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이란 전역에서 확산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최근 2주간 사망자가 500명을 넘어선 가운데, 미국의 개입 가능성과 이에 대한 이란의 군사적 경고가 맞물리며 정국 불안이 격화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경제난에 대한 항의로 시작된 시위는 신정 체제 자체를 겨냥한 정치적 저항으로 번지며, 이란은 내우외환이 겹친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 사망자 500명 넘어…경제 시위, 반체제 항쟁으로 비화
1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시위대 490명과 치안·보안 인력 48명 등 최소 538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체포된 시위대는 1만600명 이상으로 집계됐다.
이란 당국은 공식적인 사망자 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로이터는 해당 수치를 독자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노르웨이 인권단체 이란인권(IHR)은 이란 정부의 인터넷 통신 차단으로 정보 유입이 제한된 상황이라며, 확인되지 않은 보고를 기준으로 할 경우 사망자가 2000명을 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란 당국은 이번 시위를 미국과 이스라엘 등 외부 세력이 선동한 폭동으로 규정하며 강경 진압에 나섰다. 국영 언론은 사망자들을 "무장 테러리스트의 희생자"로 묘사했고, 수도 테헤란과 마슈하드 등 주요 도시에서는 야간 시위와 함께 화재와 폭발음이 이어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번 시위는 물가 급등에 항의하며 시작됐으나, 곧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유지돼 온 성직자 중심의 신정 체제 전반에 대한 반발로 확산됐다. 2022년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로 평가된다.
해외에서도 연대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는 주말 동안 이란 대사관 발코니에서 이란 국기가 철거되고, 이슬람혁명 이전 왕정 시절의 상징이 걸리는 장면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됐다.
이란 정부는 이를 문제 삼아 영국 대사를 외무부로 초치했으며, "내정 간섭적 행위"라며 항의했다고 국영 언론이 전했다.

◇ 트럼프 "미국은 도울 준비"…이란은 미군·이스라엘 공격 경고
정국 불안은 미국과의 긴장 고조와 맞물리며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무력이 사용될 경우 미국이 개입할 수 있다고 거듭 경고해 왔으며, 최근에는 "미국은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3일 고위 참모들과 회동해 이란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 회의에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댄 케인 합참의장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에서는 ▲반정부 세력의 온라인 활동 지원 ▲이란 군·민간 시설을 겨냥한 비밀 사이버 작전 ▲추가 제재 ▲군사 타격 가능성까지 폭넓은 선택지가 논의될 전망이다.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단말을 이란에 반입해 인터넷 차단을 우회하도록 돕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다만 당국자들은 이번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적인 결론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로, 실제 행동에 앞서 외교·군사적 파장을 면밀히 검토하는 성격이라는 설명이다.
백악관과 국무부는 최근 베네수엘라 작전 사례를 거론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국무부는 소셜미디어에 "트럼프 대통령이 무언가를 하겠다고 말하면, 실제로 실행한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이란은 즉각 반발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은 "미국이 이란을 공격할 경우 이스라엘과 중동 내 모든 미군 기지와 함정이 합법적인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며 미국을 향해 "오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개입 가능성에 대비해 경계 태세를 높인 것으로 전해졌다.

◇ 팔라비 왕세자 "곧 여러분 곁에"…정치 행보 본격화 신호
이란 마지막 국왕의 아들이자 미국에 망명 중인 레자 키루스 팔라비 왕세자(65)는 11일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시위대를 향해 "곧 여러분 곁에 서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분의 형언할 수 없는 용기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며 "전 세계의 동포들이 여러분의 목소리를 함께 외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팔라비는 이란 체제가 "심각한 용병 부족에 직면해 있으며, 많은 무장·치안 인력이 현장을 이탈하거나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 같은 주장은 독자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는 시위 참가자들에게 "군중과 함께 행동하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지 말라"며 항의를 이어갈 것을 촉구했다.
같은 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미국의 지속적인 지원을 요청하며 "나는 가능한 한 빨리 이란으로 돌아갈 준비가 돼 있다"며 "이번에는 이란 국민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팔레비 왕세자는 1978년 미국으로 유학 갔다가, 이듬해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발발해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자 망명 생활했다.
◇ "정권 붕괴는 미지수"…전문가들, 체제 약화엔 무게
전문가들은 이번 시위가 단기간 내 정권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직 미국 외교관이자 이란 전문가인 앨런 에어는 로이터에 "정권이 결국 시위를 진압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 과정에서 훨씬 약화된 상태로 남을 것"이라며 "엘리트층의 결속은 유지되고 있고 조직된 대안 세력도 부재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지난해 이스라엘과의 전쟁 여파, 역내 동맹 약화, 심각한 경제난이 겹친 상황에서 대규모 민심 이반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가 이란 신정 체제의 내구력을 근본적으로 시험하고 있다는 분석에는 큰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wonjc6@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