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온 여름
네게 쓰는 편지는
이젠 보내지 않는다
기쁨도 슬픔도
네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허공을 사랑하게 되었다
아득한 곳에서
천천히 말을 걸어오는
다른 너
그림자 없는 희생을
사랑하게 되었다
허공에 글을 쓴다
그 속에 내가 파묻힐 때까지
(1983. 여름)
그러한 것의 최후도 있었으리라. 나는 랭보, 보들레르 같은 저주받은 시인들을 좋아했고, 많은 요절한 시인들과 나 자신을 동일시했다. 사랑하는 여자는 동행하는 것이 죄스러워 아픔 속에 놓아주었고, 그녀는 떠나버렸다.
혜진과 마지막으로 헤어지기 전인 대학 말, 그녀와 있었던 빼놓을 수 없는 일을 기술하면서 그녀와의 추억을 매듭짓기로 하자.
수차례 헤어짐과 새로운 시작, 속이 타들어가는 기다림들과 간헐적인 만남으로 점철된 우리 관계가 4학년 들어 다시 시작되었을 때, 그녀에겐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의 대학원으로 진학하겠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간의 지독함들은 다 풀리고 내 가슴엔 파란 풍선들이 떠다니는 듯했다. 드디어 캠퍼스 커플이 되는구나.
대학 시절 중 가장 행복한 꿈을 꾸던 그 시간들은 그러나 잠시였다. 그녀가 유학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마침 대학원에도 떨어져 낙방과 실연을 동시에 끌어안아야 하는 나는 몹시 아팠다. 하숙방에 아무 것도 안 먹고 꼼짝없이 이틀을 누워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를 만난 햇살 고운 어느 겨울날, 전혀 예기치 않은 각도에서 또 다른 지독한 운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와 차를 마시고 난 후 무심코 따라간 곳은 안암동의 지하실에 있는 낯선 교회. 사실 그녀는 말렸지만, 그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함께 있고 싶어 따라간 곳이었다.
그곳에서의 크리스마스 이브. 그날 역시 남모르는 행복감에 젖어 있던 날이다. 그녀와 함께 교회 의자에 앉아 꼬박 밤을 새운 것이다. 그후 한동안 내 마음의 전부가 된 그 교회가 그때에는 마음에 없었다. 단지 그녀와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는 것, 비록 그녀가 교회 일을 돕고, 교인들과 담소하는 등 분주해 내게 많은 시간을 내진 못했지만, 그녀와 같은 것에 귀 기울이고, 같은 연주와 같은 무대 연극을 본다는 것, 그녀의 잠든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 그 의미와 향기가, 내겐 벅찬 폭풍일 뿐이었다.
그 어두침침한 지하 교회에서 그녀와의 꿈같은 몇 개월. 신앙이 돈독한 그녀는 대학 말에 잠시 몰입했던 그곳을 그후 깨끗이 정리하고 프랑스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녀가 떠난 그곳에서 엄청난 지각변동과도 같은 파격이 내게 일어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