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원초적 감정의 회오리가 내 가슴 사막에 모래폭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차분하고 싶은 내면을 몰아내고 불쑥 내뱉어진 말. ‘집어치워!’보다 냉혹하고 화해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난 나를 버리고 떠난 사람들은 안 잡아!’ 라는 말. 나의 말은 본의 아니게 성급한 단정을 내리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감정의 사각지대로, 내 조급한 말은 아내와 나의 운명을 내몰고 있었다. 이 긴박한 순간의 한마디 한마디는 앞으로의 우리 부부와 가족 전체의 운명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을 것이었다. 그 심각성을 절박하게 느끼면서도 내 섣부른 말투는 거꾸로 치닫고 있었다.
쓰러질듯 안긴 아내를 밀치고도, 계속 소리를 질렀다. 말은 내뱉어진 방향으로 가속화하는 경향이 있다. 후회할 때는 사태는 대개 그르쳐 있게 마련이다.
“이것 봐.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이 글들을 읽어봐. 그리고 이렇게 어려울 때.....”
나는 작은 방으로 아내를 끌고가 벽장문을 열어제쳤다. 서랍을 신경질적으로 당겨, 안에 든 원고더미를 보라고 소리쳤다. 우습겠지만, 나로선 최후의 결전 같은 것이었다. 서랍 속의 은밀한 작은 공간은,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찾는 요람이요 무덤 같은 곳이었다.
그곳엔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아픔과 굴곡, 알록달록한 광기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삶이라는 것이 극도로 아프게 다가오거나 남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희한한 상상이 떠오를 때면, 나는 갑자기 휘어져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방문을 걸어잠그고, 틀어박혔다.
그런 식으로 내가 그 방에 들어가는 것을 아내는 탐탁히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삶이 꼬일수록, 나는 그 방으로의 출입이 빈번해졌고,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서랍 안의 암호같은 글들의 존재는 물론 아내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 묵묵함들이 내 가슴에 배어 있고, 아내의 감성에, 실내공기에도 배어 있다. 오랜 시간 주무르고 주무르던 사이 정이 들어버린 폐허의 반죽, 아픔의 상찬. 자기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 남에게도 그러리려니 하는 생각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아내의 얼굴이 심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 마음 알잖아!”
“그 마음에 질렸어!”
눈앞이 캄캄했다. 내려설 수 있는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섰는데 그마저 폭삭 꺼지는 기분이었다. 막다른 곳까지 치달리다가 숨어든 쥐구멍을 막아버려, 안에 든 불쌍한 쥐를 질식시킬 정도까지 간 아내의 절망은 얼마나 큰 것일까.
아내는 이런 말 하는 여자가 아니었다. 팽팽하게 다투다가도 ‘마음’ 운운하면, 슬그머니 휴전의 백기를 들고 사뿐히 걸어오는 여자였다. 아픔을 다독이며 세탁기를 돌리거나 냉장고에서 노란 참외를 내오는 여자였다. 마음이란 우리에게 휴전선이자, 서로 침범하지 않도록 묵인한 DMZ, 곧 비무장지대였다. 그러나 그곳은 천연적이기도 하겠지만, 얼마나 숱한 속임과 갈등, 배신이 암묵 속에 숨어있는 곳인가.
'마음에 질렸다'는 아내의 한마디는 한 인생의 절망의 총량이 걸린만큼 나를 압박했으며 어떤 종교보다도 급진적이었으며 절대적인 부정성을 띠고 있었다. 내 머리 속 기억들을 몽땅 지우고 그 자리에 강하게 새겨질만큼 충격을 주었다.
이런 상태에서 아내에게 외도니 하는 말을 권위적이고 주관적으로 쓰면서 캐묻거나 몰아치는 일이 무의미한 것임을 나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내에게 할 수 있는 질책, 폭력, 욕설, 설득, 회유, 호소 등 일체의 감정이나 행동은 빙판 위의 돌처럼 미끌어져나갈 뿐일 것이다. ‘나가!’라고 버럭 소리를 지른다면 아내 자신이 차가운 돌이 되어 세상의 빙판을 스쳐 영원히 사라져버릴지도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