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흐름은 미국 정책당국이나 기업, 월가 투자자 뿐 아니라 중동 중앙은행이나 남미 농산물 거래자 등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28일 뉴욕 외환시장의 달러/유로는 장중 1.5228달러까지 급등하며 연속 사흘째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6년 연속 유로화 대비 달러 약세 폭은 40%에 도달했고, 주요 통화대비 달러화지수는 20% 이상 조정받으며 12년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최근 달러 약세는 미국 고용시장 약화와 주택시장의 붕괴로 인한 경기 침체 우려와, 이에 대응하기 위한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의 공격적인 금리인하에 따른 것이다.
달러화 표시 자산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히 드러낸 투자 귀재 짐 로저스(Jim Rogers)는 조만간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어버릴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기도 하다. 막대한 미국의 부채 증가세를 견딜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런 변화가 쉽게 오거나 또 짧은 기간 내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 조짐을 쉽게 발견하기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 체면 구겼지만 그래도 기축통화
달러화가 과거 영국 파운드화에서 세계 기축통화의 지위를 가져온 것처럼 앞으로 자신도 그 자리를 다른 통화에게 내어줄 것이란 주장이 제기된 것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FS)의 윈도 운영체제가 그렇게 비판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주된 운영체제로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달러화는 아직도 금융시계의 보편어이며, 매일 거래가 이루어지는 글로벌 시장의 중개수단이다.
이 때문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9일자 기사를 통해 "아직은 달러화의 지위를 대체할 수 있는 준비된 선수가 없으며, 과연 달러화의 지위가 마냥 허물어질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달러화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는다면 전세계 기업과 정책당국자들은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기간 고생해야 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금 전세계 중앙은행들의 외환보유액 중 거의 2/3 정도는 달러화 자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로화가 약 1/4을 차지하는데, 도입 당시 18% 비중과 비교할 경우 늘어나기는 했어도 과거 마르크화 시절의 비중에는 다가서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이렇게 된 것은 미국이 세계 주요국들의 주된 교역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축적된 외환보유액을 쉽게 해소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무역에 있어서는 달러화가 지배적이다. 기업들은 미국과의 교역이 아니더라도 공통 통화로 거래함으로써 거래비용을 줄이려고 하며, 일례로 인도네이사, 태국, 파키스탄 등의 무역 중 대미 거래 비중은 1/4 미만이지만 80%는 달러화로 표시된 송장이 오간다.
원유와 같은 상품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들은 더 심하다. 알제리 같은 경우 원유 수출 중 대미 선적이 차지하는 비중은 27%지만, 나머지 물량도 100% 달러화로 거래한다.
이와 관련, 조지프 퀸랜(Joseph Quinlan)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수석시장 전략가는 "한다디로 글로벌 금융아키텍쳐에는 달러화를 대체할 존재가 부재하다"고 말한다.
결국 달러화 수요가 달러화 가치를 부양해 왔으며, 이제는 그 지위가 흔들리면서 가치가 약화되고 있다는 주장도 성립한다.
◆ 기축통화 구도, 쉽게 변하기 힘들어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이익이 되기도 하지만, 손해도 본다. 그러나 미국은 막대한 대외 부채를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나 인도네시아가 직면했던 외환 유동성 위기 같은 사태에 직면할 이유가 없다.
달러 약세는 미국 수출 경제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지금 미국 재무부 등은 강한 달러화가 국익에 부합한다고 외치면서도 사실상 달러 약세가 경기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점진적인 통화 가치 절하에는 개입하지 않고 있다.
달러 약세로 인해 수입물가가 올라가는 것은 부담이다. 이로 인해 중앙은행의 인플레 파이팅이 어려워진다. 하지만 해외업체들이 달러화로 표시된 제품 가격을 잘 올리지 않기 때문에 부담이 큰 편은 아니다.
이렇다 보니 올해 다보스포럼에서 조지 소로스(George Soros)는 신용 위기가 달러화의 세계경제 지배력에 타격을 줄 것이라면서, 이는 기본적으로 "달러 기축통화 체제에서 60년 동안의 신용 팽창기가 종료되는 것이기도 하다"고 곁들였다.
