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그날 밤 술에 취한채 미사리 너머 밤새도록 차를 몰다가, 아무 길 옆에 파킹하고 차 안에서 잠에 떨어졌다고 한다. 핸드폰을 밤새 꺼놓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채 지새운 하룻밤이었다.
이런 편지나 즉흥시들은 내 유폐된 가슴에서 끝없이 줄줄 흘러나왔다. 출근 직후의 사무실, 연속 진급 누락으로 동료들 눈을 피해, 점심시간에 혼자 뚝딱 먹어치우고는 도망치듯 찾던 앙카라 공원, 거래처 방문 중간중간에 비는 시간, 잠 못 이루는 무수한 밤들이 이 무모하고 집요한 글쓰기에 바쳐졌다.
그렇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악화되어 가기만 했다. 주식시장 침체로 관리해주는 구좌들은 박살이 나 극심한 허혈증에서 빠져나올 줄 몰랐다. 글쓰기에 시도때도 없이 빠져들다보니 회사에서의 위치도 더욱 어정쩡해졌다.
퇴근 후엔 부업에 신경 써야 하다 보니 피곤은 둘째 치고 극심한 정체성 혼란에 빠져들곤 했다. 회사에서는 대리, 네트워크 마케팅에서는 사장님이라고 불리는 이중 호칭에도 어지러움과 수치를 지울 수 없었다. 이러다가 분열되어 수습 불가능한 상황까지 가는 게 아닌가, 섬뜩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어느 하나 포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극심한 경제 위기라 사표 던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돌파구로 삼은 부업이 위태롭다 하더라도 이미 많은 투자가 들어가 포기하기도 어려웠다. 거기다가 아무런 현실성 없이 빠져드는 글쓰기의 늪, 아내의 문제, 그 와중에 받으면 툭툭 끊어지는 전화... 한마디로 미칠 지경이었다.
네트워크 마케팅도 깊게 들어가보니 처음 느낀 매력과는 동떨어진 면들도 많았다. 사실 Q회사를 처음 알았을 때 느낀 매력은 정직성이었다. 기업이 정직하고 유리잔처럼 투명할 수 있다는 사실, 제품이 바하의 음악이나 고호의 그림처럼 완벽할 수 있다는 사실에 참신한 충격을 받았다.
증권의 투기성과 위악성에 질릴 대로 질린 내게 이러한 정직성은 오아시스를 만난 듯 너무도 신선해, 네트워크 마케팅의 어마어마한 비전과 함께 그 세계에 뛰어든 결정적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 회사 제품 중에 순수 알로에로 만든 로션이 있는데 그것을 얼굴에 바르고 있을 때면 피부 깊숙이 스미는 느낌이 좋아 마치 열대 섬의 야자수 그늘 아래 쉬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히알루론산, 콜라겐....이름조차 몰랐던 것들의 실체에 눈이 떠지면서 새로운 대지를 발견한 느낌마저 들곤 했다. 히알루론산은 정확한 기억인지 모르지만, 공기 중의 물 분자를 흡수해 피부에 보습 작용을 돕는 천연 성분이다.
세미나 룸에서 그런 강의를 듣고 있을 때면 증권이나 삶의 피곤에 의해 무디어진 감각이 되살아나, 공기 중의 물 분자들이 내 피부 전체로 살포되는 듯한 산뜻함에 잠겨들곤 했다. 샤워할 때 바르면 때가 저절로 녹아 없어지는 제품도 있다. 클렌징 젤에 호두 과립을 잘게 갈아 넣은 것인데 고운 모래보다 더 미세한 그 과립으로 물에 젖은 전신을 문지르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 과립이 든 클렌징 젤로 샤워를 하며 아내가 나를 샤워실로 부른 적도 있다. 서로의 나신을 과립으로 문질러주다가 몸을 밀착해 상큼한 사각거림 속에 애틋하게 잠겨가던 그날 밤은 색다른 흥분 속에 서로의 몸을 탐닉했었다.
그런 시간을 네트워크 마케팅은 주기도 했다. 암담하고 억압적인 현실로부터 탈출해 가 닿는 섬의 희망도 싹터 올랐을 때라 행복한 시간이 많았다. 자석요 같은 저급한 물건을 고가로 떠넘겨 폭리는 나눠먹는 피라미드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첨단 비즈니스가 바로 네트워크 마케팅이었다. 알고 나면 하늘과 땅 차이인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하지만 극히 적어 리쿠르팅을 할 때마다 그 양자에 무지한 사회적 편견과 싸워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