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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뷰] 속이 꽉 찬 ‘벤트(BENT)’, 놓치면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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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장윤원 기자] 독일 나치 집권 하의 수용소. 유대인을 표시하는 노란색 리본과 동성애자를 구분하는 분홍색 리본이 있다. (그럴 리 없겠지만)당신이 둘 중 하나를 집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연극 ‘벤트(BENT)’는 히틀러가 독일 총통에 오른 1934년을 배경으로 한다. 작품은 베를린 클럽을 전전하며 살아가던 남자 맥스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나치의 동성애자 탄압이 본격화되자, 동성애자인 맥스는 동거하던 무용수 루디와 함께 살기 위한 도주를 택한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게슈타포(나치 정치경찰)에 체포되고, 루디는 수용소로 가는 기차 안에서 잔혹하게 살해당한다. 이후 수용소에 들어간 맥스는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속인다. 그리고, 그가 원래 받았어야 할 분홍색이 아닌 노란색 리본을 가슴에 단다. 
연극을 관람하기에 앞서 실제 역사적 배경을 알면 보다 쉽게 작품에 다가갈 수 있다. 1932년 국민 투표를 통해 독일의 집권당이 된 나치는 1934년, 나치 반대자들을 숙청하고 히틀러를 절대 권력자로 만들었다. 동성애자, 정신병자, 장님, 장애인들을 격리·처단하는 법이 통과됐고 동성애자들은 거세되거나 수용소로 보내졌다. 

당시 수용소 내의 수많은 ‘죄수’ 중에서도 동성애자는 가장 하층에 속했다. 수용소에 잡혀온 다른 사람들도 동성애자와 같은 막사를 쓰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거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독일의 동성애자들은 동성애 처벌법이 없어진 1969년까지 자신이 수용소에 잡혀갔던 사실도 함부로 밝히지 못하고 살았다.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극 ’벤트’는 1930~1940년대 당시 유대인보다 더 혹독한 대우를 받았던 독일의 동성애자들을 통해 성소수자의 인권뿐 아니라 인간 모두의 인권, 사랑, 인간성 회복에 대해 말한다. 생존을 위해 스스로의 존재를 부인하고 스스로 존엄성을 해쳐야 한다면, 그 삶은 인간다운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차별 등을 다룬 표면적 서사는 이처럼 생존에 대한 본질적 논쟁으로까지 확대된다. 

한편,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자 흥미로운 점은 1막과 2막이 형식적으로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1막에서는 맥스가 게슈타포를 피해 도망다니는 상황이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맥스가 스쳐 지나가는 주변인물들을 통해 시대적 상황과 그 안의 다양한 삶의 방식이 소개된다. 

맥스가 수용소로 들어간 이후를 그리는 2막은 맥스와 홀스트의 대화 중심으로 흐른다. 극한 상황에 놓인 맥스와 홀스트, 두 남자의 처절하면서도 세밀한 감정선이 무대를 꽉 채우고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배우들의 구멍 없는 호흡과 탄탄한 실력이 돋보인다. 
1979년 영국 런던서 초연한 연극 ‘벤트’는 이듬해 미국 극작가협회 희곡상을 수상했고, 지난 35년간 40여 개 국가에서 꾸준히 공연됐다. 영국 국립극장이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연극 100편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지난 2013년 초연했는데, 바로 이듬해 앵콜 공연을 할 정도로 관객의 관심을 받았다. 

김혜리 연출의 지휘 하에 배우 김승기(맥스), 서형빈(홀스트), 최성호(루디), 손명구(그래타·캡틴), 김준삼(프레디), 조장연(울프), 김정래(경비병), 김승겸(장교)이 출연한다.

소수자의 문제는 물론, 나아가 인간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연극 ‘벤트’는 오는 21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한다. 만 16세 이상 관람가. 전석 2만5000원.

[뉴스핌 Newspim] 글 장윤원 기자(yunwon@newspim.com)·사진 극단 ET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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