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선 생활화된 헬멧·수신호, 한국은 낯선 풍경
[서울=뉴스핌] 조승진 기자 = "매년 자전거를 타다가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리를 들어요. 픽시 자전거뿐 아니라 모든 자전거가 위험하다는 얘기에요. 자전거가 업인 저도 얼마전 헬멧에 금이 갈 정도의 사고를 겪었어요. 하지만 거리에서 헬멧 쓰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찾기 쉽던가요?"
![]() |
사회부 사건팀 조승진 기자 |
취재 현장에서 만난 한 '전문 자전거' 수리 가게 주인의 말이다. 최근 브레이크가 없는 픽시 자전거 사고가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연이어 발생하면서 이에 대한 규제 논의가 뜨거운 데 대해 비판의 소리를 낸 것이다. 기자가 만난 자전거 라이더들은 픽시 자전거만 규제 대상으로 삼는 것에 의문을 드러냈다. 십여 년간 자전거 동호회 회원으로 활동한 한 라이더는 "기본적인 자전거 수신호를 익히지 않은 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때문에 사고가 날 뻔한 적이 많다"며 "픽시 자전거든 아니든, 수신호를 모른 채 타면 위험한 건 같지 않냐"고 했다.
현장 단속에 나서는 경찰도 픽시 자전거만 콕 집어 규제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외형상 일반 자전거와 픽시 자전거가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있어, '잡고 보니 픽시'인 것이지 '픽시니까 잡았다'는 식의 단속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전거 전용 도로가 제대로 운용되지 않는 점도 문제다. 자전거 전용 도로에 주차하거나 아예 차도처럼 이용하는 차량이 많아 자전거 이용자들이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결국 보호장구 미착용, 자전거 수신호와 같은 기본 안전 수칙 미숙지, 유명무실한 자전거 인프라 등 자전거 사고는 '픽시'만의 문제가 아닌 복합적인 원인으로 발생한다.
기자가 몇 년 전 영국 런던에서 자전거를 탄 경험을 떠올려보면, 그곳의 자전거 문화는 확연히 달랐다. 자전거를 타는 라이더들은 모두 헬멧을 쓰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전거 수신호가 일상에 정착돼 있었다. 방향을 바꿀 때마다 손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자전거 도로에 주정차 돼 있는 차량이 있거나, 차량이 도로를 침범해 주행하는 일도 없었다. 처음 자전거를 도로에서 탈 때 신호가 바뀌어도 조금 무서워서 머뭇거린 적이 있었는데, 주위 자동차 운전자가 끝까지 기다려줬던 기억 역시 생생하다. 자전거 문화와 인프라 모두 정착됐단 얘기다. 이 때문에 자동차와 함께 도로를 이용해도 위험하다는 느낌이 크게 들지 않았다.
K-팝, K-드라마, K-푸드 등 한국 문화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한류'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지금, 자전거 환경이 다른 나라에 비해 뒤처져야 할 이유가 있을까. 자전거 사고와 관련해 픽시 자전거만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문화와 인프라 모두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라이더는 헬멧과 같은 보호장구 착용, 수신호 숙지 등 기본적인 안전 수칙을 지키고, 국가는 자전거 도로 운용 현실화와 자전거 안전 규제 등을 더욱 강하게 시행해야 한다. 자전거 사고는 '픽시'만 콕 집어 '위험하니 타지 말라'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자전거 이용을 장려해야 하는 만큼 자전거 문화와 인프라도 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선진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할 때다.
chogiz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