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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가족과 소를 사랑한 화가, 이중섭

기사입력 : 2017년12월21일 13:55

최종수정 : 2017년12월21일 13:55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39)

이중섭은 박수근과 함께 한국 근대서양화의 양대 거목으로 시대의 아픔과 굴곡 많은 생애의 울분을 야성적인 그림, 특히 ‘소’라는 모티프를 통해 분출해냈다. 그에게는 삶이 곧 예술이고, 예술이 곧 그의 삶 전체였다. 그는 화가이기에 그림 그리는 일을 주업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삶을 지탱시키는 원동력이자 구원자였기에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그에게는 그림이 절실하였고 삶 전체가 오롯이 화폭 안에 스며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중섭은 평탄치 않았던 생애로 인해 ‘비운의 화가’로 전설처럼 기억되고 있다. 그는 시대의 아픔뿐만 아니라 개인의 고독과 절망을 그림으로 해소하려는 듯 격렬한 터치로 소를 그렸다. 또한 가족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으로 도원(桃園)과 같은 환상적인 이상세계를 화폭에 담았다.

이중섭 예술의 특징으로는 우선 야수파적인 감성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들 수가 있다. 색채를 통한 감성의 해방을 구가하였던 야수파의 자유로운 표현 기법이 그의 모든 그림에도 관통되어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유분방한 선묘에서도 찾을 수 있다.
특히 담뱃갑 속의 은종이에 송곳이나 나무 펜으로 아이들이 물고기와 어우러져 노는 장면이나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자주 그렸는데, 그 유연한 선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준다. 이 같이 담뱃갑 속의 은지에다 송곳으로 눌러 그린 그림을 뜻하는 은지화는 그의 선묘화의 특성이 발현되고 독자적으로 창안된 정수로서 가치를 지닌다. 그의 은지화 3점은 은지 속에 담긴 내용과 독특한 재료의 개발이라는 점에서 고유성을 인정받아 현재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되어 있다.
이중섭의 작품에는 소· 닭· 어린이· 가족 등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데, 향토적 요소와 동화적이고 자전적인 요소가 주로 담겼다는 것이 소재상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싸우는 소》, 《흰소》, 《움직이는 흰소》, 《소와 어린이》, 《황소》, 《투계》 등은 향토성이 진하게 밴 대표적 작품이다. 《닭과 가족》, 《사내와 아이들》, 《길 떠나는 가족》과 그 밖에 수많은 은지화들은 동화적이고 자전적 요소가 강한 작품들이다.

한편, 1930년대부터는 소의 모습을 즐겨 화폭에 담았다. 흰 소 그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뒤엉킨 두 마리의 소가 대결하는 그림, 그리고 소와 아이가 어울려 노는 장면을 통해 특유의 해학적인 웃음과 인간적인 정감을 드러내주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 소는 자신의 분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격렬한 소의 움직임을 거침없는 선(線)으로 표현하고 있다. 때로는 갈등과 고통, 절망, 분노를 표현하기도 했고, 때로는 희망과 의지 그리고 힘을 상징하기도 했다.

‘흰 소’, 나무판에 유채, 30 x 41.7cm/ 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 <사진=이철환>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은 1916년 평남 평원(平原)에서 대지주 집안의 삼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스승인 임용련을 만나 서구의 새로운 예술에 일찍 눈을 뜨는 한편 남다른 민족의식을 갖게 되었다. 1935년 일본으로 건너가 제국미술학교에 입학했으나 1년 만에 일본 문화학원 미술학부로 옮겼다. 재학 중 독립전(獨立展)과 자유전(自由展)에 출품하여 재능을 인정받았다. 문화학원을 졸업하던 1940년에는 미술창작가 협회전(자유전의 개칭)에 출품하여 협회상을 수상했으며, 1943년에도 특별상인 태양상(太陽賞)을 수상하였다.

