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주가 띄우려고 비트코인 매입
영업이익보다 비트코인 보유량
가격 하락할 때 부메랑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기업들이 비트코인 매입으로 몸값을 띄우는 데 잰걸음이다.
영업손실을 내는 기업들조차 비트코인 보유 물량을 앞세워 프리미엄을 받으며 시가총액을 크게 확대하고 있다.
비트코인을 사들이거나 매입 계획을 발표한 기업들의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자 말 그대로 '비트코인 러시'가 벌어지는 모양새다.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데 '주당 비트코인'이라는 새로운 잣대까지 등장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지난 2022년 FTX 붕괴와 같은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충격이 번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열에너지 업체 KULR 테크놀로지는 2025년 1분기 940만달러의 영업 손실을 냈지만 시가총액은 2억1100만달러로 뛰었다. 1억1800만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영국의 웹사이트 디자인 업체인 더 스마터 웹 컴퍼니도 같은 사례다. 올해 4월까지 6개월 동안 순이익이 9만3000파운드에 그쳤지만 투자자들이 업체가 보유한 2억3800만파운드 규모의 비트코인을 이유로 프리미엄을 제공, 시가총액이 5억6000만파운드로 불어났다.
소프트웨어 업체에서 사실상 비트코인 저장고로 변신한 업체 스트래티지는 지난 5년간 주가가 3000% 치솟았다. 2020년부터 비트코인 베팅에 나선 업체는 최근 한 주 사이에만 25억달러 규모로 물량을 사들였다. 2020년 이후 보유량은 두 배 이상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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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사진=로이터 뉴스핌] |
시장 전문가들은 주력 비즈니스의 수익성과 무관하게 비트코인을 보유한 기업들의 내재 가치에 투자자들이 커다란 신뢰를 보내고 있다고 말한다.
암호화폐를 추가로 매입하기 위해 자금을 조달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기업들의 가치가 보유중인 비트코인보다 더 크게 평가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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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표지판 [사진=블룸버그] |
기업들은 비트코인과 그 밖에 토큰을 사들이기 위해 신주를 발행하거나 자금을 차입하는 실정이다. 기업 재무 관계자들은 코인 매입을 빠르게 실행할수록 더 높은 프리미엄을 받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퀀스 커뮤니케이션즈 주가는 비트코인 매입을 시작한 이후 단기간에 160% 폭등했지만 투자자들이 기대하는 만큼 코인을 추가로 사들이지 않자 주가는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고 이전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기업들의 비트코인 매입이 거대한 트렌드를 형성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는 '주당 비트코인', 즉 특정 회사의 주식 한 주당 보유한 비트코인 개수가 성공의 척도로 통한다고 FT는 전했다.
공격적인 베팅은 업종에 제한이 없다. 금광 채굴 업체들부터 바이오테크, 호텔, 전기차, 전자담배 업체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비트코인 광풍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디지털 자산 시장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가 한 몫 했다고 시장 전문가들은 판단한다. 우호적인 정책 여건이 소위 '암호화폐 재무 전략 기업'이 급증하도록 부추겼다는 얘기다.
벤처캐피탈 업체 드래곤플라이 캐피털의 롭 하딕 제너럴 파트너는 FT와 인터뷰에서 "말도 안되는 비트코인 러시가 벌어지고 있다"며 "기업들의 주력 비즈니스가 우선 순위에서 밀리면서 리스크가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광기에 가까운 암호화폐 베팅에 경고의 목소리가 꼬리를 문다. 나틱시스 자산운용의 베누아 펠루아는 FT에 "기업들이 주가 프리미엄을 정당화하려면 비트코인 매입을 지속해야 한다"며 "문제는 끝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2년 코인 가격 급락에 연쇄 채무불이행이 벌어지면서 자금시장이 패닉에 빠졌고, 거래소 FTX는 붕괴했다.
암호화폐 가격이 무너질 때 충격의 크기를 누구도 정확히 가늠할 수 없다고 시장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필연적으로 토큰 가격의 하락이 투자 기업들 주가를 강타할 것이라는 얘기다.
부채를 동원해 비트코인을 매입한 기업들은 이자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채무 이행을 위해 비트코인을 팔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면 코인 가격을 더 큰 폭으로 떨어뜨리고 기업 대차대조표가 위험에 빠지는 악순환이 벌어질 전망이다.
벤처캐피탈 키록의 케빈 드 파툴 최고경영자(CEO)는 "자산 가치의 지속적인 상승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뒷받침되지 않는 시스템에 엄청난 양의 위험을 주입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영업 실적이 악화되는 기업들이 주가를 띄우기 위한 전략으로 비트코인 매입에 나섰고, 적어도 일시적으로 효과를 거두는 것으로 보이지만 수면 아래에 거대한 리스크가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다.
shhw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