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은빈 기자 = 일본의 새 연호 '레이와'(令和)의 출전이 된 고전시가집이 과거 군국주의 시대에 애국심을 고취시키는데 이용돼왔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는 5월 1일부터 적용되는 연호 레이와는 처음으로 일본 고전에서 인용됐다는 점에서 일본 내에서 관심이 높다. 레이와의 출전은 고전시가집 '만요슈'(万葉集)로 7~8세기 후반에 걸쳐 존재한 일본의 전통시가 와카(和歌)를 모은 것이다. 현존하는 와카시가집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1일 레이와 발표 직후 이뤄진 담화에서 "덴노(天皇·일왕)나 황족, 귀족만이 아니라 농민까지 폭넓은 단층의 사람들이 부른 노래가 담겨있다"며 "우리나라의 풍요로운 국민문화와 오랜 전통을 상징하는 국서(国書)"라고 의미를 밝혔다.
하지만 만요슈를 연구해온 시나다 요시카즈(品田悦一) 도쿄대 교수는 "만요슈를 '덴노에서 서민까지' 많은 이들이 만든 시가가 집결된 전 국민적 시가집이라고 상상하는 것 자체가 국민국가의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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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새 연호 '레이와'(令和)의 출전이 된 고전시가집 만요슈(万葉集)가 서점에 진열돼있다. 책 옆으로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라는 문구가 놓여있다. [사진=지지통신 뉴스핌] |
16일 아시히신문은 시나다 교수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시나다 교수는 만요슈에 대한 자신의 지적이 "만요슈 그 자체가 아닌 (만요슈를) 이용해온 방법"이라고 밝혔다.
메이지(明治·1868~1912)시대 근대국가가 형성되던 당시 일본의 지식인들은 국민의식 형성에 활용할 '국민시'를 찾고 있었다. 서구권과 중화문명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었다. 이때 채택된 게 서민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던 만요슈였고, 이후 만요슈는 '일본의 고전'으로 다뤄졌다는 게 시나다 교수의 논리다.
시나다 교수는 아베 총리의 "덴노나 왕족, 귀족 뿐만 아니라 농민까지 많은 사람들이 부른 노래가 담겨있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현재 연구에서는 귀족 등 일부 상류층에 그쳤다는 게 통설"이라고 지적했다.
만요슈에는 신분이 낮은 이들이 불렀다는 것으로 알려진 아즈마우타(東歌) 등의 시가 다수 수록돼 있지만, 시나다 교수는 해당 시가들이 정작 당사자들의 언어가 담겼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시의 형식이 5·7음절을 단위로 하는 귀족들의 시와 같은 형식이라는 점 등이 근거다.
시나다 교수는 만요슈에서 서민을 강조한 정부의 발표에 대해 "이런 인식 자체가 메이지국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환상"이라고 했다.
또 그는 "만요슈에 담긴 일부 시가들이 쇼와(昭和·1926~1989)시대 전쟁기에 확대해석됐던 사실을 떠올려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만요슈에 담긴 4500여개의 시가는 대부분이 남녀의 정이나 일상을 노래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중 수십여개는 용맹함을 담은 시가들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악용됐다는 것이다. 만요슈 가운데 '바다로 가면'(海行かば)이라는 시에 곡을 붙인 군가가 대표적이다. 시나다 교수는 "충군애국(忠君愛国)과 만요슈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라고 지적했다.
군국주의에 악용됐던 만요슈가 전쟁 뒤에서 '일본인의 마음의 고향'으로 여겨지는데 대해선 "패전 후 좌파쪽에서도 '국민 시가집'을 이용했기 때문"이라며 "(만요슈가) 민중에게도 자리를 마련해준 민주적인 시가집으로 칭송받았다"고 밝혔다.
시나다 교수는 "헤이세이(平成·1989~2019)시대에도 만요슈가 덴노에서 서민까지 많은 이들이 만든 시가가 집결된 전 국민적 시가집이라고 상상하는 것 자체가 국민국가의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레이와 채택 이후 일본 내에서 불고 있는 만요슈에 대한 환영분위기를 견제했다.
시나다 교수가 해당 학설을 제기했던 "만요슈의 발명 국민국가와 문화장치로서의 고전"(2001년)은 이번 4월 말 긴급복간될 예정이다.
로버트 캠벨 일본 국문학연구자료관 관장은 "'만요슈의 발명'은 고전연구의 방향을 바꾼 중요한 (학문적) 성취로, 학회에서는 이런 전제를 다시 검토하는 견해가 정착됐다"고 밝혔다.
keb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