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석·서기석·경위석·소송당사자석 등 세부 규정 명시
전문가 "장애인 접근권은 기본 인권...예산 제약 없어야"
법원행정처 "추가 수요 발생할 경우 재정당국과 협의할 것"
[서울=뉴스핌] 홍석희 기자 =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이 올해 5월 발행한 '법원 시설에서 장애인 등의 접근권 제고 방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해외 선진국 중 법원에서의 장애인 접근권을 가장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 법원의 장애인 접근권 보장은 수정헌법 제14조 평등보호조항에 기초하고 있으며, 건축장벽법(ABA·Architecture Barriers Act)과 미국장애인법(ADA·The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등으로 구체화해 보장 범위가 점차 확장했다.
![]() |
미국의 지방 법원 시설 등이 적용 받는 미국장애인법(ADA) 관련 규정의 일부. 법정 내 휠체어 공간의 최소 확보 기준을 명시하고 있다. [자료='법원 시설에서 장애인 등의 접근권 제고 방안에 관한 연구'(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 발췌] |
◆ 美, '미국장애인법' 세부규정서 법정 기준 별도 제시
미국의 법원 청사도 일반 공공업무시설과 마찬가지의 시설 기준이 적용된다는 점은 우리와 동일하지만, ADA 세부 규정에서 법정 시설 기준을 별도로 정하고 있다. 그 밖에도 법정에 적용될 수 있는 시설 기준들이 다른 항목들에 포함돼 있다.
그 중 '법정' 항목은 판사석·서기석·부서기석·법원경위석·속기사석·소송당사자·소송대리인석 등의 법정요소와 휠체어 회전공간, 바닥공간 등에 대한 설치기준을 세부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장애인평등대우법이 법원 시설에 직접 무장애 시설 기준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외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반 공공업무시설과 동일한 시설 기준을 적용하고 있으며, 별도의 법정 시설 기준은 마련돼 있지 않다.
다만 독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주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법무부가 발간한 가이드라인은 '법정 접근성 시설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동행인 좌석 확보·청각장애인을 고려한 전자음향시스템 구축 등을 규정하고 있다. 해당 가이드라인 개발에 법원과 검찰청의 시설담당부서, 판사, 건축가, 장애인단체 대표자 등이 참여해 실효성을 높일 수 있었다.
일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장애인 등 접근권 보장 내용의 법원 시설 기준을 별도로 구분하고 있지 않다. 다만 일본은 배리어프리법에 따라 지자체별 조례로 그 기준을 강화할 수 있어 규범적 확장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일본의 경우 ▲휠체어 이용 가능한 화장실 ▲휠체어로 접근 가능한 주차장 ▲건물 출입구 자동문 설치 ▲보조견 동반 가능 시설 등이 대부분의 전국 고등재판소 및 지방재판소에 설치돼 있다.
![]() |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사진=뉴스핌 DB] |
◆ "법원, 상징성 있는 공공기관...적극적으로 방안 찾아야"
우리나라의 경우 장애인등편의법에 일반 공공업무시설에 적용되는 편의시설 시설 기준이 정해져 있어 법원 청사도 적용 받는다. 그러나 문제는 해당 기준은 향후 지어질 법원 청사에만 적용된다는 점이다. 그나마도 법원의 특수성을 감안한 시설 기준은 따로 없는 실정이다.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적어도 공공기관의 경우 과거 건축물도 적용할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라며 "기존 법원 청사를 증축 혹은 개축할 때 적극적으로 장애인등편의법을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원도 장애인 이동권 향상을 위한 자체적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올해 2월 '법원을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 수립 방안'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유니버설 디자인(UD·Universal Design)은 장애 유무, 연령, 성별, 국적 등 개인의 차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디자인 철학을 의미한다.
해당 연구 용역도 새 청사를 지을 때 적용되는 기준이지만, 법원만의 별도 시설 기준을 마련한다는 의미가 있다. 다만 관련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는 숙제가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법원이 보다 적극적으로 관련 예산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회도 장애인인 국회의원들이 당선된 이후에 조금씩 변하고 있다"며 "법원도 상징적 의미가 큰 중요한 공공기관인 만큼, 그동안 무관심했다면 앞으로 적극적으로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법원을 비롯한 기존 건축물은 비장애인 위주로 지어졌기 때문에 그동안 장애인들이 피해를 봤던 것"이라며 "장애인의 접근권은 기본적 인권에 해당한다. 인권의 문제가 예산의 제약을 받아선 안 되고 오히려 예산을 지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원행정처는 예산 확보 문제와 관련해 "향후 추가적인 수요가 발생할 경우 재정당국과 지속적인 협의를 거쳐 필요할 경우 예산 증액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꾸준히 장애인 편의시설 등 확충 및 보완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hong9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