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정경환 기자] 글로벌IB 도약을 위한 기반으로 여겨졌던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된 지도 어느덧 3년이 넘어간다. 하지만, 증권사 규모를 글로벌 수준으로 키워 투자은행(IB)업무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했던 법의 취지가 무색하게, 아직 국내에서 대형IB의 출현은 요원하다는 평가다.
2012년 11월 현재 국내에는 외국계 증권사 한국 지사 포함 모두 62개의 증권사가 사업을 영위 중이다. 자통법이 시행되면 대형증권사 위주의 구조조정으로 업계가 재편될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그 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최근 증권사 M&A 물건이 나오고 있다곤 하지만 이트레이드 정도를 제외하곤 사무실에 전화기만 있는 수준에 불과해 실질적 구조조정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고 있다.
IB업무를 위해선 일정 정도 이상의 자산규모가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국내 증권사들의 규모는 그에 한참 못 미치는 실정이다. 이를 감안하면 실질적 구조조정과 대형화는 증권가의 여전한 화두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실제로 IB 진출을 위해선 자산 규모가 커야 하는 것일까?
2000년을 전후해 일어난 국내 은행들의 인수합병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단행된 이른바 은행권 빅뱅을 통해 당시 30여 개의 국내 은행들은 인수·합병 등을 거쳐 국민, 신한, 우리 그리고 하나은행의 4개 대형 은행 위주로 재편됐다.
빅뱅 이후 국내 은행의 IB사업은 규모나 업무영역 측면에서 큰 폭의 성장세를 보였다.
농협경제연구소의 2010년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02년 이후 국내 은행의 이자 수익 비중은 꾸준히 감소한 반면, IB관련 수익 비중은 크게 증가했다.
2002년 69%를 차지하던 이자 수익이 2009년에는 25%까지 급감한 반면, IB관련 수익은 같은 기간 23%에서 73%로 3배 이상 늘었다.
적어도 자산 규모가 IB 진출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국내 증권사는 어떤가?
국내 5대 증권사만 보더라도 자기자본 규모에 있어서 해외 선진 IB와의 차이는 크다.

2011년 기준 국내 증권사 자기자본 규모 1위는 대우증권으로 3조8700억원이다. 뒤 이어 우리투자증권 3조4000억원, 삼성증권 3조2000억원, 한국투자증권 3조800억원 그리고 현대증권이 3조300억원이다.
이에 비해 해외 선진 IB는 골드만삭스가 약 77조원으로 대우증권의 20배다. 또 모건스탠리가 약 68조원에 이르는 데다, 일본의 노무라 증권만 해도 자기자본이 27조원을 넘어서고 있다.
국내 증권사의 자산 규모가 이 같은 상황에서 당장 글로벌 IB 출현을 기대하는 건 무리가 있어 보인다.
금융투자업은 브로커리지뿐만 아니라 IB, 자산관리 등도 중요한 사업영역인데, IB 사업을 위해선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가 필요하다.
그런 견지에서 지난해 자본시장통합법 개정안에서는 IB 요건의 하나로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을 기준으로 정했고, 그와 관련 업계에서 다소 논란이 일기도 했다. 개정안은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 이현진 서기관은 "자기자본 3조원 이상으로 정한 개정안에 대한 금융위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며 "당장은 비판 또는 불만이 나올 수 있겠지만, 증권업 발전을 위한 법제 정비로서 글로벌IB 출현을 위한 일종의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규모만 키운다고 모두 글로벌IB가 될 수 있을까? 국내 증권사가 글로벌IB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IB시장 파이 자체가 일단 커져야 한다는 분석이다.
금융투자협회 조사연구실 임병익 박사는 "자본시장통합법으로 IB 진출의 기반은 마련됐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분야의 축적된 경험이 없다"며 "국내 딜(Deal) 여건이 좋아야 하는데, 기업공개(IPO) 정도 외엔 경험 축적의 기회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김지영 교보증권 수석연구원은 "자통법 시행만으로 큰 기대를 하는 건 무리"라며 "IB시장 자체가 커져야 하는데, 국내에선 IPO 정도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KDB대우증권은 해외 시장 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KDB대우증권 관계자는 "국내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로 해외 시장을 개척해야 할 때"라며 "우선 선진국에서는 틈새시장 공략, 이머징 국가에서는 합작회사 설립의 방법으로 차근차근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해외 수익 비중이 4% 정도인 KDB대우증권은 이를 2015년까지 10%대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국내 증권사의 사업 구조 또한 IB 진출을 어렵게 하고 있다. 규모를 불문하고 대부분의 증권사가 종합증권사를 표방하고 있는데, 각기 보다 경쟁력 있는 부분을 특화시킬 필요가 있고, 나아가 특화된 경쟁력과의 시너지를 노린 인수·합병(M&A)으로 이어져 보다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신애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 연구원은 "미국, 일본 그리고 호주 등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증권사 수가 많다고 볼 수는 없다"며 "그 수가 아니라 모든 증권사가 종합증권사를 지향하고 있다는 게 문제로, 그로 인해 M&A 매력도 떨어진다"라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이어 "외국 증권사들 중에는 부띠끄 형태의 소규모라도 사업 부문을 특화해 경쟁력을 갖춘 사례도 많다"며 "그런 경쟁력이 있어야 M&A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즉, 규모는 경쟁력으로 극복이 가능하고, 이는 더 큰 경쟁력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 규모를 위시한 양적 지원이 아닌 질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업계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동양증권 관계자는 "동양증권은 자기자본 1조4000억원 정도로 3조원의 절반도 안 되지만, 회사채 인수시장(DCM) 실적에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며 "꼭 규모가 커야 된다는 생각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김 수석연구원도 "국내증권사의 롤모델이라 할 수 있었던 해외 대형IB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왔다"며 보다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뉴스핌 Newspim] 정경환 기자 (hoa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