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배구조 개선 정책 방향 순수할 것 요구
[뉴스핌=한기진 기자] ‘011-751-xxxx 따르릉!’…“없는 번호입니다.”
황영기 전 회장이 KB금융지주 재직시절 쓰던 휴대폰에 전화를 걸었지만, 이미 없는 번호였다.
대신 지난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그의 입장을 대변했던 법무법인 세종에 문의를 했지만, 답변은 없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자신의 소명이 충분히 언론에 알려지지 않고,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던 그였다.
결국 그를 위한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 못한 채, 금융당국의 말대로 “은행법 2건을 위반했고 무리한 투자지시로 은행에 손실을 입혀 징계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만 금융계 종사자들 대부분이 공감하는 진실이 됐다.
하지만 동시에, 글로벌금융위기라는 돌발적 충격에 당초 의도와 달리 부실로 이어졌을 뿐 정상적 경영활동에 대해 제재를 한 처사가 너무 하다는 논리가 완전히 잠재워진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뜻있는 금융인과 전문가들은 제재의 적절성을 둘러싼 비생산적 논의를 할 게 아니라 이번 사태의 전모를 통해 얻어야 할 소중한 교훈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 시중은행 투자매뉴얼 확립 절실함을 일깨워
가장 큰 교훈은 은행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리스크관리가 동반하지 않은 자산운용이란 있을 수 없다는 진리를 일깨운 점이라는 지적의 소리가 높다.
금융당국의 설명을 들으면 2조원이라는 손실 규모 자체가 아니라 리스크심사 등 의사결정절차가 무시 혹은 의도적 폐기됐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CDS(신용부도스와프) 등 구조화상품에 대한 투자경험이 부족한 가운데 기본적인 상품구조조차 파악하지 않고 무리한 투자지시까지 했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감사위원이 투자위험을 경고하는 공식보고서까지 제출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은행의 의사결정절차의 기본적인 ABC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증거자료로 제시한 ‘은행장 투자 지시관련 증빙자료 목록’의 목적도 이를 증명하기 위한 것임을 봐도 그렇다.
금융감독원 고위관계자는 “이번 결과가 은행권에 절차의 중요성이 알려지고, 현업 종사자들이 참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측은 “위험관리가 전제되는 금융투자를 해야 한다는 게 이번 사태의 교훈”이라고 말했다.
◆ 내부통제&감독기구 견제 실효성을 고민케 하다
두번째 교훈은 은행지배구조 문제에 따른 내부통제 실효성을 다시 한번 고민케 했다는 점이다.
우리은행은 정부가 지분 70%를 소유하면서 내부적으로 정치적 외풍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현 행장을 제외하고는 최근 은행장을 거쳐간 사람들 중 정통뱅커 출신은 드물다.
시장에서 금융전문가로 인정받는 인물들이었으나, 은행업에 적합했었는지는 고민하게 한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들의 임명배경 중에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의 시장충격요법이 있었던 게 사실로, 그동안 이런 체제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금융위기로 불거졌다.
또 은행 내부에서 철저하게 훈련 받으며 승진한 전문성을 갖춘 임원들은 자신들의 힘을 발휘하기에는 정치적 영향력에 너무 크게 휘둘렸다.
사외이사나 감사위원 등 견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금감원 고위직 출신 전직 관계자는 “정권의 취향대로 행장을 임명하고 부행장의 임기는 1년짜리로 파리목숨과 같아 반대의견을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은행의 공공성과 사회책임의식은 정통뱅커가 아니면 모른다”고 말했다.
물론 감독기구와 우리금융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둘 다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회사가 대규모 손실을 입을 때까지 사전에 면밀하고 강력하게 감독했어야 해서다.
해당 기관에 대한 책임론이 여전하고 통렬한 반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전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감독당국의 외형확대를 부추긴 정부정책과 규제 사이에서 어정쩡한 자세를 취한 것도 사태를 낳은 원인”이라는 전직 감독당국 고위관계자의 말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의미심장하다.
◆ 현 지배구조로는 같은 사태 못막아…불편한 진실
그렇다고 이런 결과만 놓고 은행지배구조를 손대려는 정부가 사람을 노리려는 계기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과거 역사를 되돌이켜 보더라도 지배구조가 안정적인 은행은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정부가 사람을 흔든 곳은 현재 이름을 찾기 어려워서다.
민영화가 해답이 될 수 있지만, 우리금융의 덩치가 커 매각이 쉽지 않은 규모다.
지주회사법상 민간자본에 매각하는 데 한계가 있고 외국자본에 매각하는 것도 분위기상 어려워서다.
게다가 정부가 예보를 통해 은행을 손에 쥐고 있는 한 장기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곳곳에서 시비를 걸고 있는 탓에 정부 전략이 있을 뿐 은행 전략은 추구하기 어려워서다.
이 같은 고통스런 현실속에서 우리금융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리스크관리체계 강화가 실효성을 발휘할 지 주목해 볼 일이다.
우리금융은 ERM 컨설팅 프로젝트를 추진 ▲중앙집중형 리스크관리 체계 강화 ▲그룹 경영전략 사항에 대한 통제 및 관리 프로세스 신설 등 통합 리스크관리 체계 재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 관련기사☞
[황영기논란 숨은진실上] 제재공방 역전-재역전 사연
[황영기논란 숨은진실中] 외부보고서 오용 불행 불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