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BOJ가 공표한 1999년 9월 21일 세부 정책 의사록에 따르면, 이 회의 개최를 5일 앞둔 같은 해 9월 16일에 마사루 하야미 당시 BOJ 총재와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재무상이 긴급 회동을 갖고 엔고 사태에 함께 대처하는 것으로 의견을 일치했다.
당시 이 같은 회동은 미국이 달러화를 지지하는 공조 개입하는 대신에 일본이 양적 완화정책을 요구하고 있다는 금융시장의 관측을 유발했고, 이에 따라 정책회의 개최 시점에는 이미 금융시장이 이 같은 양적완화 정책 실시 기대감을 대부분 반영했다.
하지만 이러한 당시 회의에서 일련의 정책 위원들은 이 같은 양적완화 정책 실시에 대해 반대했다.
당시 하야미 총재는 "통화정책을 외환시장의 문제해결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과거 자산 거품 형성과 붕괴 경험에서 이미 값진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의견을 받아 다른 정책 위원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의문에 빠뜨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위원 역시 "과연 미국이 이 같은 초완화 정책을 도입하는 것을 원하겠느냐면서 또 그렇다고 한다면 이것이 미국 국채 수요를 부양하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는 식으로 말했다.
결국 하야미 총재는 비효과적인 정책을 도입한다면 시장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 같은 결정이 발표되자 엔화 강세와 주가 하락세가 더욱 가속화됐다. 이렇게 되자 BOJ는 같은 해 10월 13일 정책 회의에서 국채 매입을 통해 자금시장에 유동성을 더 많이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BOJ의 이번 의사록 발표는 금융정책회의가 끝난 10년 후 상세 의사록을 공개해야 하는 법적 의무에 의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