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키움과 롯데가 대결한 지난달 30일 고척돔의 조명이 켜지자 키움의 1번 타순에 오른 한 이름이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프로 20년 차 '플레잉 코치' 이용규(39)였다.
KBO 리그에서 '플레잉 코치는 낯선 이름이다. 코치 겸 선수가 경기장을 누비는 경우는 드물다. 기록 시스템조차 이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했다. 키움이 지난 4월 18일 이용규의 코치 선임을 발표했을 때 KBO 사무국의 전산 시스템은 혼란에 빠졌다. '선수 겸 코치'라는 전례 없는 조합이 명단에서 이탈과 등록을 반복했다. 선수 말소도 아니고 코치 등록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이용규는 묵묵히 '플레잉'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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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이용규. [사진=키움 히어로즈] |
이용규는 이날 자신이 여전히 '현역'임을 증명했다. 1번 지명타자로 나서 4타수 2안타 1볼넷 1도루 2득점을 기록했다. 1회 첫 타석에서 삼진으로 물러섰다. 하지만 박세웅과의 9구 승부는 이 베테랑이 왜 '교과서 같은 1번 타자'였는지를 상기시켰다.
5회 선두 타자로 나선 이용규는 기습 번트를 댔다. 공을 2루수 방향으로 살짝 밀어내며 내야 안타를 만들어냈다. 상대 수비는 전형적인 번트 수비 포메이션을 펼쳤지만 이용규는 빈 틈을 찾아 정확히 찔렀다. 1루수는 앞으로, 2루수는 베이스 커버에 들어가는 틈을 파고들었다. 가장 단순한 기술처럼 보이는 번트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3회엔 내야 안타에 이은 도루로 통산 397호 도루를 작성했다. 이제 단 3개만 더하면, KBO 역사상 단 두 명뿐인 '2000안타-400도루 클럽'에 가입한다. 클럽 회원 1호는 '전설의 1번 타자' 전준호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이용규는 "플레잉 코치지만 은퇴를 앞둔 건 아니다. 내년에도 선수로 뛰고 싶다"며 결코 안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팬들은 경기 후 이용규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용규는 살아 있는 교과서다. 품격 있는 야구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키움 구단도 "플레잉 코치이기에 가능한 리더십"이라며 추켜세웠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지만 때로는 기록 너머의 이야기가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psoq133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