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오버하고 있는 거요”
내가 말했다
“당신이 오버하고 있는 거요”
그가 되받아쳤다. 따라하거나 빈정대는 투가 아니었다. 내 말이 틀렸다고 반증하는 태도였다.
“나는 당신의 동의를 얻으러 온 것이 아니라, 통보하러 온 것이오. 모든 것은 이미 결론이 나 있어요”
흡사 점령군의 태세였다. 저 또렷한 호기와 확신의 근거가 무엇일까. 그것을 아내하고도 공유하고 있다는 듯한 당당한 말투에 미칠 것 같았다. 그는 현주에게 확인해 보라고 했다. 모든 약속이 다 되어 있다고 했다. 도대체 어느 지경까지 간 것인가.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총알처럼 내 전신의 혼을 두절시키고 있었다. 소주 한 병을 송두리째 마셨다. 막힘없이 들어갔다. 펑크난 혼 사이로. 나는 맥주캔을 움켜쥐었다.
“이 새끼, 미친 놈.......”
“뭐라고 했소?”
들었으면서도 나의 오기를 시험하고 있었다. 이 새끼, 미친 놈이라고 다시 한번 되뇌며 주먹을 날릴까 하다가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 말을 참았다. 아내는 거실 저편에 서 있었다. 나는 다가가 아내를 껴안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너와 나 사이에 이게 무슨 꼴이야”
거의 엉엉거렸다. 아내는 나를 뒤로 밀쳤다. 나는 순식간에 싱크대로 가 있었다. 의식할 틈도 없이 손에 칼이 쥐어 있었다. 식칼을 든 내 오른손은 아무 대책이 없었다.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내가 오버하고 있었다.
살의는 전혀 없었다. 걷잡을 수 없는 뭔가가 내 안에서 폭발하고 있었고, 그것을 다루기엔 내가 너무 미약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의식은 살아있었지만 계속 뒷북을 치고 있었다. 손에 쥔 칼을 도로 내려놓을 수도 없었다. 그걸로 내 왼 팔뚝을 내리쳤다. 붉은 색 스웨터 위로. 약했던 칼자루가 부러져 튕겨나갔다.
식탁으로 돌아와 앉아, 마시던 맥주캔을 들어 그의 얼굴 바로 옆을 향해 냅다 던졌다. 퍽, 그의 등 뒤 벽에 캔이 박히며 맥주와 하얀 거품이 사방으로 튀었다. 맥주세례를 받은 그의 얼굴에도 노란 액체가 줄줄 흘렀다. 그는 닦지 않고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당신, 이제 가시오. 더 이상 할 말이 없소.”
내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그런 정도였다. 아무 해결도, 풀림의 실마리도 없었다. 상황이 급작스럽고 경황이 없어서 그렇긴 하다. 우리 세 사람, 그의 아내까지 네 사람, 두 가족의 아이들까지 최소한 여섯, 혹은 여덞 명의 운명을 좌우할 절박한 시간이 너무 어이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는 일어섰다. 1997년 10월 11일 새벽 두시. 나가기 전에 현관에서, 그는 또 말없이 마냥 서 있었다. 바닥 모를 침묵. 그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는 내 아내의 속 깊은 병. 그 중증의 고독과 고독 사이에서, 내 경솔한 건강은 오히려 가짜 같았다.
“당신이 아내를 더 이상 학대하지 않으면, 내가 현주를 양보할 수도 있소”
그것이 그가 집을 나서며 한 마지막 말이었다.
학대! 내가 아내를 학대했다고? 학대한 적이 없는데. 학대했단 말인가
그가 나가자 아내는 잠시 얘기하고 오겠다며 따라나섰다. 나는 잠든 아이들 곁에 누웠다. 달고 곤한 숨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1학년과 유치원생인 두 딸. 복숭아 내음 물씬한 이불 위엔 색종이, 레고, 읽다만 동화책들이 흩어져 있었다. 집안 공기를 밝게 채우던 웃음소리와 청량한 울음소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