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글로벌 글로벌경제

속보

더보기

신생통화 중국 위안화 개혁개방 40년 어떻게 달라졌나

기사입력 : 2018년10월23일 18:02

최종수정 : 2018년10월23일 18:13

중국 위안화 시장화 제도 개혁의 발자취

[서울=뉴스핌] 고은나래 기자 = 최근 중국 위안화 절하로 7위안대 추락 여부가 국제 사회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며, 전 세계의 이목이 중국 위안화를 향해 있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 관찰 대상국으로 유지하면서 미중 무역전쟁이 잠시 숨 고르기를 하는 듯하지만, 환율 전쟁은 언제 다시 촉발될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상황이다. 지난 1978년 11차 3중전회(十一届三中全會)를 전환점으로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선 이래 지난 40년간 환율 제도개혁을 비롯해 중국 위안화가 걸어온 발자취를 짚어본다. 

중국 위안화 [사진=바이두]

◆ 계획 경제 시기

중국은 1953년부터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5개년 계획에 착수했고 국가 차원에서 대외 무역과 환율 체제 구축에 돌입했다. 국가 소유의 대외 무역 회사가 대외 무역 사무를 전담했으며, 계획경제의 수요에 따라 수입 규모를 결정했다. 수출 수요는 수입에 필요한 외화를 버는 정도에만 그쳤다. 그 당시 위안화는 그저 대외 무역 결산과 편제의 도구일 뿐이었다.

브레튼 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 시기 단일고정환율제를 채택한 중국 정부는 엄격한 위안화 관리 및 통제에 나섰다. 1955년 대대적 화폐 개혁을 통해 1:10000 비율로 구(舊)화폐를 신(新)화폐로 교체했다. 이때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도 2.6170에서 2.4618로 조정, 1970년대 초까지 지속됐다.

1973년 브레튼 우즈 체제 붕괴 이후, 중국은 환율의 변동을 시장에 맡기는 위안화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게 된다. 이 시기 중국은 대외적으로 위안화 무역 결제를 시행했다. 1979년 말 기준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는 1.5 위안으로 약 50%오르면서 위안화 절상 폭이 달러 자체의 절하 폭보다 커져 위안화 환율이 급락하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

1979년 이후 대외무역 체제 개혁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국가 위주의 대외 무역 통합 체제가 흔들렸고, 위안화 저환율(위안화 고평가) 문제 역시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국가가 통합적으로 대외 무역을 관장하는 제도 속에서 개별 기업들은 대외무역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고, 외환 보유고 부족 현상도 점차 심해졌다.

◆ 경제 전환 과도기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국무원은 1979년 8월 환율 개혁을 단행했다. 무역 내부결산가(內部結算價)를 도입, 비(非)무역 정부고시환율과 병존하는 이중환율제도 실시한 것이다. 일종의 수출 보조금 제도로써 수출기업은 달러 당 2.8 위안, 민간은 1.5 위안으로 책정했다.

내부결산가를 통해 고평가된 환율을 점차 낮추고, 기업들도 수출로 인한 외화벌이에 적극성을 띠기 시작하면서 외환보유고도 점차 쌓여갔다. 하지만 무역과 비(非)무역 간 스프레드 차에 따라 부작용이 발생하면서 결국 1984년 달러 당 2.8 위안으로 이중 환율제도를 통합시켰다.

1985년 들어 중국은 시장환율(외환시장에 의한 결정)과 공정환율(중국 인민은행 결정)이 병존하는 새로운 이중환율제를 시행했고, 1988년 9월 처음으로 상하이에 외환조절공개시장을 설립했다.

◆ 시장 경제로의 전환 시기

1993년 중국은 14차 3중 전회(十四屆三中全會)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건설을 위한 몇 가지 문제에 관한 결정’을 통과시키고, 이듬해 외환 관리시스템의 대대적 개혁에 들어갔다. 중국은 1994년 1월 1일부로 기존의 이중환율제를 폐지, 달러 대비 위안화를 8.72 위안으로 첫 공시했다.