오래 동안 달러화 가치 하락을 예언해왔던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이 최근 CNBC와의 대담에서 "달러화가 쓸모없는 통화가 될 운명"이라고 발언해 시장에 충격을 준 사건도 빠뜨릴 수 없다.
그는 곧바로 "쓸모없다(worthless)가 아니라 가치가 줄어든다(worth less)는 식으로 말한 것이라고 발언을 정정했다.
짐 로저스 같은 인물들은 공공연히 달러화의 기축통화 시절이 지났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역사가 말해주듯이 이런 일은 쉽게 일어나기 힘들다. 달러화 기축통화 시대로 막대한 경제적인 지형의 변화를 수반한 것이 사실이다.
20세기 초 미국 경제는 이미 세계 최대 경제로 부상했지만, 당시 중앙은행들의 외환보유액 중 2/3는 파운드화가 차지하고 있었다. 달러가 지배력을 드러낸 것은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난 뒤 유럽이 황폐화되고 나서다.
심지어 런던의 원당 선물 거래는 1980년대까지 파운드화로 거래했다. 지금은 브라질이 세계 원당 수출의 40%를 차지하고 있는데, 관세 때문에 미국으로는 거의 수출되지 않지만 거래를 달러화로 한다.
달러 약세로 인해 손실 위험에 처한 현지 업체들은 수출액 중 상당부분을 선물을 매수하는 식으로 헤지한다. 올들어 원당 선물 가격이 30% 급등했지만, 이 중에서 달러 가치 하락에 대한 보전 차원의 상승세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다음달 팜유(Palm0Oil) 국제선물 거래소를 다음 달 개설한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세계 생산의 87%를 차지하고 중국이 최대 수입국이며 미국의 미중은 3% 미만이지만, 거래는 달러화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 거래소의 대표는 "한때 유로화로 거래하는 것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서, "하지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글로벌 교역이 여전히 달러화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달러가 약세를 보인다고 해도 별 차이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과 정치적인 라이벌 국가들은 달러화 지배력을 깨기 위한 의도적인 대응을 보이기도 한다.
러시아가 원유를 포함한 루블화표시 상품 거래소를 개설하면서 공공연하게 "기축통화가 재고되는 상황이라 그 기회를 활용하려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란도 러시아에 대사를 보내 이 같은 계획에 동참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그 동안 달러화의 지위를 흔들려던 다른 시도가 성공한 적은 없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은 2000년 9월 석유를 달러화로 표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해 긴장감을 불러일으켰지만, 2003년 그가 체포될 때 100달러 지폐로 7만 5000달러나 보유하고 있던 것이 알려지기도 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이란은 달러 약세에 대한 우려를 공공연히 표명했지만, 8개국이 참여하는 33년 역사의 아시아청산연맹(Asian Clearing Union) 본부가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여기서도 역시 달러화가 거래된다.
전문가들은 OPEC이 달러화에서 유로화로 거래 통화를 바꿀 계획을 밝히기는 했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모두가 이런 표시통화 변경에 준비가 되어있지 않고 다른 통화 가치도 달러화처럼 하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동이 유로화를 선호하는 이유는 유럽과 교역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로화가 유럽에서 기축통화 역할을 할지는 모르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보면 아직 소수 통화에 불과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과 일부 중동 국가를 외환보유액 집계에서 제외한다. 이들 나라가 달러화 연동체를 사용하고 달러화를 보유액에 축적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외환보유액 내 달러화의 비중은 공식 통계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판단된다.
중앙은행들은 보유액을 다변화할 경우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미국이 주요 교역상대국이라 끊임없이 달러화가 유입되고 축적되기 때문에, 미국의 무역적자가 급격히 줄어들지 않는 이상 변화가 쉽지 않다.
또 보유액 내 달러화를 매도할 경우 달러화 가치가 약화되면서 더욱 수출 경쟁력이 저하할 가능성이 높아지며, 보유액 자체의 가치가 줄어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할 수 있다.
앤디 셰(Andy Xie) 동아시아 담당 경제전문가는 "아시아에서는 달러화를 대체할 통화가 없으며, 위앤화가 달러화를 대체한다고 해도 아마 30년~4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