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개월 동안 국제 금융시장을 혼란으로 몰아넣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위기는 아직 진행형이다. 오히려 모노라인(Monoline, 채권보증업체) 위기를 거쳐서 회사채와 상업용 부동산 시장을 두드리는 등 전반적인 금융 위기로 전환하고 있다.
이 가운데 미국 경제는 삼중의 위기에 처했다. 주택시장의 조정이 생각보다 훨씬 깊고 장기화되면서 본격적인 경기침체를 유발, 소비경제에 깊은 상흔을 남길 것으로 우려된다. 폭발적으로 상승한 원유 가격 등 국제 상품 가격 때문에 글로벌 인플레이션 악몽이 재연되는 듯 하다. 중앙은행이 공세적으로 금리를 인하하고 유동성을 공급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의 불안은 지속되고 있다.
이제까지 과연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인지 아니면 침체를 회피할 수 있을 것인지 논쟁하던 경제전문가들은, 이미 침체는 찾아왔으며 이제는 이 침체가 얼마나 깊고 오래 지속될 것인지 나아가 이 같은 침체를 벗어나 경기가 회복되는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사가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가운데 미국 정책당국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벤 버냉키(Ben S. Bernanke)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의장도 이제는 성장과 물가 그리고 금융시장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 하는 위치에 놓이면서 바싹 긴장한 모습이다.
(이 기사는 13일 오전 8시31분 유료기사로 송고되었습니다.)
◆ 트릴레마.. 깊어지는 위기 전개, 본질은
이번 금융 위기는 발생 이전에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되기는 했어도, 그 발전속도와 규모 그리고 금융시장의 완충능력 면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속출해 금융 당국과 시장 참가자들을 아연실색케 하고 있다.
지금 주요 정책당국자들이나 국제 금융기구들은 한결같이 작금의 위기가 얼마나 깊이 그리고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불확실하다'고 말한다. 고통은 클 것이라고 겁주고 있다.
당국은 이전에 서브프라임 위기가 발생할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실 규모와 그것이 전체 시장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대략 계산했다.
버냉키 의장은 의회에서 약 1000억 달러 정도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지만, 전체 모기지 시장을 뒤엎을 정도는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 과거 위기 발생 때와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위험 수용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었기 때문에 이미 경고는 지속되었다고 되풀이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국의 말을 믿은 것은 금융시장의 실수였다. 당국도 재무제표 부외란에 기입된 투자상품과 도관회사들의 진짜 규모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또 이런 장부에서의 정보만으로는 파악하지 못한 복잡하게 얽힌 위험 누적 상황을 예상하기 힘들었다. 결국 위기가 터지고 심화되면서 그 누구도 파악하지 못한 금융시스템의 진짜 레버리지(leverage)가 실체를 드러냈다.
최근 브렌데이스대학과 시카고대학 경영대학원이 공동 주최한 통화정책 컨퍼런스에서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 그리고 민간 학자들이 공동으로 작성한 모기지 손실 예측 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2년간 총 4000억 달러 규모의 손실이 발생하게 되고 나아가 금융자산이 총 2조 달러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 제출됐다.
국제결제은행(BIS)의 말콤 나이트(Malcolm Knight) 총지배인은 이번 사태에 대해 '옵션 손익구조(option payoffs)'의 금융시스템으로의 확산이란 설명을 시도했다.
시기가 좋을 때는 옵션 '프리미엄'을 꾸준히 챙기던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상황이 갑자기 악화되면서 옵션이 '행사'되며 비선형적인 손익구조가 등장하게 된다는 논리다.
지난 해 여름 위기 발생 이후 부채담보부증권(CDO)과 같은 구조화 상품에 대한 가격 산정의 어려움과 신용등급의 갑작스러운 붕괴사태는 "신뢰의 위기(crisis of confidence)"를 이끌었다.
이는 다시 불확실하고 모호한 신용상품 시장의 유동성을 급속히 고갈시켰다. 유동성이 너무 풍부해서 문제이던 글로벌 금융시장에 놀랍게도 돈이 메마르기 시작했다.
