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바름 기자 = 후보가 아닌 현직 대법원장이 정치인들에게 둘러싸여 질타 받는 모습은 흔치 않다. 손가락질 받는 이유가 특정 재판 때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22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역사에 남을 한 장면을 연출했다는 평가를 내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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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름 정치부 기자 |
지난 13일 국회 법사위 국감에 출석한 조희대 대법원장은 90분간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는 이번 법사위 국감의 증인으로 채택됐다. 정작 그러나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조 대법원장을 "참고인"이라고 소개하면서도 사실상 대법원장 1인을 대상으로 한 국감을 실시했다.
여야는 대법원장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는 것을 국회 관례로 지켜 왔다. 자칫 '사법부 위 입법부'라는 권력 서열로 비쳐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입법과 사법, 행정은 국가 권력의 상호 견제와 균형이라는, 독재를 막는 최후의 보루인 만큼 사법부에 대한 국감 역시 '사법행정'이라는 제한적 영역에서만 실시해왔다.
그렇기에 대법원장은 피감기관을 대표해 국감 첫날 국감장에 나와 인사말을 한 뒤 상임위원장의 허락을 얻어 이석하는 것이 상호 예의였다. 오랜 예의가 이번 국감에서는 지켜지지 않았다. 대법원장을 '입법부의 잔치'인 국감장에 증인·참고인으로 부른 것도 모자라 이석 요구조차 무시했다.
입법 권력이 사법 권력의 우위에 있다는 방증이자, '선출 권력이 임명 권력보다 우위에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진실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조 대법원장은 앉아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 대신 허공만 바라봤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추 위원장을 향해 '대법원장 이석'을 요구했을 때도 반응이 없었다. 무소속 한 의원이 모욕적인 합성 사진을 내보이며 조 대법원장을 희롱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법원장 1인 국감'이라는 초유의 90분이 끝난 뒤, 조 대법원장은 그제서야 자리를 떴다.
삼각형은 찌그러졌다. 입법부와 행정부만 남았다.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두 권력 모두 '선출된' 권력이다. 사법부를 발 아래에 둔 입법부 또는 행정부 가운데 누가 옥상옥이 될지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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