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선변제금 설정-보증보험 가입 절차 등 허술한 전세지원 제도가 피해 키워
전세제도 바뀌어야…전세대출 줄이고 대출 원금 집주인이 갚도록 해야
[서울=뉴스핌] 이동훈 선임기자 = "4년간 투쟁, 성과는 절반…생업도 포기하며 싸웠습니다."
2022년 이른바 '빌라왕' 사건을 계기로 전국을 뒤흔든 전세사기. 그 피해자들을 대표하는 전세사기 깡통전세 전국피해자 대책위원회의 안상미 위원장은 4년 가까이 이어온 투쟁을 돌아보며 "어쩌다 보니 벌써 4년이네요. 생업을 포기하며 싸워왔지만 성과는 절반 정도"라고 말했다.
위원회는 법적 단체가 아닌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자발적 모임으로, 집행부는 모두 자비로 생활과 대외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안 위원장은 "사명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다. 그저 내 일이어서 겁 없이 덤벼든 것"이라며 처음 전세사기를 당했을 때의 좌절과 자책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이어 그는 "활동을 하면서 깨달았다. 전세사기는 내 잘못이 아니라 사회의 잘못"이라고 강조했다.

◆ 전세사기 청년·노년층 피해 심각…인천만 사기피해 청년 4명 사망
안 위원장은 무엇보다 전세사기를 '흔한 사기피해'로 치부하고 마치 피해자가 잘 몰라서 당했다는 인식이 아직도 있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전세사기는 여타 사기와 다르죠. 피해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전세를 들어 돈을 벌겠다는 사람은 없어요. 그저 그동안 우리 사회가 그래왔던 것처럼 집을 살 돈이 없는 사람들이 보금자리를 얻기 위해서 하는 게 전세죠. 전재산을 통틀어서 넣은 거고요. 그걸로 사기를 쳤다면 그사람의 인생에 사기를 친 것이죠"
'잘몰라서' 사기를 당한 것도 아니라는 게 안 위원장의 부연이다. "전세 사기는 기획적으로 움직였어요. 바지 임대인이 있고 실체는 누군지 아직도 잘 드러나지 않았죠. 심지어 집주인은 물론이고 관리사무소, 중개인, 건축주까지 한 패가 된 경우도 봤고요. 중개업자도 전세사기 피해자가 있습니다. 등기부등본 확인해서 선순위 근저당 확인하는 거 다들 알고 있어요. 그래도 당합니다. 저도 여러 차례 전세를 계약했지만 결국 사기를 당한거고요"
안 위원장은 어떻게 전세사기를 당했을까. 그는 인천 미추홀구의 한 동짜리 아파트를 전세로 들었다. 2020년 이곳으로 와서 7200만원의 보증금을 내고 전세를 들었다. 집주인은 바로 미추홀구를 쑥밭으로 만든 '건축왕' 남헌기였다. 2022년 재계약 시점에 건축왕은 갑자기 3000만원을 더 올려줄 것을 요구했고 안 위원장은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할 수 있고 전월세 상한제가 있는 만큼 5% 외 올려줄 수 없다고 맞섰다. 이에 360만원을 추가해 전세보증금은 7560만원이 됐다. 그리고 몇달 뒤 해당 집이 경매에 넘어간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안 위원장에게 전세사기가 찾아왔다.
전세사기를 극복한 것은 '운이 좋았다'는 게 안 위장의 이야기다. 그는 전세사기특별법이 제정되기도 전 경매가 시작됐다. 어떻게 대응을 해야할 지 몰랐던 그는 피해자 대책위원회를 구성한 후 전세사기 주택에 대한 경매를 늦춰줄 것을 요청했고 몇차례 유찰된 결과 안 위원장은 자가 낙출을 받았다. 사고 싶지 않았던 집을 1억2000만원에 매입하게 된 것이다. 그나마 전세사기특별법에 따라 연 이율 1.8%대 저리대환대출을 받을 수 있어 한시름 놓았다고 안 위원장은 설명했다.
"경매를 늦춰달라는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은행의 재산권 행사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에서였죠. 나중에야 경매가 정부 지시에 따라 중지됐지만 이렇게 사기 피해를 인지한 직후 경매가 진행돼 한푼도 못받고 쫓겨난 피해자도 많았죠"
4년 가까이 지났지만 피해자의 상황은 딱히 좋아지지 않았다. 특히 피해자의 70%에 이르는 청년들의 문제가 심각하다. "지금까지 인천에서만 4명의 피해자가 돌아가셨어요. 모두 청년층 나이였죠. 그중 한 분은 저와 같이 대책회의를 한참하다가 귀가하셨는데 그 후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죠. 이들 20~30대 사회 초년병 청년은 누구에게도 말을 못하는 아픔이 있었어요. 더구나 사회 분위기가 '몰라서 전세사기를 당한 너희 잘못'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이들은 답답하셨겠죠" 특히 노년층의 피해가 심각하다는 게 안 위원장의 말이다. 노년층은 청년층과 달리 복구할 시간과 체력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공공임대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인데 전재산을 다 날리고 공공임대로 들어가는 어르신들을 볼 때 가슴이 아팠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 전세사기 피해가 커진 이유는 허술한 전세 지원제도 때문
이처럼 사기 피해자 일파만파 커진 것은 전세제도에 대한 당국의 관리가 허술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임대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전세사기꾼도 있었으며 전세보증도 가입 한다고 말해놓고 가입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불발되는 이유는 전세계약 이후에나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한 현행 제도도 영향을 끼쳤다고 안 위원장은 말했다. 전세보증이 가입된 것을 확인한 후 전세계약을 맺었어도 피해가 크게 줄 수 있었을 것이란 말이다.
