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새로운 시대, 미국 연준의 새로운 도전
② 거시경제적 안정 제고와 금융 불안 심화
우선 첫 번째는 이른바 ‘대완화’(Great Moderation)인데, 사실 이에 대한 버냉키의 관심 역시 현대 글로벌 중앙은행 시스템의 한 가지 뚜렷한 성과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즉, 오늘날 글로벌 경제 전반에 걸쳐 산출 및 인플레이션의 뚜렷한 변동성 완화를 특징짓는 대완화라는 현상은 무엇보다 통화정책의 개선에 따른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아직 학계에서 뚜렷한 ‘컨센서스’가 형성되고 있지는 못하다. 버냉키가 설명하고 있다시피, 실제로 아직도 이를 그저 ‘요행’의 소산으로 간주하는 시각도 상존해 있고, 한편 ‘구조변화에 힘입은 경제의 충격흡수 능력 개선’에 따른 것이라는 평가도 제기된다.
하지만 버냉키는 통화정책의 개선이 나머지 두 가지 가설을 압도한다고 역설한다. 그렇다고 통화정책이 완벽해 졌다는 식의 얘기는 아니다. 다만 그가 강조하는 것은 연준을 필두로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 전반에서 지난 1970년대 석유 파동 와중에 경험했던 통화정책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이후 보다 적절한 대응책을 강구했고, 그 결과 일정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현대 경제 관리의 무게 중심이 중앙은행과 통화정책에 집중되고 있음을 역설하는 대목이다.
사실 “세계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을 자임하고 있는 국제결제은행(BIS) 역시 지난 20여년에 걸친 글로벌 경제 환경의 변화와 관련해 무엇보다 인플레 억제를 중시하는 통화 체제의 확립을 그 주축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대완화, 그리고 거시경제적 안정성의 제고는 동시에 그 이면에 만만치 않은, 아니 한층 심각한 도전을 환기시키고 있다. 실제로 버냉키 역시 이런 대완화의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도전”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다. 즉, 거시경제적 안정성의 외양 하에서 “새로운 원천의 잠재적인 경제 불안”이 부상하고 있다면서, “금융은 물론 실물 차원에 두루 걸친 자산 가격의 급변동” 문제를 통화정책의 새로운 도전으로 지목한 것.
여기서는 일단 지난 1990년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적인 주식시장 버블과 이후 버블 붕괴의 경험이 포커스지만, 오늘날 새로운 버블 징후, 특히 미국 등 앵글로 색슨권을 중심으로 글로벌 차원에 확산되고 있는 부동산 버블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실은 이런 점에서 상당수 비판론자들은 그린스펀의 유산, 나아가 현대 글로벌 중앙은행 시스템의 성과 자체를 폄하하기도 한다. 정작 버블 방조 내지는 버블 조장에 탐닉했다는 이유.
그러나 버냉키는 이런 비판에 저항하며, 그린스펀과 동일한 진단을 내린다. 즉, (1) 버블을 사전에 신뢰할 수 있게 식별할 수 없고 (2) 통화정책은 버블을 안전하게 진화하기에는 “너무 퉁명스런” 수단이라는 것. 대신 버냉키는 통화정책으로 버블에 직접 대응하기 보다는 미시적 차원의 금융 안정(특히 금융 규제완화를 올바르게 추진하는 것)으로 사전에 적절히 대비하거나, 혹은 사후적으로도 이런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이 점에서도 그린스펀의 (통화정책을 통한 거시적) ‘사후 청소’ 전략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여기서 임기 말 그린스펀의 ‘사고의 진화’에 대해서도 잠깐 살펴보자. 사실 버블 자체를 공략하기 보다는 버블 붕괴의 여파를 정리하는 데 포커스를 맞춰, ‘사후 청소’ 전략으로 일관되던 그린스펀의 태도는 임기 말 다소 선회하는 듯한 조짐을 보여 주목을 끈다.
먼저, 그는 당시 미국의 주택 버블 논란에 대해 ‘버블’(bubble)이 아니라고 진단하면서도, 대신 ‘거품’(froth)이라는 표현을 동원한 바 있다. 버블과 거품의 차이를 정확히 가르기는 어렵지만, 일단 시스템 전반의 차원이 아니라 ‘국지적인’ 차원에 초점을 맞춘 표현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본래 주택 경기는 국지적인 성향이 강하며, 따라서 버블이니 거품이니 하는 논란 자체는 별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린스펀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나아가 그린스펀은 점차 자산 가격 혹은 대차대조표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관심을 환기시킨다. 특히 그의 퇴임을 기념해 열린 2006년 잭슨홀 컨퍼런스에서 그는 “이제 경제 추이에 대한 우리 분석은 전후 수십 년 간의 경우보다는 대차대조표 문제를 보다 상세하게 다룰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 수년간 세계경제 활동을 결정하는 요인들은 다양한 자산 유형에서의 자본이득과 이런 자산 투자를 보전하는 부채에 의해 크게 영향 받았다. 따라서 우리의 예측과 정책은 갈수록 자산 가격의 변화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고 역설한 바 있다.
