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신조어 중에 어쩔티비라는 말이 있다. 상대의 주장이나 지적을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주로 듣기 싫은 말을 무시하거나 회피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때로는 뒤에 있는 '티비'를 다른 말로 대체해서 어쩔냉장고, 어쩔스타일러 같이 바꿔 쓰기도 한다.
이 말을 가져온 이유는 정부가 지난 1월 29일 발표한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및 신속화 방안(이하 1·29 대책)이 지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규모 주택 공급임에도 불구하고, 사전 협의와 대화가 단절된 정책이라는 지적을 받기 때문이다. 특히나 대규모 주택 공급 정책의 입안과 집행 과정에서 지역의 특성을 가장 밀착해서 파악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와의 긴밀한 사전 협의와 지역 주민의 수용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문제는 협상 과정이 삭제된 이번 공급 대책은 수도권 핵심 입지에 6만가구의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거시적 목표 앞에 도시계획의 기본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특히나 어차피 정해진 공급안을 밀어붙이는 '어쩔공급'이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개발 대상지로 지목된 서울 노원구, 용산구, 과천시 주민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마주해야 하는 것은 지역 주민들의 반발뿐만이 아니다. 도시계획 전반을 관장하는 광역지자체인 서울시와 산하 기초지자체와의 필수적인 행정적 교감이 누락된 결과는 주택 공급의 타당성을 검증해야 할 교통 및 환경 영향평가 적용 문제와 같은 기초적인 산술 과정에서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앞서 서울시는 정부의 대책에서 서울 지역 내 29곳에 대한 공급계획이 포함됐으나, 이 중 이미 발표된 18곳의 경우 서울시가 사전에 의견을 개진할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고 전했다.
무려 1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공언한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이 같은 일방적 공급 정책이 지닌 가장 큰 맹점을 보여준다. 당초 46만2000㎡ 규모의 부지에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장기간의 협의를 거쳐 도출한 적정 주거 규모는 6000가구 수준이었다. 이는 국제업무 및 상업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거 비율을 30% 수준으로 통제한다는 원칙에 입각한 산술의 결과였다. 하지만 정부는 돌연 이번 대책을 통해 주거 비율을 기존 30%에서 40%로 확대하고 용적률을 인위적으로 상향하겠다는 방침을 전했다.
장기간의 숙의 결과를 한순간에 무시했다는 원론적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1만가구라는 비율을 어떻게 도출할 수 있었는지는 강한 의문이 남는다. 4000가구의 증가는 상하수도 용량, 전력망 부하, 인근 교차로의 교통 서비스 수준 등 복합적인 인프라 계획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나 초중고 학군 배정 수용력을 완전히 초과하면서 교육청 역시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절차적 모순도 심각하다. 당초 주택 공급 신속화의 일환으로 내놓은 정책임에도, 법정 의무 사항인 교통영향평가와 환경영향평가를 다시금 받아야 하는 상황으로, 서울시는 이 같은 영향평가 절차를 진행할 경우 2년의 개발 지연이 예상된다고 보고 있다.
주택 공급의 신속화를 위해 절차를 생략하고 숫자를 늘린 정부의 결정이, 오히려 복잡한 영향평가 재실시의 덫에 걸려 사업을 2년 이상 후퇴시키는 속도의 역설을 초래한 것이다. 만약 개발 계획 변경 없이 가구 수를 늘리려면 기존 가구 평형대를 쪼개기 식으로 늘리는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자 "용산국제업무지구를 닭장으로 만들 셈이냐"는 조소가 용산구 주민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
협의가 없었다면, 최소한도로 원칙이라도 바로 세워져야 한다. 하지만 지자체에는 엄격한 잣대가 드리워지던 것이, 정부 주도의 정책에서는 강행되는 형국이 반복되고 있다. 이번 대책에 포함된 태릉골프장의 13%는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과 중첩돼 있다. 세계유산지구에 일부라도 포함되거나 접하는 개발사업은 세계유산영향평가 의무 지역으로 필수적으로 평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의아한 점은 정부는 앞서 서울시가 추진했던 세운지구 재개발에 대해 종묘 경관 저해를 이유로 난색을 표한 바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태릉골프장과 달리 세운4구역 재개발 구역은 종묘 세계유산지구 밖에 위치해 있어 특별법상 세계유산영향평가 의무 대상도 아니다. 그럼에도 개발을 반대했던 정부가 자신들이 추진하는 대책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추진 행보를 보이는 것은, 원칙의 경계가 희미해진 아전인수식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가 어렵다.
원칙과 협의가 결여된 정책의 결과는 같은 지역에서 이미 선례를 찾을 수 있다. 2020년 당시 8·4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됐던 태릉골프장의 공급 계획은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인해 무산됐던 바 있다. 그럼에도 공급 물량 달성 논리에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행정적 신뢰도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지역 감정을 상당히 훼손시키는 결과로 귀결될 뿐이다.
주택 공급은 단순히 지도 위에 숫자를 기입하는 탁상공론이 아니다. 지자체와의 소통을 건너뛰고 일관성 없는 잣대를 들이미는 일방통행식 행정은 결국 사업 지연과 극심한 사회적 갈등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정부는 무리한 물량 달성에 급급해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하는 맹목적인 추진을 멈추고, 지자체 및 지역 주민과 마주 앉아 실질적인 협의 테이블을 가동해야 한다. 공급의 신속화는 투명한 대화와 일관된 원칙이 담보된 사회적 합의에서 비롯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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