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거버넌스포럼, 태광산업 EB발행관련 세미나
"상법개정 첫 시험대...충실의무 취지 살리지 못해"
[서울=뉴스핌] 송기욱 기자 = 태광산업의 교환사채(EB) 발행을 둘러싼 가처분 소송이 기각되면서 자사주 법리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법원이 자사주를 여전히 단순한 '자산'으로 취급해 주주권 침해와 지배구조 문제를 가볍게 본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22일 서울 여의도 IFC에서 세미나를 열고 태광산업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 자기주식 교환사채의 법적 쟁점에 대해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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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송기욱 기자 = 2025.09.22 oneway@newspim.com |
세미나를 주최한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이번 판결은 상법 개정 이후 첫 시험대였지만 법원이 충실의무 조항의 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며 "자사주 공시와 회계 처리에서 우리 관행이 해외와 달라 법적·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법 개정으로 이사회 충실의무가 도입됐음에도, 실제 판결에서는 그 의미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문제 제기다.
이날 발제에 나선 송옥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사주 취득은 배당과 같은 자본거래이고, 처분은 신주발행과 동일한 효과를 낸다"며 "법원이 여전히 자사주를 단순한 회사 자산으로만 보는 한, 주주 지분 희석과 경영권 강화 문제를 외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자사주를 단순히 '자산'으로 보는 기존 판례가 현실적인 지배구조 문제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송 교수는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으로 ▲가처분 제도의 구조적 한계 ▲자사주 법리 해석의 문제 ▲태광산업 사건의 특수성 등을 꼽았다. 그는 "가처분은 본질적으로 법원이 쉽게 내리기 어려운 강력한 조치라, 회사 손해를 고도로 소명하지 못하면 기각되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이번 사건도 그 벽을 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즉, 절차의 성격상 소송 단계에서 원고가 이기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가 이번 판결에도 그대로 작용했다는 뜻이다.
이어 그는 "자사주 처분은 사실상 신주발행과 다름없는데도 판례는 단순 자산 매각으로 취급하고, 경영상 목적 요건도 요구하지 않는다"며 "이는 국제 기준과도 맞지 않는 낡은 해석"이라고 꼬집었다. 해외 주요 시장에서는 자사주 처분을 실질적으로 신주발행과 동일하게 보지만 한국 법원은 여전히 '자산 매각'으로 취급해 이사회 재량을 넓게 인정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송 교수는 태광산업이 발행한 EB 물량이 전체 주식의 25%에 달한 점을 강조했다. 그는 "사실상 신주 4분의 1을 발행한 것과 같아 지배구조에 큰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데도 법원은 이를 회사 손해로 인정하지 않았다"며 "이사회가 포괄적으로 결의했다가 뒤늦게 보완한 절차적 하자까지 감안하면 법원이 너무 소극적이었다"고 비판했다. 즉, 대규모 발행으로 경영권 구조가 흔들릴 수 있는 사안임에도 법원이 '회사의 손해가 명백하지 않다'는 이유로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토론자로 나선 천준범 변호사는 "취득 때는 주주평등 원칙을 강제하면서 처분 때는 일반 자산 매각으로 보는 것은 법리적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자사주 취득과 처분이 법리적으로 동일한 효과를 내야 함에도, 현행 판례가 취득과 처분을 전혀 다른 논리로 다루는 모순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자사주를 단순 자산으로 보면, 이사회가 처분 시 특정 주주에게 넘길 수 있다는 논리가 된다"며 "이는 곧 이사회가 배당 가능 이익만 있으면 주주의 지분율을 임의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취득 단계에서는 주주평등 원칙을 강제하면서 처분 단계에서는 단순 자산 매각으로 취급하는 것은 법리적 모순"이라며 "자산설은 더 이상 유지돼서는 안 되고 신주발행과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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