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비용 6조원 부담 속 '선별 투자·재무 관리' 강화
[서울=뉴스핌] 이찬우 기자 = 현대차그룹 미국발 관세 리스크가 상수로 굳어지는 국면에서 '투자와 긴축'을 동시에 밀어붙이는 이중 전략에 나설 전망이다.
관세 부담을 감내하며 미래 경쟁력을 준비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내년 경영의 무게추는 확장보다 재무 관리로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올해 관세 비용으로만 6조원 이상을 지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이 비용이 일회성 변수에 그치지 않고, 향후에도 반복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관세 부담이 '임시 비용'이 아니라 사실상 고정비처럼 재무 구조에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트럼프 관세 파동의 최대 피해자로 거론된다. 한미 양국 협상을 통해 당초 25%에서 15%까지 관세율을 낮추긴 했지만, 15% 역시 수익성을 압박하기에는 충분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현대차그룹은 투자를 멈출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글로벌 경쟁사 대비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아온 자율주행과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경쟁력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여기에 미국 내 생산·공급망 강화를 위한 현지 투자도 불가피하다. 특히 미국 제철소 건설을 포함한 현지 밸류체인 구축은 성장 투자라기보다 관세와 정책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어적 투자 성격이 짙다. 미국 안에서 만들고 조달하는 구조를 갖추지 않으면 관세 리스크는 장기적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깔린다.
이 같은 관세 압박 속에서도 현대차그룹은 중장기 투자 기조 자체를 흔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룹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국내에 총 125조원을 투자해 전동화와 SDV, 자율주행 등 미래차 경쟁력과 생산 인프라를 강화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국내 공장을 글로벌 마더팩토리로 육성하고 수출 지역을 다변화하겠다는 전략 역시 미국 관세 리스크를 구조적으로 분산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관세 비용이 고정비처럼 작용하는 상황에서 생산 효율과 공급망 안정성을 높여 중장기 비용 부담을 낮추겠다는 계산이다.
다만 투자 방식은 한층 선별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자율주행과 SDV, 인공지능 등 미래 기술 투자 역시 전면 확대보다는 상용화 가능성과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분야를 중심으로 우선순위를 조정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모든 영역에서 공격적으로 나서기보다는 재무 여력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투자 강도를 조절하는 전략이다.
이 같은 기조 변화는 최근 인사에서도 읽힌다. 현대차그룹은 그룹 내 대표적인 '재무통'으로 꼽히는 서강현 사장을 현대제철 사장에서 그룹 기조실장으로 복귀시키며 재무 관리 라인을 강화했다. 기조실은 그룹 전반의 재무와 전략을 총괄하는 핵심 조직으로, 이번 인사는 관세 리스크와 대규모 투자 부담이 겹친 국면에서 '전략보다 숫자가 앞서는 시기'에 들어섰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해석이 나온다.
긴축의 여파는 협력사와 부품업계로 번질 가능성도 크다. 완성차 업체가 관세 부담을 온전히 흡수하기 어려운 구조인 만큼, 단가 인하나 물량 조정 압박이 협력사로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에 관세 부담이 장기화될수록 '완성차는 버티지만 협력사는 더 어렵다'는 구조가 심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 비용이 일시적 변수가 아니라 구조적 리스크로 자리 잡은 상황"이라며 "현대차그룹은 투자와 긴축을 동시에 요구받는 쉽지 않은 국면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에는 실적보다 현금 흐름과 재무 안정성 관리가 더욱 강조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chanw@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