현행 전세사기특별법은 그래도 초창기에 비해서는 많이 개선된 바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게 안 위원장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법이 '복불복'을 만들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당장 안 위원장 본인만 해도 '전세사기 피해' 금액은 추가해준 360만원만 인정됐다. 또 전세사기특별법 이전 은행에서 신용대출로 받아 경매 자금으로 쓴 피해자에게는 연 이율 1%대 저리대환대출을 수용해주지 않고 있다. 경매가 빨리 진행된 집은 특별법에 따른 전세 피해자 지원대책을 받기가 더 어려우며 집주인은 하난데 여러 가구가 세를 살고 있는 다가구주택의 경우 경매 권리관계가 복잡해 LH도 쉽게 접근할 수가 없다. 때문에 다가구 피해자의 고통은 더 커진다. 또한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기간을 한정해 그 이후 보증금을 못돌려받은 세입자는 과거처럼 특별법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그는 최우선 변제금액 설정에 대한 모순을 거론했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2015년 8000만원 보증금에 대해 2700만원이 최우선 변제금으로 설정됐다가 2023년 1억4500만원 이하 보증금에 4800만원이 최우선 변제금이 됐다. 하지만 2023년 이전 첫 계약을 했다가 2023년 이후 재계약을 했어도 이후 전세사기를 당했으면 최우선 변제금은 2700만원이 된다는 게 안 위원장의 설명이다. 특히 이는 판사의 재량에 따라 달라지는데 어떤 판사는 인정해주고 어떤 판사는 인정해주지 않는 판결이 나오고 있다. "최우선 변제금이 올라가면 은행이 손해를 보니 은행은 회사 차원에서 강력한 대응을 하고 있지요. 하지만 피해자는 개개인이 은행과 싸우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옵니다. 피해자들이 힘을 합치면 대응할 수 있고 여당에서도 법 개정을 한다고 했으니 기대할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또 피해자의 선택지가 부족하다는 점도 거론했다. 안 위원장처럼 셀프낙찰을 받지 않는다면 LH가 경매에 참여해 집을 매입한 후 차액이 발생하면 이를 돌려 받고 10년 동안 거주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점이다. 안 위원장은 "사기 당한 전세금으로 10년 동안 거주할 수 있는만큼 이 제도는 나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정상 그곳에 살 수 없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에게 전세금의 절반이라도 돌려줘야합니다"고 말했다.
◆ 전세제도 바뀌어야 사기 없어져…전세 물권 인정하고 전세대출 줄여야 전세대출 원금은 집주인이 갚도록
집주인이 근저당을 갚지 못해 집이 경매로 넘어가 전세금을 못돌려받는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처럼 많은 전세 세입자들의 피눈물 속에도 현행 제도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을 알 수 없다고 안 위원장은 말했다. 즉 전세제도가 그대로 유지되면 전세 사기 피해자는 생길 수밖에 없으니 전세제도를 바꿔야한다는 게 안 위원장의 이야기다.
먼저 과도한 전세 대출이다. 전세대출은 이명박 정부 당시 전셋값이 천정부지 오르자 당시 야권인 현 여당과 시민단체의 해법 요구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쉬워진 전세대출은 결국 전셋값을 더 끌어올렸고 지금도 전셋값이 떨어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이유가 됐다. "집 매맷값의 70% 이런 식으로 한도를 정해 전세 대출을 해줘야합니다. 집주인이 달라는대로 전세 대출을 해주면 전셋값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어요. 물론 전세대출 축소와 전셋값 하락은 시차가 있겠지만 이는 계약갱신청구권 활용으로 상쇄할 수 있고요"
특히 전세 대출의 원금을 세입자가 아닌 집주인이 갚도록 하자는 게 안 위원장의 이야기다. "은행에서 지급하는 전세대출은 세입자의 활용을 막기 위해서인지 집주인에게 바로 전달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집주인이 보증금을 안돌려주면 원금을 세입자에게 갚으라고 하지요. 집주인이 대출 원금을 '만만한' 세입자에게 안돌려 줄 수 있으니 '무서운' 은행에 자체 추심팀을 활용해서 받아내도록 해야지요. 이렇게 되면 작정하고 사기를 치는 집주인이 아니라면 전세금을 갚을 수밖에 없고 세입자는 전세 사기 위험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또 전세사기 피해 대책으로 거론되고 있는 '배드뱅크' 등의 창설을 위해 전세를 물권으로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전세가 물권이 되면 이를 기반으로 채권 발생이 가능해진다. 전세사기가 발생하면 전세권을 배드뱅크가 인수해 세입자에게 떼인 보증금을 먼저 돌려주고 난 후 집주인에게 구상할 수 있게 된다. 자연스런 선구제후구상이 되는 셈이다.
이와 함께 안 위원장은 정부의 전세사기 예방대책 중 하나인 전세교육에 대해서는 중단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나 지자체가 홍보하고 있는 '전세사기 똑바로 알기' 등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대책입니다. 오히려 전세사기 피해자를 바보로 몰고 있는 것이죠.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LH의 피해주택 경매 신속추진, 전세사기 피의자에 대한 엄중 처벌 등이 더 필요한 부분이겠죠"
끝으로 안 위원장은 "혼자서 절망하고 있는 피해자를 만나 대책을 상담해줬고 그 결과 시청 등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며 고마워하는 사례가 여럿 있었죠. 그때마다 내가 하는 일에 뿌듯함을 느낍니다. 전세사기가 사라질때까지 위원회의 일은 계속될 겁니다"라며 말을 맺었다.
donglee@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