그의 나이 28세가 되던 해인 1944년에는 원산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일본 문화학원 시절 사귀었던 일본인 후배이며 애인이었던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와는 헤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전쟁 막바지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이들의 사랑은 뜨거웠다. 마사코가 이중섭을 찾아 홀로 현해탄을 건너 한국으로 건너온 것이었다. 이런 사랑의 힘으로 그들은 1945년 5월 원산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중섭은 마사코에게 순 한국식 이름인 이남덕(李南德)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늘 ‘남덕’이라고 불렀다.
이중섭은 아내에 대한 감정이 매우 애틋했다. 그는 유복자로 또 막내로 태어났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 ‘어머니’란 자신의 삶을 지탱시켜 주는 지주로서의 의미를 지닌 존재였다. 결혼 후에는 그 의미가 어머니로부터 아내로 이전되었다. 더구나 1.4후퇴 이후에는 더 이상 어머니를 만날 수 없었기에 아내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곧바로 닥친 아내와의 이별이란 그에게는 두 사람의 보호자를 잃은 셈이 되었다.
다음은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의 도입부에 쓴 표현들을 뽑아 모은 것이다. 그가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들이다.

‘나의 귀중하고 귀여운 남덕군.’
‘나의 거짓없는 희망의 봉오리 남덕군.’
‘나의 귀여운 즐거움이여 소중한 나만의 오직 한사람, 나만의 남덕이여.’
‘나의 살뜰한 사람 나 혼자만의 기차게 어여쁜 남덕군.’
‘나의 멋진 현처, 나의 귀여운 남덕 나만의 소중한 사람이여.’
‘내 마음을 끝없이 행복으로 채워주는 오직 하나의 천사, 나의 남덕군.’
‘나의 소중한 특등으로 귀여운 남덕.’
‘세상에서 제일로 상냥하고 소중한 사람 나의 멋진 기쁨이며 한없이 귀여운 남덕군.’
‘나의 소중하고 소중한 사람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내 마음을 기쁨으로 채우고 끝없이 힘을 불어넣어 주는 내 마음의 아내, 다정한 남덕군.’

그러나 일본 재벌인 미츠이 재단 중역의 딸과 식민지 조선인 유학생과의 결혼생활은 애당초 순탄하기가 어려웠다. 결혼 후 두 사람 사이에 자식 셋을 낳았으나 한 명은 디프테리아로 곧바로 죽었다. 여기에 제2차 세계대전 전쟁 말기의 어두운 시대 상황, 그리고 해방과 더불어 찾아온 소련군 진주는 이들의 삶을 결코 순탄하게 그냥 두지 않았다.
원산사범학교 교원으로 있던 이중섭은 북한 땅이 공산 치하가 되자 창작 활동에 많은 제한을 받았다. 그러던 중 6·25전쟁이 터지자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넘어오게 된다. 이후 종군화가 단원으로 활동했으며 신사실파 동인으로도 참여했다. 월남한 이후에는 부산, 제주, 통영, 진주, 대구 등지를 전전하며 그림을 그렸고, 재료가 없어 담뱃갑 은박지를 화폭 대신 쓰기도 했다.
월남한 이후 이중섭은 몇 달을 부산에 머문 뒤 제주도로 떠났다. 부산의 아우성 속에서 벗어나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에서 그랬던 것이다. 그러나 비극적인 4.3사건이 일어나자 7~8개월 정도 제주도에 머문 뒤 이중섭은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이중섭의 후반기, 특히 은지화의 대부분의 내용은 제주 시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은지화는 제주에서 부산으로 나온 얼마 후부터 집중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제주 생활이 자연히 소재로서 다루어지게 되었다.

한편, 이 무렵 생활고로 부인과 두 아들은 처가가 있는 일본 동경으로 보내고 이중섭은 홀로 남아 부산과 통영 등지를 전전하였다. 1953년 일본으로 밀항하여 가족들을 만났으나 굴욕적인 처가 신세가 싫어 다시 귀국하였다. 이후 줄곧 가족과의 재회를 염원했지만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중섭은 가족을 소재로 한 그림도 여러 점 그렸다. 이 그림들 속에는 헤어져 있는 가족이 다시 하나 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겪은 수난과 비극을 대변하고 있기도 하다. 어머니를 비롯한 혈육과 헤어진데 이어 아내와 자식과도 헤어져야만 했던 그는 이산의 아픔을 매우 심하게 느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림에 비극적 상황을 표현하기보다는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으려 노력했다. 또 가족들이 재회하는 행복한 순간과 평화로운 모습을 표현하려 했다.

이중섭은 일본에 보낸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도는 유랑 생활,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깊은 좌절과 자괴감으로 몸과 마음이 극도로 쇠약해져 정신분열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56년 영양실조와 간염으로 고통을 겪다가 그해 9월 6일 40세를 일기로 서울적십자병원에서 홀로 숨을 거두었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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