물론 자산 가격 자체를 타겟으로 한 정책 운영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지만, 자산 가격과 이를 매개로 한 대차대조표의 변화에 따른 파장에 대해서는 면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는 것.
그리고 이런 인식은 다른 한편으로 ‘리스크 프리미엄’(risk premium) 문제로 진전되면서 ‘과잉 유동성’에 따른 위험을 경계하는 태도로 이어지기도 했다. 즉, 장기적인 경제 안정으로 인해 리스크 프리미엄이 하락하면서 자산 가격 앙등을 유도하고 있지만, “그러나 새삼스럽게 풍부한 유동성이라고 간주되는 것들은 생각보다 손쉽게 사라질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투자자들의 신중함이 다시 부상하면 리스크 프리미엄이 상승하고, 그 결과 자산가치가 낮아지면서 그 동안 자산가격을 뒷받침하던 부채의 정리가 촉진된다”고 지적한 것. 따라서 그는 “바로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낮은 리스크 프리미엄 상태가 장기화된 이후에는 녹록치 않은 사태가 발생했던 것이다”며 그 향방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이는 결국 오늘날 중앙은행 혹은 통화정책이 단지 인플레 압력 차원을 벗어나 시스템 차원의 자산․부채, 그리고 과잉 유동성 문제에 초점을 맞출 필요성을 역설하는 대목이다. 사실 BIS는 최근 이런 문제의식을 적극 개진해 왔고, 연준과 헤게모니를 다투고 있는(?) ECB도 마찬가지다.
‘월가의 이단자’ 혹은 ‘비관론자의 대명사’로 평가받는 모건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로치는 아예 “자산 경제”(Asset Economy)라는 화두를 제기하며, ‘거시경제 법칙의 왜곡’(?)을 질타하기도 한다. 정상화 과정에서 자칫 격렬한 재조정의 리스크가 부상하고 있다는 이유. 그리고 최근 G-7 회담(독일 에센)에서도 거시 경제 환경을 시장 참가자들의 리스크 평가와 결부시킨 대목도 같은 맥락에서 관심을 환기시킨다.
그러나 버냉키는 일단 과잉 유동성 문제에 대해서는 대체로 침묵으로 일관하는 한편, 리스크 프리미엄 문제는 통화정책의 취약점으로 지적하면서 자산 버블 해소에 있어 거시적 차원의 통화정책의 무력성을 입증하는 논거로 제시한다. 대신 미시적 차원의 금융 안정 혹은 건전성 정책이 적절한 처방이라는 것.
하지만 정작 미국 연준의 ‘넘버 2’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티모시 가이트너 총재는 그린스펀과 유사하게 대차대조표의 확대에 주목하면서, 자산가격 행태에 대한 대응을 통화정책의 주요한 도전으로 제기하고 있어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또 이런 고민을 이른바 ‘금융시스템 안정’ 문제와도 결부짓고 있는데, 특히 최근 각종 신용 파생상품의 급부상과 일부 헤지펀드 부도 등과 맞물려 그 향방에 많은 관심이 쏠리는 실정이다. 다시 말해 금융 안정과 거시경제 안정이 분리되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게다가 대완화, 아니 인플레이션 퇴치에 있어 중앙은행의 ‘성공 신화’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구심이 상존한 실정이다. 가령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한, 하바드 대학의 케네쓰 로고프는 “과연 중앙은행들이 진정으로 인플레라는 ‘히드라’(hydra)를 퇴치했는가?”라는 화두를 던지며, 대신 세계화에 따른 순풍 효과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나아가 “세계화의 순풍이 역풍으로 반전될 경우 어떻게 될 것인가?”고 반문하며, 중앙은행의 성공에 대한 일종의 “환영”이 오히려 인플레 기대 측면에서 새로운 충격을 노정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버냉키조차도 최근 들어 점차 테러리즘과 같은 각종 지정학적 리스크는 물론 보호주의의 부상에 따른 세계화에 대한 역공의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는 실정이다.
[뉴스핌 장보형 객원이코노미스트]
※본 특집의 저자인 장보형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한신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0여년간 국내 정보컨설팅 업체인 와이즈 인포넷에서 '국제금융/경제 팀장'을 맡아 국제 금융시장과 세계 경제 동향 점검 및 이슈 분석을 전담한 후, 현재는 '글로벌 마켓 이코노미스트'로서 프리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뉴스핌 객원 이코노미스트로 합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