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법안 발의 특권…보좌관 '실적쌓기용' 지적도
최근 만난 한 국회의원은 발의한 법안이 얼마 남지 않은 19대 국회내 통과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내년 5월까지 7개월여 남은 19대 국회에서 막판 입법발의가 크게 늘고 있다. 통상 국회에서 쟁점이 적은 법안이 상임위 심의를 거쳐 본회의 통과까지 최소 6개월 이상 걸린다. 이를 감안하면 최근 의원들이 발의하는 법안은 사실상 회기종료과 함께 자동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2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7월부터 이달 28일까지 의원입법 발의건수는 총 1582건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064건에 비해 48.7%나 급증한 양이다.
특히, 정기국회 개회전인 지난 7~8월에는 하루 10~20건의 법안이 제출됐지만 이달들어 하루에 20~30건씩의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국회 의사국 의안과 관계자는 "이달 들어 확실이 법안 접수 건수가 늘었다"며 "작년 이맘때와 비교해도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법안 내용도 다양하다. 국민건강증진법이나 교통안전법 등 국민의 건강이나 안전과 관련된 법안부터 지방세법, 기업관련법 등 경제활동 관련 등 국민 생활의 거의 전 분야와 관련된 법들이 발의되고 있다. 이런 법이 있을까 싶은 법안도 있다.
최근 황주홍 새정치연합 의원은 김치산업 진흥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현재 김치재료의 원할한 수급 관련 통계조사를 정부 재량으로 하도록 한 것을 강제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같은 당 인재근 의원은 주차장법 개정안을 냈다. 공영주차장 운영업자가 지자체의 조례로 정한 주차요금보다 비싼 요금을 받을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다.
김치법이나 주차장법 처럼 쟁점이 적은 법안의 경우에도 통상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되기까지는 최소 6개월 이상 걸린다. 여야간 이견이 크면 1년이 넘기도 하고, 철학 자체가 다른 법안은 임기 4년 내내 통과가 안된다. 최근 박 대통령이 국회 처리를 당부한 서비스산업발전법 등 경제활성화법이 대표적인 경우다. 서비스발전법과 관광진흥법은 3년째 국회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국회의원들이 회기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태에서 법안을 끊임없이 제출하는 것은 또다른 속셈이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의원 개인의 '실적 쌓기용'이란 얘기다. 유권자들에게 법안발의 실적을 적극 홍보해야 재선의 가능성도 커진다. 야당은 법안발의 건수 자체를 공천심사에 반영하기로 했다.
최근엔 국회의원 개인의 실적이 아닌 보좌진들의 실적 쌓기 때문에 법안발의가 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내년 총선에서 보좌한 의원이 낙선할 경우 보좌진들은 다른 의원실 자리를 찾아야한다. 그때를 대비해 미리 미리 보좌관 개인의 법안발의 실적을 쌓아둘 필요가 있다는 것.
국회의원 한 보좌관은 "국회 보좌관들은 '파리 목숨'이라 언제 잘릴지 모른다"며 "의원을 잘 설득해 법안을 적극적으로 제출하는 것도 보좌관의 임무중 하나"라고 귀띔했다.
다른 보좌관은 "어떤 법안을 본회의까지 통과시키느냐에 따라 보좌관의 몸값이 달라지기도 한다"며 "본회의 통과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많은 법을 다뤄봤느냐도 국회 활동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19대 국회 현재 1만 5000건이 넘는 의원 법안이 발의됐는데 최종 가결율(본회의 통과)은 30.1% 수준이다. 의원 발의 법안 10건중 3건 만이 실제 세상의 빛을 본다는 말이다.
한편, 한 재선 국회의원은 "발의한 법안이 본회의까지 통과가 되면 더없이 좋겠지만 발의한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것 아니냐"며 "의미있는 법안은 상임위 논의 단계에서도 정부 정책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의제가 될 수 있는 각종 의안을 동료의원 10인 이상의 찬성으로 발의할 수 있다. 민생과 관련된 의제라면 무엇이든 법안발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뉴스핌 Newspim] 정탁윤 기자 (tac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