종전의 위안화 환율이 약 5.7위안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위안화의 실질 가치는 약 33.3% 절하된 셈이다. 이후 외환관리법 정비, 위안화 자유태환화 등 외환제도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이후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변동폭을 0.2~0.3%로 축소해 달러당 8.275~8.280 위안 사이에서 유지하는 사실상 고정환율제로 운영했다.

위안화 가치가 대폭 절하되면서 세계 시장에서 중국 상품의 수출 경쟁력이 상승했고, 미국은 중국에 위안화 절상 압박 수위를 높여갔다.

결국 중국은 2005년 7월 21일, 달러 페그제(Peg System, 고정환율제)를 폐지하고 당시 달러당 8.2765였던 위안화 환율을 달러 당 8.11 위안으로 한번에 2.1% 절상, 복수통화 바스켓 제도(Multi currency Basket System)를 도입했다. 총 11개 통화로 구성된 복수 통화를 가중치를 두고 평균해 환율을 결정함으로써 위안화는 장기적이고 점진적 절상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위안화는 2008년까지 약 20% 절상해 달러당 6.82위안 수준까지 올랐다.

2008년 들어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금융시장의 불안이 가속화되자 중국은 위안화 절상을 막기 위해 사실상 고정환율제로 복귀하게 된다. 하지만 미국발 금융위기 발발로 미국은 대외 무역을 통해 자국 소비 부진을 만회하고자 재차 중국에 위안화 절상 압력을 행사했다.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을 비롯한 경제학자들의 위안화의 저평가 논란이 지속되자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2010년 6월 19일, 환율변동제(복수통화 바스켓관리변동제)를 다시 시행하면서 위안화를 절상했다. 또한 2012년과 2014년에는 위안화 달러 일일 변동폭을 각각 ±0.5%에서 ±1.0%, ±1.0%에서 ±2.0%로 확대, 위안화 환율 유연성을 제고시켰다.

위안화 국제화를 꿈꾸는 중국은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가입을 목표로 8·11 환율 개혁을 단행했다.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막기 위해 2015년 8월 11일 고시환율의 결정과정에 전일의 종가와 시장 참여자의 주문가격을 반영하는 새로운 환율 결정시스템을 발표했다. 동시에 고시환율을 전장대비 1.86% 높이며 급격하게 위안화 가치를 절하하기도 했다.

같은 해 12월 11일, 미국 달러에 연동해 온 관리변동환율제 폐지하고 13개국 복수통화 바스켓을 기초로 한 ‘CFETS’ 위안화 환율지수’ 를 출범시켰다. 결국 2016년 10월 1일, 위안화는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에 편입되며 세계 3대 국제 통화로 부상했다.

 

