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선미 기자]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이른바 주요 신흥경제국인 BRICs 그룹의 경제수장들이 이번 주 워싱턴에서 회동을 갖고 위기에 봉착한 유로존 국채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가중되는 글로벌 금융 스트레스를 완화시킬 방법을 모색한다.
이들 주요 신흥경제국들은 유로존 재정위기를 해결할 마법의 봉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사태 안정화를 위해 이들이 기여한다면 시장 패닉을 잠재우고 비금융 부문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는 등 강력한 실효성을 보일 수도 있다.
강력한 경제발전 속도를 보여주고 있는 이 4개국의 현금 보유고는 모두 합쳐 4조 4000억 달러에 달하며, 이 가운데 3분의 1은 중국이 보유하고 있다.
BRICs 재무장관 회동이 열린다는 점 자체가 정책결정자들과 투자자들 사이에서 글로벌 경제에 대한 우려가 상당히 높아졌음을 시사한다.
유로존의 심화되는 위기와 더불어 미국 대통령 선거 년도에 예상되는 정책 마비 등으로 글로벌 경제침체가 다시 유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주 씽크탱크인 옥스포드 애날리티카가 전직 관료들, 정책 전문가들, 이코노미스트들을 모아 주관한 컨퍼런스의 분위기는 매우 어두웠다.
'재앙(Doomed)'이라는 타이틀로 진행된 경제 토론에서는 각국 정책결정자들의 통합된 행동과 참신한 사고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우세했다.
특히 로버트 루빈 전 미국 재무장관은 각국의 통합된 노력을 끌어낼 수 있는 글로벌 리더쉽의 부재를 개탄했다.
BRICs 국가들이 유로존 사태에 도움이 되기 위해 발벗고 나선 가운데, 루빈 전 재무장관의 우려는 더욱 역사적인 반향을 울리고 있다.
10여 년 전,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루빈과 재무차관직을 맡았던 로렌스 서머스, 그리고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은 타임지 표지에 "세상을 구할 위원회"라는 타이틀로 칭송을 받았으며, 1990년대 말 신흥시장의 도미노 붕괴 여파를 제한하기 위해 이들이 벌인 국제적인 노력에 대해 끊임없는 찬사를 받았다.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은 1998년 러시아 디폴트 사태 직후 그린스펀의 연설을 그대로 반영하여 "미국 경제는 여전히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심화되는 글로벌 금융 위기 가운데 '번영의 오아시스'로 남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세계 경제와 안정에 대한 상호 이해관계가 너무나 깊어져 미국이 더이상 오만한 태도를 지속할 수 없음을 경고한 것이다.
글로벌 경제를 구원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는 것은 자선이 아닌, 미국의 국익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역설한 것이다.
유로존 위기에 봉착한 현재는 그 당시와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다만 과거에는 도움을 받았던 신흥경제국들이 이제는 위기에 처한 국가들을 돕기 위해 나선 형태가 되었을 뿐이다.
2008~2009년 리먼 사태 이후 세계 경제 침체 당시 서구 시장의 소요와 이에 따른 수요 급감을 경험했던 이들 신흥경제국들은 이제 여느 국가보다 많은 현금보유고와 안정적인 재정을 갖추게 된 만큼 적어도 또 다른 글로벌 경제위기를 막기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는 주장이 내부로부터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스, 이탈리아의 국채 매입 또는 브라질이 제시한 것처럼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한 자금 지원으로는 유로존의 정치적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유럽이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동안 금융 패닉이 확산되는 것은 막을 수 있다.
한편 BRICs 국가들은 이러한 가시적인 유로존 지원을 통해 국채 가격을 단지 몇 bp 올리는 효과가 아닌 장기적으로 훨씬 가치 있는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유로존 국가들의 국채가 중국을 비롯한 BRICs 국가들에 안전한 투자처는 아니지만, 이를 통해 클라이언트 시장의 안정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경제적 이점과 함께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영향력이 지대하게 커질 수 있다는 장점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서구 시장의 접근성이 더욱 용이해진다는 점과 더불어, 특히 중국은 '시장 경제' 위치를 획득하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으며 IMF에서의 영향력 강화 및 세계 보유자산 및 통화 구도를 재편할 수 있는 영향력을 얻을 수도 있다.
일부 신흥경제국 투자자들은 BRICs 국가들의 유로존 국가들의 채권에 대한 투자가 현금보유고만 낭비하는 조치라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앞에 열거한 보상들 외에도 유로존 지원에 대한 대가로 브라질, 러시아, 인도 등은 유엔 상임이사국 지명을 주장할 수도 있으며, 농업 등 분야에서 무역 접근성이 더욱 확대될 뿐만 아니라 실질부문 자산에 대해서도 더욱 열린 투자기회를 요구할 수도 있다.
BRICs라는 명칭을 고안해 낸 당사자인 짐 오닐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은 적어도 이들 국가들은 유로존 지원을 지속하는 대신 유로존 국가들이 위기를 타개하는 방식에 대해 투명성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오닐 회장은 "주요 신흥경제국들이 유로존 국가들의 국채를 추가로 매입하기 위해 조율된 입장을 보이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이들 국가들을 비롯하여 현금보유고가 풍부한 국가들은 정책이 더욱 명확하고 투명한 국가의 채권을 매입하고 싶어할 것은 분명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유로존이 재정 통합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고 유로본드를 발행하게 되면 확실히 이러한 투자자들의 관심을 얻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NewsPim] 김선미 기자 (go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