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잭슨홀 심포지움의 주제는 '위기'에 직면한 국제금융시스템의 안정성에 대한 것이다. 미국발 신용위기가 한창 진행 중인 지금 이런 주제는 분명 매력이 있지만, 워낙 많이 들어보던 얘기인지라 그다지 큰 흥미거리는 되지 못한다.
오히려 지난해 '금융시장 참가자들과 금융기관의 잘못된 판단을 중앙은행이 책임지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던 저 버냉키가, 올해는 그로 인해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는 '특급소방관'이 되어 자리에 서는 웃지 못할 코메디의 결말이 가장 관심이 간다.
투자자들은 금융 위기에 대한 중앙은행의 관리 혹은 시정 능력을 쟁점으로 삼으면서, 그 같은 결론이 앞으로의 위기 해소와 나아가 시장에 대한 규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도 버냉키가 지난해 발언을 어느 정도까지 번복할 것인지, 어느 정도까지 지금 보여준 소방수 역할에 대해 잘 설명하고 방어할 것인지는 중요한 쟁점이다.
전자의 버냉키는 시장에 대한 규제를 반대하고 있는 반면, 후자의 버냉키는 그 동안 규제 장치에 문제가 있었음을, 나아가 올바른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버냉키로부터는 유동성 공급이나 구제를 기대할 수 없지만, 지금의 버냉키에게서는 '헬리콥터'보다 발전된 'B-52 폭격기' 규모의 '돈 뿌리기'를 기대할 수 있다.
전자의 버냉키가 금융시장과 설정한 당국의 관계, 즉 적절한 규제 면에서 후자의 버냉키와 전혀 다르리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단순한 규제 강화인지 금융기관들의 사업모델 변화를 요구하는 수준에 이를 것인지가 관건이다.
◆ '특급소방수'? 'B-52'?
앞서 지적한 바대로 잭슨홀 심포지움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연준의 위기 제어 능력과 그 유효성에 집중된다.
지난해부터 본격 개시된 거대한 신용 위기 속에서 연준은 전례없는 방식의 자금 공급과 금리인하 그리고 구제 등 치열한 '화재 진압'을 진행 중인 특급 소방수다.
하지만 이번 화재 진압의 결말은 확연치가 않다. 대공황 이래 혹은 전후 최대 경제 위기라는 현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찬사가 있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진압 호스의 관을 너무 넓고 세게 연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와 비난이 나오고 있다.
이제 버냉키의 별명은 '헬리콥터 벤'에서 'B-52 폭격기'로 바뀌고 있다. 아예 '버냉키' 혹은 '버냉키의'라는 대명사와 형용사가 만들어 질 판이다.
한편 미국 부동산시장과 전반적인 경제 여건 그리고 금융시장은 버냉키가 예상한 것과는 좀 달리 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베어스턴스의 구제가 예기치 않은 작품이라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공적 구제 필요는 더욱 예상치 못했던 엄청난 변화다. 미국발 금융 혼란은 아직도 바닥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고, 위기가 정상적인 대출 시장으로도 전염되는 등 최소한 몇 년은 더 고생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어차피 경과해야 할 위기라면 지나친 유동성 공급과 개입을 통한 구제 등으로 얕은 고통을 더 오래 지속하는 것은 필요치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본이 부실을 숨기고 조정을 지연한 대가가 '잃어버린 10년'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 버냉키, "위험관리에 심각한 실패"
다수 전문가들은 버냉키가 그의 선임, 미국 중앙은행가들 중 '마에스트로'라는 호칭을 부여받은 '앨런 그린스펀'에게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지도 궁금해하고 있다.
그린스펀은 초저금리 상황을 장기 지속하면서도 계속해서 모기지대출 시장에 대한 엄격한 규제에 반대해왔으며, 주택시장에 거품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버냉키도 이 같은 입장을 수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난달 의회에 출석한 버냉키는 '이전 위험관리 면에서 다소 심각한 실패가 발생한 것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실수는 누구의 것인가.
혹자는 최근 예상치 못하게 돌아가는 전례없는 위기 사태가 버냉키의 이전 생각을 바꾸게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럴 경우 자신까지 반성의 대열에 포함될 수도 있다.
하지만 위기가 어느 정도로 확대될 것인지 초반에는 전혀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대형 은행 파산 위기에 대처한 연준이나 지금 양대 모기지 업체에 대한 재무부와의 공조를 통한 구제 노력을 비판하기는 쉽지 않다.
연준 관계자들 스스로는 위기의 순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금리를 크게 내린 것이 큰 화를 면하게 하는데 성공했다고 자찬하고 있다.
당국이 잘못된 판단과 행위를 감싸준다고 생각이 되면 금융시장에 큰 모럴해저드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는 계속 내놓고 있다. 그래서 도와주는 대신 해저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강하게 규제할 것이란 얘기를 한다.
그러나 밀켄연구소가 제출한 보고서에서는 "과거 경험으로 볼 때 금융 위기의 한 가운데서 적극적인 개혁을 단행하려는 야심을 가질 경우 꼭 '나쁜 규제'가 귀결되곤 했다"며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
◆ 경기침체냐 인플레이션이냐: 초점
한편 잭슨홀이 열리는 시점을 앞두고 연준 관계자들은 갑자기 일치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최근 연준 내 강경파들은 모두 하반기 경기가 거의 정체할 것이라며 또한 인플레이션 압력도 점차 완만해질 것이라고 발언해 눈길을 끌었다.
물론 이들은 만약 예상대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다시 금리인상에 나서야 할 것이라는 경고를 빼놓지 않았다.
버냉키 등 온건파 쪽에서도 태도를 바꾸어 가고 있다. 8월 회의에서는 유가 하락, 금융 혼란, 패니메이 프레디맥의 어려움, 해외경제 및 달러 환율 문제 등 금리 인상의 필요를 줄이는 요인들에 대해 어느 정도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앞으로 통화정책 운용을 양쪽으로 열어두는 태도를 보였다.
온건파와 강경파가 손을 잡은 곳은 바로 근원인플레이션 압력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지켜보면서, 당분간 "(함께) 인내심을 발휘하자"는 쪽으로 보인다.
물론 지금의 단합은 약한 고리가 분명하다. 현재 경기와 인플레 균형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깨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충분히 금리를 내린 이상 금리인하가 금리인상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앞으로 금리인상에 나설 때도 어느 정도 일사분란한 행보를 보일 여지는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