을 남겼다. 타스통신의 사주나 마찬가지의 존재감을 과시했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입신양명에는 남다른 사교술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대통령을 위시해 어느 누구에게도 다가갈 수 있는 유연한 매너가 한몫 했다고 생각된다.

타스통신 사장으로 활동하는 와중에도 옐친 대통령의 언론담당 수석보좌관, 공보 담당 부총리(1995-1997)를 겸임하는가 하면 푸틴 대통령에 의해서도 상원의원 겸직의 혜택을 입기도 했다. 러시아에서 이그나텐코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요직을 재임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필자는 모스크바 특파원 재임시 타스통신 본사 건물 내에 사무실을 두었다. 당시 타스통신 본사건물에 사무실을 둔 외국특파원은 필자가 유일했다. 그런 연유로 이그나텐코 사장은 때때로 필자를 집무실로 불러 불편한 점은 없는 지 물으며 각별히 챙겨주었다.

특히 한국과의 인연을 얘기할 때는 신바람이 나는 듯했다. 그는 여러 번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에겐 한국에 두 분의 형님이 계신다. 그 분들에게는 혈육의 정을 느낄 정도다.” 누구냐고 물으니 ‘큰 형님으로 김영삼 대통령과 작은 형님으로 현소환 연합통신 사장’이라고 했다. 그의 진지한 태도로 보아 상당히 친숙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94년 6월 러시아를 국빈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이 크렘린궁 영빈관에서 특파원들과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사진=뉴스핌DB] 

◆한국과 인연 강조..."YS 큰 형님으로 모신다. 한·소 수교에 중요 역할"  

이그나텐코는 한·소 수교의 물꼬를 트는데 자신도 배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비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유력 주간지 ‘노보에 브레미야’(신시대) 편집장으로 재직 중이던 1988년, 서울올림픽 취재단장으로 서울에 오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당시 야당인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를 만났는데 손금을 볼 줄 안다며 YS의 손금을 들여다보고는 “귀하는 조만간 소련에 갈 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밀명을 받고 YS의 소련방문 의사를 넌지시 타진했던 거라고 했다.

이그나텐코의 말대로 89년 6월 김영삼 총재는 소련 최대의 싱크탱크인 IMEMO(국제관계 및 세계경제연구소) 초청 형식으로 소련을 방문하였다. 잠깐이지만 고르바초프 대통령과도 만남을 가졌다. 소련 대통령이 외국의 야당 지도자는 만나지 않는다는 관례를 깬 것이어서 이례적이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YS와 각별한 친교를 맺게 됐다는 것이다. 이그나텐코는 타스통신 부사장을 잠깐 지낸 후 고르바초프의 부름을 받아 크렘린 대변인이 되었고 소련이 해체되자 옐친에 의해 타스 사장으로 발탁된다. 타스 사장 재임중 매년 한 두 차례 서울을 방문한 이그나텐코는 한국 파트너 격인 현소환 연합뉴스 사장과도 만남을 가졌으며 인간적으로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됐다고 말했다. 

이그나텐코에 대해 타스통신 내부에서는 개혁·개방주의자라기 보다는 수정주의자에 가깝다고 깎아내리는 시각도 있다. 역대 권력자들에게 연달아 중용되는 모습이 변신의 달인으로 보여 못마땅하게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94년 6월 모스크바를 방문, 교민들과 인사하는 가운데 특파원단 대표 자격으로 필자와 악수하고 있다.[사진=뉴스핌DB]

