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주한미군 사령관의 '눈'과 '귀' 역할을 담당했던 김영규(金永圭) 전 공보관이 26일 오후 1시30분경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8세.
'한미동맹의 산증인'이란 수식어가 붙은 그는 1976년 입대 후 카투사(KATUSA·미군에 배속된 한국군)로 차출돼 주한미군과 인연을 맺었다. 연세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미2사단 공보실에서 미 2사단 기관지 '인디언 헤드' 기자로 근무하면서 1976년 북한군의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당시, 미군 장병들이 북한군과 대치하면서 판문점의 미루나무를 제거하는 '폴 버니언 작전'을 지켜보고 기록으로 남겼다. 전국 미군기지 주변을 돌며 혼혈아의 비참한 삶을 조명하는 기사를 써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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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9일, 44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은퇴한 주한미군 김영규 전 공보관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오동룡 기자] 2025.09.26 gomsi@newspim.com |
1979년 전역 후 미 2사단 공보실에 정식 채용된 뒤 1985년 당시 서울 용산의 주한미군사령부로 자리를 옮긴 뒤 지금껏 주한미군사와 한미연합사령부, 유엔군사령부 공보관으로 한미 양국군의 가교 역할을 했다. 기자에게는 판문점을 지금까지 1000번 넘게 출입했는데 1989년 임수경 밀입북 사건, 2002년 미선이·효순이 사건, 2017년 북한군 오청성씨의 귀순 사건을 현장에서 지켜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내외신 기자들을 이끌고 남북 회담 등이 진행된 판문점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그는 기자와 만나 "44년간 판문점을 찾은 횟수가 1500여 차례는 될 것"이라며 "반세기 가까이 한미동맹과 남북분단의 현장을 언론인들과 함께 누빈 경험이 너무도 소중하다"고 했다.
김 전 공보관은 2002년 미선이·효순이 사건 직후인 2003년 3월 기자와의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미군들은 우리를 동반자라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1960~70년대식 생각에 매여 그들이 우리를 얕잡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미군들은 좋은 일 하고도 욕 먹는 '바보짓'을 많이 했다"고 탄식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공보관은 주한미군 사령관의 '눈'과 '귀' 역할을 한다"면서 "유엔사의 역할이 커져 최근 유엔사 전담 한국 공보관이 따로 생겼다는 게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고 퇴임 인터뷰에서 말했다. 한미연합사는 2023년 10월 20일 경기 평택 서부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한미동맹 7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김 공보관에게 한미동맹에 기여한 공로로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김영규 전 공보관은 "은퇴 후에도 한미 동맹의 발전을 위한 일을 할 계획"이라고 의욕을 불태웠으나, 돌연 그를 덮친 병마(病魔)는 그의 열정을 앗아가고 말았다. 김 전 공보관은 주한미군뿐 아니라 한미연합사·유엔사도 담당하며 한미동맹의 발전에 기여한 최장수·최고령 공보관으로 영원히 기록될 전망이다. 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에 마련됐고, 발인은 28일 오전 10시, 장지는 천주교 용인추모공원이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이수진씨, 아들 홍석씨, 딸 민지씨, 사위 조덕연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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