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노종빈 기자] 한국거래소의 중소벤처기업 전문 거래시장인 코넥스의 한 상장기업 대표 A씨는 올해 초 상장을 준비하면서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다.
막바지 상장 절차를 순조롭게 준비하고 있는데 다름아닌 회계법인의 우려에 부딪친 것이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지난해 회계법인의 회계감사는 회사가 비상장기업임을 전제로 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렇게 빨리 코넥스 시장에 상장을 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A대표는 아무리 비상장기업이든 상장기업이든 똑같은 외부 회계감사를 받는 것이고 그렇다고 보고서의 수치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되물었다.
이에 대해 회계법인 측의 설명은 비상장기업의 감사보고서는 실적을 단순 공시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감사의 질적 수준이 상장기업에 비해 크게 낮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수십년간 기업을 이끌어 온 A대표에게도 이는 무척 황당한 사실로 들렸다. 마치 자판기 커피와 로스팅한 원두커피 맛의 차이처럼 씁쓸하게 느껴지는 얘기였다.
어쨌든 결론은 비상장기업임을 전제로 받은 회계 감사 내용이나 의견은 레벨 차이 때문에 코넥스 상장에 이용할 수는 없다는 얘기였다.
지금도 코넥스에 상장하려는 기업들은 적잖이 이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회계 감사의 품질 차이 때문에 코넥스에 입성하려던 결정을 내부적으로 뒤집은 기업도 있다.
이같은 마찰로 인해 코넥스 상장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늘게 되자 이를 보다 못한 거래소가 나서 이 문제에 대해 일시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외국에서는 흔히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이 투자자에게 제시하는 컴포트 레터(comfort letter)라는 것이 있다. 즉, 컴포트 레터는 회계 법인이 회계감사가 적절한 수준으로 이뤄졌음을 보증하는 서한이다. 투자자는 향후 회계 감사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를 근거로 회계 법인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거래소는 이를 본따 '외부감사인 확인서'라는 제도를 만든 것이다. 즉 외부감사인 확인서란 회계 감사를 맡은 회계 법인이 기업의 회계 감사 내용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재확인해주는 절차다.
즉 외부감사인 확인서는 이처럼 외부 감사의 품질을 제고하는 목적도 있지만 당해 기업이 코넥스에 상장한다는 점을 회계 법인에 통보하는 성격도 동시에 갖고 있다. 기업은 외부감사인 확인서를 제출함으로써 나중에 발생할 수 있는 회계 품질 차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완화한다.
이처럼 외부감사인 확인서라는 제도를 통해 금융당국과 거래소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코넥스 시장을 개장할 수 있었다. 이에 코넥스 상장 기업들은 그만큼 싼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됐다. 회계 법인은 자신들의 회계 감사 결과를 재확인해주면서 부가적인 수입을 챙겼고 동시에 새로운 시장을 열 수도 있게 돼 역시 만족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모두가 '윈-윈-윈'일까? 그렇지 않다. 아직 투자자들이 남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 코넥스 상장기업이 글로벌 업체에 납품계약을 체결하고 피인수(M&A)될 계획이라고 하자. 주가는 연일 매도호가 없는 상한가로 날라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도 나도 앞다투어 최소예탁금인 3억원을 모아들고 코넥스 시장에 뛰어들어 물불을 안가리고 그 주식을 사려할 것이다.
3억원 이상 보유 계좌로는 코넥스 주식을 100주든 1000주든 100만주든 제한없이 살 수 있다. 그 상황에서 그 누구도 코넥스와 코스닥 간 회계품질 상의 차이에 대한 불확실성은 거들떠보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얼마 뒤 M&A는 무산되고 이 회사에 들어간 자금은 모두 연구개발비로 지출돼 사라졌고 납품 계약은 해지됐다는 공시가 뜰 수도 있다.
이는 물론 최악의 시나리오다. 아직까지 코넥스 시장에서 회계 품질 상의 문제로 어떤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지난 24일 거래소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김영환 의원은 "코넥스 시장의 투기와 사기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외부 감사를 연 1회만 받아도 되는 코넥스에서는 코스닥과의 회계 감사 레벨 차이로 인한 리스크는 언제든 적잖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코넥스 시장의 성패는 눈에 보이는 화려한 실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투명한 회계 제도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는 이같은 점을 깨닫고 지금부터라도 힘을 합쳐 투자자들의 보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뉴스핌 Newspim] 노종빈 기자 (unti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