▲김흥식 뉴스핌 객원논설위원
한국외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1977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디뎠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해직되는 아픔을 겪고 쌍용그룹에 몸담고 있다가 1988년 연합뉴스 기자로 복귀했다. 1991년 한국의 첫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파견돼 맹활약했다. 이후 연합뉴스 북한부장, 남북관계 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실 간사, 경영기획실장을 거쳐 편집담당 상무이사를 지냈다. 퇴임후 연합뉴스 부설 동북아센터 상임이사, 중소기업진흥공단 비상임이사, 도로교통공단 비상임이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특별위원 등을 지낸뒤 현재 뉴스핌 객원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khs@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변상문의 화랑담배] 제2회 광복군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 가릉호텔에서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식이었다. 미국 한인 동포들이 보내온 돈 4만원으로 조직한 군대였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0억 원 정도 된다.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 참모장 이범석 장군, 제1지대장 이준식, 제2지대장 고운기, 제3지대장 김학규, 제5지대장에 나월환을 임명했다. 지대장은 지금의 사단장에 해당한다. 모두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를 비롯하여 남북 만주에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에 직접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군 출신이었다. 한국광복군 훈련반 제1기 졸업사진. [사진= 독립기념관]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포고문을 통해 "국내외 동포들에게 알립니다. 1940년 9월 17일부로 대한민국 광복군을 창설하였습니다. 광복군은 1907년 8월 1일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한 날이 바로 광복군 창설일임을 선언합니다. 광복군은 구 한국군의 후신으로 33년간에 걸친 의병과 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을 계승한 전통 무장 조직입니다"라고 했다. 대한제국 국군-의병-독립군의 군맥(軍脈)과 군혼(軍魂)을 분명하게 잇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부대 편성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여단, 사단 6단으로 편성하였다. 총 3개 사단을 조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원이 적은 상황에서 우선 지대를 만들고, 각 지대를 구대와 분대로 연계한 전투부대를 구성했다. 임시정부에서 1940년 9월 19일 중국 국민당 정부에 통보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직원 명단'에 의하면, 부대 규모가 총사령부와 4개 단위부대, 여기에다 조선혁명군 부대까지 포함하여 5000여 명이었다. 임시정부에서는 1941년 12월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1942년에는 미국 측에 "미국이 제주도를 해방 시켜 주면,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를 제주도로 옮긴 후, 광복군이 미군과 함께 한반도 상륙작전을 전개하겠다."라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실제로 미국 OSS 부대(지금의 CIA)와 1945년 4월부터 8월까지 강도 높은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 주요 훈련은 3개월 기간에 고공낙하, 암살법(권총에 특수장치를 하여 소리 없이 암살하는 방법), 통신(암호의 작성 및 해독법, 무전기 조작 및 수리), 교란 행동, 정보수집, 폭파 등 이었다. 일과는 07:00∼12:00 오전 훈련, 13:00∼18:00 오후 훈련, 19:00∼22:00 야간 훈련이었다. 주요 임무는 대한민국으로 낙하산과 잠수함으로 침투하여 미 공군 공습에 필요한 지형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일본군 군사시설 탐지 및 파괴 지하 유격대를 조직하여 연합군 상륙작전 시 제2선에서 연결하는 작전이었다. 마침내 1945년 8월 7일 모든 훈련을 마치고 국내진공작전 출정식을 개최했다. 개시일은 8월 10일이었다. 출정식 때 장준하 경기도 공작 반장은 "나는 조국광복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나의 죽음을 지불하면, 내 능력껏 그 대가가 조국을 위해서 결제될 것입니다. 나의 각오는 한 장의 정수표입니다. 발생인은 장준하, 결제인은 조국입니다"라는 유서까지 작성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08 08:00
사진
'포스트 이시바' 누구?...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직 사임을 공식화하면서, 일본 정국의 관심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로 쏠리고 있다. 집권당 총재가 곧 총리직을 맡는 일본 정치 구조상 이번 총재 선거는 사실상 다음 총리를 뽑는 절차다. 자민당은 조만간 새로운 총재 선거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2024년 9월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경합했던 주요 인사들이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정국 운영이 소수 여당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차기 총재가 야당과 어떻게 연대할지, 어떤 연립 구도를 짤지가 최대 쟁점으로 꼽힌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권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지난달 29~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다카이치가 23%, 고이즈미가 22%를 기록했다. 나란히 1, 2위다. 자민당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고이즈미가 32%로, 다카이치(17%)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카이치는 2024년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에게 역전패했다. 고이즈미 역시 의원 표에서 선두에 올랐지만 당원 표에서 밀리며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당내 기반과 대중적 인지도를 겸비해 차기 선거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주자들이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1981년생(44세)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2009년 중의원 첫 당선 이후 줄곧 '포스트 아베',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았다. 환경상, 농림수산상을 거쳤으며 개혁 성향과 젊은 이미지로 지지층을 넓혔다. 2024년 총선에서 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농림수산상으로 복귀해 쌀 유통 개혁 등 농정 개혁에 매진했다. 대중적 인지도와 '고이즈미 브랜드'라는 정치 자산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1961년생(64세)으로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는 여성 정치인이다. 2021년 총재 선거에 첫 도전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3위를 기록했다. 2024년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의원 72표, 당원 109표)를 얻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 총리에게 역전 당했다. 유일한 여성 후보로서 '보수의 아이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아베 전 총리와 가까웠던 의원 그룹이 주된 지지 기반이다. 이시바 정권에서 당직 제안을 거절하며 독자 노선을 유지해 왔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담당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하야시·모테기 등 잠룡도 주목 고이즈미와 다카이치 두 선두 주자 외에 잠룡들의 행보도 주목된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옛 기시다파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시바 정권의 2인자로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은 당내 경험과 풍부한 인맥을 강점으로 삼고, 아소 다로 전 부총리와 교류를 통해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5선 의원으로, 동기 의원들과 옛 니카이파의 지원을 받으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 총재 선거 이후에도 정국 '안갯속'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표와 당원·당우 표를 합산하는 방식이 원칙이지만, 긴급 시에는 국회의원과 지방 지부 대표만 투표하는 '양원 의원 총회'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 경우 의원 표의 비중이 커져 파벌 역학이 중요해진다. 차기 총재가 선출되더라도 곧바로 정권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헌법상 총리는 국회에서 지명되는데, 자민·공명 양당은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을 잃은 상태다. 따라서 야당이 단일 후보를 세워 결집할 경우, 자민당 총재가 총리로 지명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민당 총재가 총리에 오르더라도, 예산안·세제 개혁 법안 등 국정 운영은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차기 총재는 곧바로 '연립 확대'나 '정책 연대'를 추진할 수밖에 없고, 총재 선거 과정에서도 어떤 야당과 손을 잡을지가 핵심 화두가 된다. 결국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단순히 차기 지도자를 뽑는 절차를 넘어, 일본 정치가 다당제 속에서 어떤 연립 구도를 구축할지 시험대가 되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goldendog@newspim.com 2025-09-08 09:26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기사제목
기사가 번역된 내용입니다.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