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1980년대 말 일본의 미국 공습을 떠올리게 하는 한국 기업들의 유럽 기업 사냥이 잇따르고 있다.
플라자 합의 이후 높아진 엔화 가치를 무기 삼아 일본 기업들이 록펠러 센터 등 미국의 상징적인 자산들을 쓸어 담았던 것처럼 원화 가치가 오른 데다 계속된 위기로 유럽 주요 기업들의 자산 가치가 떨어지자 한국 기업들이 적극 투자 및 인수에 나서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한국 기업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체력을 키웠다. 최근까지 원화 가치가 하락했던 덕에 수출 성적도 좋았다.
그러나 지난해 원화 가격은 미 달러화 대비 7%, 유로화 대비 5% 가까이 올랐다. 수출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 저하가 우려되고는 있지만 그만큼 해외 기업을 인수하는데 있어선 주머니가 두둑해진 면이 있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연구실 연구전문위원은 "지금은 유럽 기업을 사들이기에 최적기"라면서 "원화 강세와 더불어 전 세계적인 유동성이 풍부해 인수합병(M&A)을 위한 자금 마련에도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대기업들의 행보는 숨가쁘게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7월 영국 CSR(Cambridge Silicon Radio Ltd)사의 무선통신 커넥티비티 칩 부문 영업부를 3억 1000만 달러에 인수했고 8월엔 네덜란드 반도체 설비사 ASML 지분 3%를 6억 2900만 달러에 사들였다. 또한 스웨덴 무선인터넷 칩셋 업체 나노라디오를 340만 달러에 인수했다. SK하이닉스는 이탈리아 반도체 업체 아이디어플래시를 사들였다. 한화그룹은 세계적인 태양광 업체인 독일 큐셀을, 두산중공업은 영국 수처리 업체 엔퓨어를 인수했다.
지난해 이렇게 한국 기업들이 유럽 기업을 인수한 규모는 13억 4000만 달러에 달한다. 일본의 237억 달러, 중국의 96억 달러에 비하면 아직은 왜소해 보인다.
해외 M&A에 대한 입장과 목적은 다소 바뀌고 있다. 과거 한국 대기업들이 미개척 분야에 대한 지출에 목적을 뒀다면 지금은 핵심 기술을 신속하고 용이하게 손에 넣기 위한 M&A에 주력하고 있다.
또 그동안엔 공기업들을 중심으로 천연자원이나 부동산쪽에 집중 투자가 됐다면 이제 민간 기업들이 활발히 나서고 있으며 분야도 명품 쪽으로 넓어지고 있다. 화장품 업체 아모레퍼시픽이 프랑스 향수 브랜드 아닉 구딸을 사들였고, 제일모직은 콜롬보 비아델라스피가를, 이랜드가 이탈리아 만다리나덕을 인수한 것이 그 예.
그러나 해외 사업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것이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해야 하는 것 등은 숙제라고 FT는 지적했다.
바클레이즈 한국 투자은행(IB)부문 대표인 데이비드 한은 "많은 한국 기업들이 유럽에서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프리미엄 브랜드를 키우기 위한 기회를 모색하고 있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워하고 있다"면서 "특히 유럽 경제가 더 침체되면서 투자 가치마저 떨어지게 되는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도이체방크 서울 사무소의 매니징 디렉터 제프리 정은 "한국 기업들은 제조업에 비해 관리가 쉬운 광산, 부동산 기업들의 인수에는 대개 성공적이었다"면서 "그러나 제조업의 경우 수직적 통합이 필요하다"면서 1990년대 말 금융위기를 가져온 재벌들의 비핵심 자산에 대한 무분별한 확장을 경계했다. 그는 경험과 자산을 바탕으로 핵심 사업 부문의 M&A에 주력하는 게 안전한 베팅일 것이며 이것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