nalai12@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이재명의 사람들] 국정 로드맵 짤 이한주 [서울=뉴스핌] 윤채영 기자 = 이재명 정부의 5년 국정 로드맵을 짤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은 이재명 대통령과 '30년지기'인 최측근 인사다. 이 원장과 이 대통령의 인연은 '성남'에서 시작됐다. 이 원장이 가천대 교수이던 시절 경기 성남시에서는 신도시 개발 문제, 광주대단지 사건 등 여러 문제가 터졌다. 두 사람은 시민운동에서 마음이 맞아 현재 인연으로 이어졌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 지난해 민주연구원장 시절 뉴스핌과의 인터뷰. 2024.06.11 pangbin@newspim.com 이 원장은 지난해 뉴스핌과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상세히 털어놨다. 그는 "필요하면 서로 불러대고 하는 관계"라며 친밀함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이 원장은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이던 시절 모라토리엄(지불유예) 선언을 계기로 더욱 가까워졌다고 했다. 그는 "성남시에서 사회적 기업, 사회적 협동조합을 100개 이상 만드는 데도 같이 했고 기본소득의 원조라고 얘기할 수 있는 청년 기본소득도 성남에서 민선 5기, 6기를 거치면서 많은 사회 실험을 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이 2022년 대선에서 메인 정책으로 꺼낸 '기본소득'도 이 원장의 작품이다. 당시 대선 패배로 기본소득 정책은 다소 후퇴했지만, 대신 '기본사회'를 꺼내들었다. 이 대통령은 당대표이던 시절 당대표 직속 기본사회위원회를 구성해 인간이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된 기본권 강화 등에 주력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기본사회 공약을 강조했으며, 대통령 직속의 기본사회위도 꾸릴 예정이다. 이처럼 '기본 시리즈'를 고안한 인물로 이 대통령의 꾸준한 신임을 얻고 있는 셈이다. 두터운 의리로 민주당의 공약 개발을 하는 민주연구원장에 이어 국정 밑그림을 그리는 국정기획위원장을 맡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이 원장은 현 정부·여당이 전국민에게 25만원을 줄지 선별적으로 지급할지에 논의 중인 데 대해서도 지난해 뉴스핌과 인터뷰에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정부는 예산이 많이 들고, 선별적으로 줘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정 그렇다고 한다면, 가난한 사람한테 더 주는 것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겠다"고 했다. 해당 발언은 당시 야당 입장에서였다.  이 원장은 선별 지급이 기본소득의 고유 이념에 대해서는 후퇴한 것이라고 했지만 "전국민 지급을 끝까지 우겨야 할 사안은 아니"라고 했다. 이 원장은 16일 출범하는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정부 조직개편과 국정과제를 정리하며 이재명 정부의 5개년 국정 밑그림을 약 50일간 짤 예정이다.  ▲1956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생물학 학사, 경제학 석·박사 ▲가천대 경제학과 교수 ▲경기연구원 원장 ▲민주연구원 원장 ▲2025년 대선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정책본부장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장  ycy1486@newspim.com 2025-06-16 06:00
사진
국민의힘 신임 원내대표 송언석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송언석 국민의힘 신임 원내대표는 16일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이 제안한 5대 개혁안 당원 여론조사와 관련해 "종합적으로 고려해 혁신의 논의가 돼야 한다"고 했다. 송 원내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출 의원총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여러 의원들의 견해가 다르고 김 비대위원장 스스로 상임고문님들이랑 얘기할 때도 몇가지 부분은 곤란하단 의사 표현을 했다고 들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송언석 국민의힘 신임 원내대표가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25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출 의원총회에서 당선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25.06.16 pangbin@newspim.com 그는 당 혁신위원회 구성에 대해선 "아무래도 당을 사랑하는 마음이 일차적이고, 그런 점에서 특정 계파에 편향적으로 알려진 분들은 이번 인선에서 2차적으로 평가되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송 원내대표는 김 비대위원장의 임기 문제와 전당대회 시기를 묻는 질문엔 "조속히 정리해 특별한 반대가 없으면 (전당대회를) 조기에 개최할 수 있게 하겠다. 실무적 절차가 있어서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6월 말 이후에 어떻게 할 거냐는 문제가 발생할 건데 만약 비대위의 임기를 더 가져가야 할 일이 있으면 이헌승 전국위원장과 상의해서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에 대한 질문에는 "헌법 질서 속에 있었던 탄핵 결과에 승복하고 모든 것이 끝난 상태"라며 "잘못한 게 있으면 인정하고 반성 할 용의가 있고 그렇게 해왔다"고 했다. 송 원내대표는 같은날 선출 직후 연합뉴스TV와 인터뷰에서 '변화와 쇄신'을 강조했다. 그는 "변화와 쇄신을 통해서 앞으로 성장하도록, 미래에 갈 수 있도록 우리 당이 국민의 마음을 더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서로 협상할 것은 협상하고, 또 투쟁할 것은 투쟁하면서 의원님들의 총의에 따르겠다"고 했다. 상법개정안과 관련해선 "주주 충실의무에 대해 다시 한번 논의가 필요하다"며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함께 상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민석 국무총리자와 관련한 각종 의혹에 대해선 "국민들께 소상히 밝히는 게 먼저 우선순위로 해야 할 도리"라며 "김민석 후보자를 지명한 이재명 대통령도 지명 철회라든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미리 고민을 해 두시는 게 좋지 않겠나"라고 했다.  allpass@newspim.com 2025-06-16 17:10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