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한은법 개정안을 제출한 지 1년 4개월만의 일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한은은 자금조달 및 운용의 불균형으로 유동성이 악화된 금융기관에 대해 긴급히 여신을 제공하는 경우 제한적으로 서면조사 및 실지조사를 할 수 있게 된다.
또 한은은 원활한 지급결제제도 운영을 위해 금융감독기구에 대해 민간결제망 운영기관과 한은망 참가기관에 대한 공동검사를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전날 금융위원회 진동수 위원장은 한은법 개정안이 기획재정위를 통과한 뒤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자리에서 "한은법 개정 방향이 잘못됐다"며 "안타깝고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진 위원장은 "거시감독의 초점은 개별 금융회사의 문제가 시스템 위기로 가는 것을 막자는 것이지 금융회사의 부담을 늘리자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또 "한국은행이 민간 지급결제망 운영기관에 대한 공동 검사권을 갖는 것은 맞지 않다"며 "지급결제 안정과 관련한 책무는 정부에 있다"고 밝혔다.
덩달아 은행연합회 등 6개 금융협회 회장들도 전날 오후 5시 '긴급' 공동기자회견까지 열면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들 회장들은 "국회에 한은법 개정안 논의를 최대한 신중히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너무 서둘러서 처리된 것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다"며 "이번에 통과한 한은법 개정안을 시행하면 은행 수지에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 라 시장금리 인상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떤 부분이 개별 금융회사의 부담을 늘리자는 것인지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데다가, 작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이래 거시금융감독체계 논의가 진행되면서 1년 4개월간 끌어온 한은법 논의를 서둘러 처리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일반 상식 차원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할 만큼 악화된 기업에 어떤 은행이 선뜻 돈을 지급한 적이 있었는가.
또 신용등급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큰 맘 먹고 대출해 준 기업들이 자금을 어떻게 쓰든 눈 감고 귀막고 있었는지 금융회사들에게 되묻고 싶을 따름이다.
만약 금융회사들을 지금 껏 그렇게 경영했다면, 이것은 오히려 믿고 돈을 맡긴 예금자들에 대한 직무유기다. 더욱이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이자 '최종대부자'인 한국은행에서 나오는 돈은 결국 국민의 세금이다. 혈세이다.
긴급하게 쓸 데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고 절절히 도움을 원하면서, 장부를 내보이지 않겠다는 것은 공공기관이 할 일이 못된다.
여기에 한은법 개정안을 시행하게 되면 은행수지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좀 심하게 말해서, 그 동안 얼마나 당당하지 못한 경영을 해왔길래 은행수지 악화까지 고민해야 하는 것인지 궁금증이 발동한다.
단순히 "시어머니가 하나 더 생기는 게 싫다"고 말한다면 차라리 인간적인 마음에 이해해 줄 법도 하다. 장부를 보여주기 싫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항시 그러라는 것이 아니다.
금융상식으로 보면, 민간 지급결제망 운영기관과 한은망 참가기관에 대한 감시·감독을 분리해서 생각하기도 어렵다.
지급결제는, 쉽게 말하면, 중앙은행에 있는 돈이 최종적으로 금융기관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유기적인 시스템으로 어느 한 쪽에서 리스크가 생기면 전체 시스템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다.
현재 한은법에서 민간결제망 운영기관에 대해 자료제출권한이 있는 것도 이미 한은의 감시기능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금융위기로 세계는 금융규제의 필요성과 금융안정시스템의 중요성을 크게 깨달았다. 하지만 빠른 회복세와 함께 당시 깨달은 교훈마저도 날려버린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감이 섬뜩하게 든다. 그것은 또다른 위기를 조장하는 어리석음을 배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법 개정안 논의가 1년 4개월을 끌어오면서 애초의 강경함 혹은 절실함이 사라진 모습이라 안타깝고, 무엇보다 국가경영과 시스템상 제어장치로서 매우 중차대한 문제임에도 결국 '소아적 이해다툼', 쉽게 '밥그릇 싸움'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 이같은 '비이성적인 현실'이 답답할 따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