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공교롭게도, 지난 15일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등 정부와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이 '정보공유 및 공동검사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번 '정보공유 MOU' 체결로 그동안 미흡했던 부분이 해소됐기 때문에 한은법 개정의 필요성이 희석됐다는 게 정부쪽 입장이다. 반면 한은에서는 이를 별개의 문제로 평가했다.
시계를 1년 전으로 돌려보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리먼 브라더스가 부도가 났다. 그 여파가 전세계로 확산됐고 글로벌 금융시장은 공황(Panic) 상태에 빠져들었다. 1930년대 대공황 때보다 두려운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터졌다.
금융공학에 대한 근본적 문제까지 제기됐다. "미국 투자은행(IB)에서 일한 천재들은 위험을 끊임없이 분산시킴으로써 위험을 제로(0)로 만들 수 있다고 착각했다"는, '눈가리고 아웅했다'는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도 커졌다.
근본적으로는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진중하면서도 합리적인 견해들로 수렴됐고, 자연스럽게 거시 및 금융감독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국내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은의 위상이 높아졌다. 아니, 그보다는 평상시 때는 드러나지 않았던 '중앙은행'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피부로 느끼게 됐다.
특히 금융이 글로벌화되면서 위기의 파장과 진폭도 그렇게 될 수 있으며, 이같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 중앙은행의 역할이 얼마나 필수불가결한 것인가를 절감했다.
현대경제학 교과서에 나온 설명 대로 '은행의 은행'으로서만 존재했던 한은은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고 기준금리를 낮추는 등 위기의 상황에서 금융안정기능 수행에 나섰다.
그러나 정작 한은법에 설정된 한은의 목표는 '물가안정'이 전부였기에 금융위기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데 현실적인 제약이 따른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국제결제은행(BIS)을 중심으로 글로벌 금융화 속에서 중앙은행의 '금융시장 안정 기능'이 줄곧 논의돼 왔지만, 국내에서 이런 기능이 여론의 지지를 받은 것은 작년 최악의 위기 상황에 이르러서였다. 금융의 글로벌화에 미리 대비하지도 못한 결과이다.
특히 정부쪽에서도 그같은 정책기능을 수행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국무회의나 지하벙커회의, 서별관회의, 윤증현 장관이 주재하는 위기관리대책회의 등 각종 정부 회의나 세미나, 강연, 그리고 컬럼에서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이 쏟아졌다.
요지는 한국은행이 나서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금리인하 등 통화정책을 수행하고, 특히 금융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역할을 해달라는 주문이었다.
정부 입장에서는 미래세대의 자원을 끌어들여다 미리 써, 이른바 '적자재정'을 꾸리더라도 재원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더욱 한은의 지원과 역할이 중요했고, 한은도 자기 역할이 필요할 때를 알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채권시장안정펀드를 만들 때도, 이어 올해 2월 은행자본확충펀드를 만들 때도, 정부가 이미 '작업'을 해 놓았지만 성과가 미진하자 주말에 뒤늦게 찾아와 지원을 요청했을 때도, 한은법의 제약이라는 고심 속에서 지원에 동참했다.
금융위기, 비상시국를 극복해 달라는 국민 여론을 수용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전제는 위기 상황이 해소되면 정상화 조치를 한다는 것이었고, 이는 한은법 개정과도 맞물리는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 한은의 책임 강화에 맞춰 권한도 그에 부응해야 한다는 조직 원론에 따라, 한은법에 금융안정기능을 명시적으로 추가해야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기 시작했다.
단독검사권의 경우, 현행법으로도 금융감독원에 공동검사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개정이 불필요하다는 견제세력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실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한은에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지난 4월의 일이다.
그리고 불과 다시 5개월이 지났다. 세계적으로 경제회복의 징조가 감지되고 있고,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가 나오는 등 상황이 변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른 경기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가는 연일 상승하고 있다.
이제 한은은 물가를 걱정해야 한다. 리스크 관리를 해야할 때가 도래했다. 날로 뛰는 집값에 한은은 경고 메세지를 날리고, 금리인상 카드를 만지작 거린다. 금리가 인상될 조짐을 보이자 시장참가자들은 한국은행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가계나 기업들도 대출 금리가 인상될까 노심초사다.
이제 한은은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정부를 지원하고 민간의 파산을 방어해준 듬직한 정책기구에서 경제회복의 '걸림돌'(?)로 인식, 뭇매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사도 마찬가지지만, 시장에서조차 힘들 때는 손벌리고 그렇지 않을 때는 외면하는 처사는 온당치 못한 일이다. 이익을 얻을 때와 리스크 관리를 할 때가 있어 경기가 순환하고 시장도 건전해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4월에 한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어야 했다"며 "우습게도 경기가 어려워야 한은이 부각되는 현실에서 한은이 얼마나 지지받을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1년간 전세계는 부도 도산 파산, 구조조정 실직, 주가 폭락, 펀드 반토막 등 막대한 수업료를 지불했다. 그러고 나서야 거시 및 미시 금융감독 규제를 왜 강화해야 하는지에 대해 깨달았다.
1989년 소련의 붕괴 이후 신자유주의 및 글로벌 금융화를 주도해온 미국이 오히려 선두가 되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리먼 브라더스 파산 1년을 맞아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대형 금융기관 감독과 규제강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의회에 조속한 관련입법 처리를 촉구했다.
국내에서도 지난 2월 실행된 자본시장통합법이 너무 많이 자유를 풀어준 것이 아니냐며 투자자보호와 리스크 관리를 위해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수정했다. 증권 지급결제, 은행 대출 등에 대해서도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그렇지만 유독 '한은법'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고자 한다. 지난 금융위기 속에서 절절히 깨달았던, 그래서 중앙은행 목표를 좀더 포괄적으로 규정하자는 논의는 비단 한은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큰화재가 발생하자 관제탑을 만들어 미리 감시하자 고 나섰던 데서 불씨가 꺼져가니 일단 불이 다 꺼지면 생각하자며 화재예방 조치를 미루자고 한다.
윤증현 장관은 내년에 하자고 한다. 그렇지만 왜 내년인가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길 뿐이다. 미루는 게 능사는 아니다. 논의하기 싫어 연기론을 편다면, 내년에 공론화가 가능한지에 대해 책임있게 발언해야 한다.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행정기구 개편 등 정치 현안이 산적하고 10월 재보선으로 국정감사가 제대로 치러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또 내년에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로 전국이 들썩일 것이 뻔하다.
국회의원들이 정치인인 만큼 그같은 상황에서 차분하게 논의에 동참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작년에 최악의 경험을 한 것을 바탕으로 그 교훈을 통해 공론화됐고, 수개월간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논의를 거쳐왔다.
작년에 경험한 최악의 금융위기에다 현재까지 들인 경제적 사회적 인적 물적 비용을 고려한다면, 경제적인 시각에서 편익과 비용, 그리고 효율성 분석을 한다고 해도, 이번에 한은법 개정에 대해 의견을 모으는 것이 바람직하다.
흔히, 한은법을 둘러싼 한은과 재정부의 대립구도를 두고 '밥그릇 싸움'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로 길거리로 나앉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두 기관의 밥그릇 싸움만으로 치부돼서는 안된다. 또다시 위기에 빠져 국민 전체의 밥그릇이 크게 망쳐지는 것을 예방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은법 개정과 관련해서는 큰 시각과 큰 틀에서 공론화된 사안을 가지고 충분히 협의하고, 최악의 위기에서 얻은 교훈을 이성적 합리적 수준에서 법과 제도로 수용함으로써 미래를 대비할 수 있도록 대승적인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