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성에서 규제로…정책 신뢰도 하락
"개인·기업 구분하는 '투트랙 전략' 필요"
[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매입임대사업자 제도'의 원점 재검토를 시사하면서 기업형 임대주택 시장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다주택자의 투기 수요를 차단하겠다는 취지지만, 1인 가구 주거 대안으로 떠오른 기업형 코리빙(Co-living·공유주거) 사업자들이 현행법 상 동일시되는 탓에 사업 안정성에 타격을 입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권과 정치적 상황에 따라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오락가락 정책' 탓에, 한국 임대주택 시장에 진입하려던 외국계 자본마저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정책 불확실성에 '코리아 디스카운트' 우려
1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이 SNS를 통해 매입임대 다주택자를 지목하며 매입임대사업자 제도 폐지를 시사한 가운데, 현장에서는 이 같은 광범위한 규제 시사가 주거 시장의 선진화를 이끌던 기업형 임대사업자들까지 고사시킬 것이란 비판이 거세다.
매임임대사업자 제도가 문제로 지목된 이유는 아파트를 사들여 임대하는 방식이 실질적인 주택 공급 효과 없이 가격만 띄우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중단에 이어 매입임대 제도까지 손질해 시장의 투기 수요를 완전히 걷어내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이 같은 임대 사업을 통해 주거를 공급하고 있는 기업형 임대사업자들의 사업 전망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형 임대사업은 크게 직접 땅을 매입해 건물을 짓는 '건설임대'와 기존 노후 건물을 사들여 리모델링하는 '매입임대'로 나뉜다. 도심 내 부지 확보가 어려운 현실상 다수 기업들이 노후 모텔이나 오피스를 매입해 주거 시설로 바꾸는 '매입임대' 방식을 병행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대통령의 발언은 갭투자로 수백 채를 사들이는 '빌라왕'이나 아파트 투기꾼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지만, 현행법상 기업도 똑같은 '매입임대사업자'로 분류된다"며 "이미 지난 정부와 이번 정부를 거치며 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 혜택이 사라졌는데, 이번에 양도세 중과 배제 혜택마저 폐지된다면 사실상 사업을 접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 육성에서 규제로…정책 신뢰도 하락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정책의 불확실성'이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정부는 전세 사기 예방과 1인 가구 주거 안정을 위해 '기업형 장기임대주택'을 육성하겠다고 공언했다. '신유형 장기임대주택' 도입을 논의하며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를 약속했지만, 하루아침에 육성 대상에서 규제 대상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정책 리스크는 해외 투자자들의 이탈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글로벌 자산운용사와 투자기관들은 한국의 1인 가구 증가세와 코리빙 시장의 성장 잠재력을 높게 평가해 투자를 타진해왔다. 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정책 기조가 투자 철회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A사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의 기업형 임대 시장에 큰 관심을 보이며 구체적인 투자 논의가 오갔다"면서 "하지만 최근 규제 강화 움직임과 오락가락하는 정책을 보며 '한국 시장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며 투자를 보류하거나 철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정책이 시장의 신뢰를 주지 못하면 양질의 민간 임대주택 공급은 요원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기업형 임대업체 B사 관계자 역시 "건설임대를 주력으로 하지만 도심 내 다양한 주거 수요를 맞추기 위해 매입형 사업도 확장하고 있는 단계"라며 "단순히 집을 사서 묵혀두는 것이 아니라, 낙후된 건물을 현대적인 주거 공간으로 재탄생시켜 공급을 늘리는 '밸류애드(Value-add)' 활동을 투기와 동일선상에 놓고 규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인·기업 구분하는 '투트랙 전략' 필요"
전문가들과 업계 관계자들은 '옥석 가리기'를 위한 법적·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민특법)'은 자본금과 운영 능력을 갖춘 기업형 사업자와 개인 다주택자를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 '임대사업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투기 억제책이 나올 때마다 건전한 사업자까지 유탄을 맞는 구조적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B사 관계자는 "기업형 임대는 전세 사기 걱정 없이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양질의 주택을 공급하는 순기능이 있다"며 "개인의 무분별한 매입임대는 규제하되, 주거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형 사업자는 별도의 카테고리로 분류해 육성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처럼 개인과 기업을 한데 묶어 규제한다면, 결국 피해는 안정적인 월세 주택을 찾는 청년층과 1인 가구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정부가 시장의 현실을 반영해 보다 정교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장에서는 이번 논란이 기업형 임대 시장의 구조조정을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형 사업자들은 규제를 버티지 못하고 도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살아남은 소수의 대형 사업자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겠지만, 전체적인 공급 물량 축소와 투자 위축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기업형 및 개인 임대 사업자를 통한 주택 공급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며 "임대주택 공급이라는 본연의 기능에 집중해 제도를 개선하고 시장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doso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