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 수익성 개선 효과는 '옛말'...환율 10% 오르면 영업이익률 0.29%p 하락
[서울=뉴스핌] 정탁윤 기자 = 연말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며 국내 대기업들에도 비상이 걸렸다. 달러화 매출 운용부터 조달 및 투자 전략 전반을 재점검하는 분위기다. 환율 리스크에 내년 투자 계획을 아직 세우지 못했거나 재조정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특히 미국에 조 단위 투자를 진행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업계와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배터리업계는 환율이 오르면 투자비 부담도 커져 환율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8월 한미 정상회담 당시 삼성과 SK, 현대차, LG 등 주요 그룹들은 1500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거기에 더해 최근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정부가 주요 대기업에 달러를 매도하라고 압박하고 있어 곤혹스러운 처지다.
◆ 환율 고공행진 예의주시...대기업 美 현지 투자 비용 부담도 커져
24일 재계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500원을 위협하면서 정부의 시장 개입이 늘고 있다. 지난 주 대통령실이 국내 7대 주요 대기업들을 불러 달러의 원화 환전을 요청한데 이어 금융당국은 당분간 해외 투자를 유도하는 증권사 신규 마케팅을 중단하라고 했다.

기업들은 달러 안정화를 위한 정부 방침에 공감하면서도 달러 운용에 대한 압박에 곤혹스런 분위기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환율 1500원 얘기가 나오는 시기에 용산에서 대기업들을 호출한 것 자체가 부담"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한미 정상회담 당시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달러만 해도 수십 조원인데 이제와서 또 달러를 원화로 바꾸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기업 손목 비틀기 아니냐"고 말했다.
내년 환율 전망 및 투자 계획 불확실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 한국경제인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 10곳 중 6곳이 내년 투자 계획이 없거나 아직 정하지 않았다. 국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110곳)의 59.1%가 내년 투자 계획을 아직 수립하지 못했거나 없다고 답했다.
지난해 이맘때 주요 대기업들의 환율 전망도 대부분 빗나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올해 1월 50대 기업의 환율 전망을 분석한 결과 달러당 1350∼1400원(33.3%)이 가장 많았다. 달러당 1300∼1350원(29.6%)이 뒤를 이었다. 현재 수준인 달러당 1450∼1500원을 전망한 기업은 11.1%에 불과했다.
◆ 일시적 수익성 개선 효과는 '옛말'...환율 10% 오르면 영업이익률 0.29%p 하락
환율이 10% 오르면 대기업 전체 영업이익률이 0.29%포인트 떨어진다는 산업연구원 조사도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철강업계는 환율이 오르면 철광석과 연료탄 등 원자재 수입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환율 변화에 민감하다. 특히 최근엔 글로벌 철강공급 과잉에다 중국의 저가 공세 등으로 원자재 가격 인상을 제품가격에 반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중동 등에서 달러로 원유를 사들이는 정유·석유화학업계도 비상이다. 환율이 오르면 비용 부담이 커져, 연간 10억 배럴 이상 원유를 수입하는 정유업계에선 달러당 원화값이 10원 내리면(환율 상승) 환차손 부담이 1000억원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 등 국내 항공사들도 대표적으로 환율에 민감하다. 항공기 리스(대여)비나 유류비를 대부분 달러로 지급하기 때문이다. 환율이 10원 변동할 때마다 200억~300억원의 외화평가손익이 발생한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환율 상승이 수출 중심인 한국 경제에 유리했던적도 있지만 최근들어 미국 등 해외 현지생산 비중이 증가하고, 환헷지 달러화 결제가 늘어나면서 효과가 제한적이고 오히려 투자 비용이 늘어나는 효과가 부각되고 있다"며 "특히 우리 대기업들은 가격보다 기술과 품질 경쟁이 치열한데, 고품질 원자재 수입가격이 오르면 영업이익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tack@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