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채 위험가중치 상향 시 1.7조 달러 매도 압박 현실화
[서울=뉴스핌] 채송무 기자 =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 관세 위협과 그린란드 영토 야욕이 유럽과의 '금융 전쟁'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럽이 미국의 물리적 압박에 맞서 법과 자본이라는 정교한 무기로 반격에 나서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새로운 리스크 요인이 부상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최근 CNN 인터뷰에서 "나는 신뢰가 훼손되었다고 생각한다"며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계약을 훼손하며 합의된 사항을 반복적으로 훼손하면 상대측은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다"고 미국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어 유럽 의회는 EU-미국 무역협정 비준을 전격 동결했다. 동맹국의 영토를 탐내고 일방적 관세를 부과하는 국가와는 신뢰 기반의 계약을 맺을 수 없다는 강력한 거부 의사 표명이다. 23일 하나증권 리서치센터 허성우 애널리스트는 이를 단순한 '무역 전쟁'을 넘어선 '금융 전쟁'의 서막으로 분석했다.
무역협정 비준 동결이 가져올 파장은 상상 이상이다. 미국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누려온 '동등성(Equivalence)' 지위가 상실되면서, 미국 자산이 더 이상 유럽 자산과 동일한 안전성을 보장받지 못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바젤Ⅲ의 신용리스크 표준방법론에 따르면 미국을 포함한 신용도 높은 OECD 국가의 국채는 위험가중치가 0%로 설정돼 있다. 그러나 유럽 당국이 미국을 '신뢰할 수 없는 국가'로 재규정해 위험가중치를 상향 조정한다면 미 국채시장에 큰 파장이 불가피하다. 자본비율 유지가 시급한 유럽 은행들이 미 국채를 대거 매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럽 보험사들에 적용되는 솔벤시 규정까지 동원돼 미국 자산 보유 한도가 설정되거나 금리 민감도가 조정된다면 파급력은 은행권보다 훨씬 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숫자로 보면 위협의 강도가 더욱 선명해진다. 2025년 12월 기준 해외 투자자의 미 국채 보유 비중은 전체 발행 잔액의 30% 수준이다. 특히 이번 관세 위협 대상이었던 유럽 8개국(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의 미 국채 보유 규모는 약 1조7000억 달러로, 전체 해외 보유분의 19%이자 전체 미 국채 발행 잔액의 6%를 차지한다. 8개국 합산 규모는 최대 보유국인 일본보다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유럽 8개국에 대한 추가 관세 위협을 철회하며 그린란드에 대한 '미래 협상 프레임워크'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당 프레임워크는 구체적인 실체와 이행 방안이 불분명한 상태다.
허성우 애널리스트는 "트럼프가 영토 사수와 관세 철회를 결정한 배경 중 하나는 유럽이 법(규제)과 돈(자본)으로 미국 금융시장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카드가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영토(그린란드)와 관세라는 물리적 카드로 위협한다면, 유럽은 법과 규제, 그리고 자본이라는 정교한 수단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문제는 이러한 신뢰 훼손이 금융시장에 미칠 장기적 영향이다. 허 애널리스트는 "올해도 트럼프의 TACO(위협, 혼돈, 합의, 결과)는 지속될 전망"이라며 "미국에 대한 신뢰도 훼손은 장기물 텀 프리미엄 상승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고 경고했다.
작년 4월 '해방의 날' 선언 이후 깎여 나간 미국의 신뢰도는 이제 가파르게 상승 중인 장기물 텀 프리미엄을 더욱 밀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뢰 훼손이 장기물 금리를 상승시키는 가운데, 커브 스티프닝(장단기 금리차 확대) 장세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dedanhi@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