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뉴스핌] 이형섭 기자 = 12월 바다는 차갑지만, 동해해양경찰서 사람들은 따뜻하다.
연말 기온이 뚝 떨어진 동해 앞바다에서 구조·경비 임무를 수행하는 동해해양경찰서 안에는, 또 하나의 '생명 구조 활동'이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출동복 대신 헌혈증을 들고 신고 무전 대신 기부 약정을 통해 생명을 잇는 동해해경의 얼굴들이다.
◆"아이에게 물려줄 건 집이 아니라 세상"…"현장에서 못 도와도, 혈액은 건너갈 수 있다"
경비구조과 송일호 경위가 처음 헌혈을 시작한 건 "그냥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쌓인 횟수가 어느덧 133회. 그는 2024년 1월 헌혈 100회를 채워 대한적십자사 헌혈 명예장을 받았다.
송 경위의 헌혈은 숫자로만 남지 않는다. 2015년과 2024년, 그는 백혈병 환자를 위해 40장의 헌혈증을 두 번에 걸쳐 기부했다. 여기에 2010년 첫째 딸, 2012년 둘째 딸이 태어난 해에는 각각 유니세프 정기 기부를 시작해 '두 아이의 이름으로' 지금도 나눔을 이어가고 있다.
"가족이 생기니까,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어떤 모습이면 좋을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집 한 채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회를 물려주는 게 제 몫이라고 믿습니다" 송 경위가 말하는 헌혈과 기부는 '특별한 선행'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세상을 향한 최소한의 책임이다.

306함 이복율 경감의 나눔 방식도 비슷하다. 그는 지금까지 81번 헌혈대에 팔을 내밀어 헌혈 금장을 받았다. 2018년 백혈병 환자 사연을 접한 뒤에는 헌혈증 25장을 한 번에 기부했고 감사 인사를 전해온 환자 가족의 목소리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말한다.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당시에는 텔레비전 화면 너머로 본 처참한 현장에 가슴이 먹먹해졌고, 결국 선택한 건 '또 한 번의 헌혈'이었다. "직접 현장에 갈 수는 없지만 혈액은 국경도, 바다도 건너갈 수 있잖아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나눔이었습니다." 이복율 경감은 헌혈을 '멀리 있는 이웃에게 마음을 보내는 배송 수단'이라고 표현했다.
◆"구조요원에게 헌혈은 또 하나의 출동"…푸른 바다를 지키는 손길, 붉은 피로 생명을 잇다
임원파출소 우종수 경사는 59회 헌혈로 금장을 받은 다회 헌혈자다. 그에게 헌혈은 이벤트가 아니다. 출동 일정표처럼, 주기적으로 체크해야 할 '업무'에 가깝다.
"해양경찰은 급박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헌혈도 같은 선상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고 현장에서 수술실에서 누군가에게 들어갈 피라고 생각하면 출동 나가는 마음으로 헌혈합니다." 우 경사는 오는 29일에도 또 한 번 헌혈로 연말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3016함 조우리 경장은 39회 헌혈로 은장을 받았다. 출동·항해로 일정이 수시로 바뀌는 함정 근무자는 정기 헌혈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조 경장은 '틈나는 시간마다' 헌혈 일정을 끼워 넣는다.
"계기라기보다는,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계속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한 번의 큰 기부보다, 여러 번의 작은 실천이 더 오래 간다고 믿어요." 그의 꾸준함은 동료들에게 '나도 한 번 더'라는 자극이 되고 단체 헌혈 행사 참여율을 끌어올리는 숨은 힘이 되고 있다.
동해해양경찰서는 매년 '사랑의 단체 헌혈' 행사를 열며 혈액 수급난 해소와 헌혈 문화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10회 이상 헌혈에 참여한 직원만 40여 명에 이를 정도로, 헌혈은 이미 조직 내부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바다에서는 조난 신호에 응답하고 육지에서는 헌혈 요청에 응답하는 사람들. 동해해경의 나눔은 '해양안전'이라는 본업과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다.
동해해양경찰서 관계자는 "바다를 지키는 손길이 헌혈과 기부를 통해 생명을 지키는 손길로 이어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직원들과 함께 일상 속 나눔 문화를 이어가고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공공기관의 역할을 꾸준히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onemoregive@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