특히 잘나가던 대형은행과 금융기관들이 대규모로 신규 금융상품에 투자했기 때문에 타격이 심했다. 이 때문에 위기는 곧바로 금융시스템의 심장부로 날아들었다. 바로 은행간 무담보 자금대출시장이 얼어붙은 것이다.
은행간 자금시장의 말단에서 대규모의 지속적인 위험 프리미엄이 발생했고, 이 때문에 지난 해 연말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은 공동으로 이 시장에 대한 유동성 공급 개입에 나섰다.
이 때부터 미국 연준은 본격적으로 경기 둔화 위험에 방점을 찍고 위기가 경기 전반에 충격을 주지 않도록, 혹은 그 충격이 최소화되도록 공세적인 완화 정책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1월에만 1.25%포인트 금리인하를 단행한 것이 단적인 예다.
이제 은행간 자금시장의 긴장은 다소 완화되었지만, 지금은 기초자산의 신용의 질 문제가 첨예한 문제로 부상했다.
주택저당증권(MBS) 시장에 유동성이 고갈되면서 가격 산정조차 어렵게 되자 연준은 기간자금공급 입찰 규모를 1000억 달러로 늘림과 동시에 MBS를 담보로 재무증권을 빌려주는 기간증권대출(TSLF)이란 특단책을 통해 무려 2000억 달러까지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2000억 달러는 지난 2월말 현재 프라이머리 딜러들이 보유한 기관채와 주택저당증권 포지션을 완전히 커버할 수 있는 규모다.
◆ 끝모를 디레버리징(de-leveraging), 악순환 고리는 끊을 필요
정책 당국이나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은행과 여타 금융기관들의 대규모 대손상각 처리나 모노라인의 위기 등 시장의 혼란이 진행형이며, 이것이 다시 신용등급 하향조정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같은 시장의 디레버리지 과정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고통스럽더라도 이 조정 과정이 모두 진행되어야만 새로운 균형이 찾아올 수 있을 것이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유동성 위기와 마찬가지로 신용시장의 악순환의 고리가 위기의 밑바탕에 있는 미국 주택 경기의 조정을 더 심화, 장기화하지 않도록 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사실 미국이 직면한 최대의 위험은 광범위한 모기지 연체를 동반하는 주택가격의 급락 가능성에 있다.
지금은 모기지 대출이 원 대출기관에 그대로 보유되는 경우가 적다. 대부분 자산유동화증권(ABS) 형태로의 복잡한 증권화(securitization)를 통해 세계 각처로 팔려나갔다. 투자자들은 특정 모기지를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특정한 조건부 상환 흐름에 대한 수취 권리를 보유하게 된다.
결국 원 대출기관(originator)과 대출자-주택소유자(borrower-home owner) 사이의 단일한 관계나 협상은 불가능해진 상태다.
한편 위기 발생 후 정책 당국은 예상치 못했던 위기 전개과정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너무도 강력하고 빠르게 금융시스템의 핵심부인 은행이 타격을 입은 것이 가장 부담이었다. 그리고 대출이 발생한 지역 외에 다른 지역으로 이 위기가 분산되었다는 점을 간과했던 것도 문제였다. 유럽이 특히 위기에 노출됐다.
도관회사 및 특수목적법인(SIV)의 급격한 성장을 제대로 간파파지 못했다는 것과, 금융기관들이 위기에 충분히 대처할만큼 자본여력이 풍부하다고 자신했던 것도 큰 후회가 남는 대목이다. 금융시장의 위기는 전형적으로 '옵션 손익구조'처럼 비선형성을 동반한다는 점을 간과했다.
이 때문에 다시 본질로 돌아가서 앞으로 금융상품과 신용위험 노출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고, 위험 관리활동의 적극적 개선 그리고 나아가 금융기관의 성실한 자세에 대한 보상 확립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조치는 정책 당국과 금융 규제기관 그리고 민간 시장 참가자들의 공동의 노력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