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스포츠 국내스포츠

속보

더보기

[KYD 셀럽에 길을 묻다] ①황영조 감독 "헝그리 정신이 나를 만들었죠"

기사입력 : 2024년10월08일 17:30

최종수정 : 2024년10월08일 17:30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한국 마라톤의 역사는 손기정과 황영조란 불세출의 두 스타가 만든 이중주라고 보면 정확하다. 손기정은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36년 독일 베를린에서 올림픽 최초로 2시간 30분 벽을 깨며 우승, 한국인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다. 그러나 손기정은 나라를 뺏긴 설움과 일장기를 달고 뛴 한을 오랫동안 가슴속에 품고 살았다.

56년의 세월이 흐른 뒤 혜성처럼 나타난 황영조는 이런 손기정의 응어리를 일거에 해소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몰라도 그는 출전하는 대회마다 일본 선수들을 꺾고 우승했다.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선 80세의 손기정이 현장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일본 선수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2년 90세의 손기정은 편안한 마음으로 영면에 들어갔다.

반면 황영조는 디펜딩 챔피언으로 참가해야 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앞두고, 부상으로 조기 은퇴했다. 너무 빠른 은퇴였다. 국민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후 황영조는 팬들의 기억에서 점차 잊혔지만, 한 순간도 마라톤을 떠난 적이 없었다. 20대 중반에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00년부터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 감독으로 단일 팀 최장수 사령탑 기록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황 감독은 마라톤 선수로는 특이하게 아주 외향적이고 사교적이다. 누구를 만나도 할 말은 다 한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어른이기를 거부하는 피터 팬 같은 느낌이다. 아직도 에너지가 넘친다. 기자는 오랫동안 수많은 마라톤 선수를 만나봤지만 황 감독 같은 성향을 가진 선수를 본 기억이 없다. 황 감독과 동갑내기 친구인 이봉주와 양극단에 있다고 보면 맞다.

그렇다고 황 감독을 띄엄띄엄 봤다가는 큰 코 다친다. 속사포처럼 뱉어내는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무릎을 딱 치게 될 기막힌 명언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 감독. 2024.10.08 zangpabo@newspim.com

다음은 대담 전문.

-장환수 기자: 이 시대의 명사들이 청년들에게 길을 제시하는 '셀럽에게 길을 묻다' 다섯 번째 게스트로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님을 모셨습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뉴스핌 스포츠전문기자 장환수입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황영조 감독: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장환수 기자: 먼저 시청자들께 간단하게 인사 말씀 한 번 해주시죠.

황영조 감독: 금메달리스트 황영조 감독입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25년째 후배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고요. 대한올림피언협회 사무총장도 맡고 있습니다. 또 다양한 일들을 좀 하고 있습니다.

-장환수 기자: 본격적인 질문을 하기에 앞서 최근에 러닝 열풍이 거세지 않습니까. 코로나가 종식되고 나서 최근 황 감독님이 출연한 유튜브를 보면 출연하실 때마다 100만 조회수가 나오고 있는데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황영조 감독: 100만까지는 아니고요. 전체적으로 좀 나오긴 했습니다.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지금 대한민국엔 러닝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40대, 50대가 주요 고객층이었는데 지금은 20대, 30대가 많이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지금 대한민국의 생활 스포츠에서 러닝이 가장 뜨겁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장환수 기자: 그러면 MZ세대들을 겨냥한 어떤 프로모션을 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시겠군요.

황영조 감독: 그렇죠. 제가 생각할 때는 이제 각 분야에서 러닝에 관심을 가지고, 대회도 많이 열지 않습니까. 요즘 스포츠 숍에 가면 러닝화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러닝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지금 대한민국에 러닝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저는 천재가 아니예요. 그렇게 보였을 뿐이죠"

-장환수 기자: 이제 본격적으로 질문에 들어가겠습니다. 선수 시절부터 연대기별로 해서 황 감독님을 소개하는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육상 입문을 아주 늦게 하셨고요. 고등학생 때 하셨고. 그런데 성과는 마라톤 데뷔 첫 대회부터 내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우리 황 감독님은 천재라는 수식어를 달고 사신 분인데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황영조 감독: 제가 중학교 때는 사이클 선수였습니다. 고등학교를 가면서 사이클을 하는 학교에 진학해야 되는데, 사이클이라는 운동은 워낙 장비가 고가이다 보니까 할 형편은 못 됐고요. 그런데 마라톤이라는 운동은 진짜 신발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쉽게 말씀드리면 '빤스'만 있으면 될 정도니까요.

-장환수 기자: 그 시절에는 그랬죠.

황영조 감독: 지금 아프리카 선수들도 그래요. 맨발로도 뛰잖아요. 신발이 없어서. 마라톤은 사실 내가 어떤 꿈과 희망을 가지고만 있으면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주는 운동입니다.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한테 공평하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운동입니다. 사실 우리가 보면 주변에 돈 없으면 못하는 운동이 많거든요. 돈이 있어야지만 할 수 있는 운동이 많잖아요. 인기 스포츠는 거의 다 그렇잖아요. 마라톤은 사실 어떻게 보면 헝그리 스포츠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케냐,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에서도 못 사는 나라가 지금 세계 마라톤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번에 파리 올림픽에 한 명도 참가를 못했지 않습니까. 마라톤을 했던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마라톤이 상당히 부끄러운 현실이긴 합니다.

[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황영조 감독은 자신의 성공 비결은 천재성이 아니라 가난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했다. 2024.10.08 zangpabo@newspim.com

-장환수 기자: 그렇다면 우리 손기정 선생님도 계시고, 못 사는 국가의 선수들이 더 잘 한다. 이런 말씀인 겁니까.

황영조 감독: 그렇죠. 마라톤이라는 운동은 자기와 싸워야 하는 운동이다 보니까 어떻게 보면 헝그리 정신이 필요한 거죠. 정신력으로 뛰는 거지, 잘 먹어서 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아프리카 애들이 잘 먹어서 잘 뛰는 게 아니에요. 제가 2011년 대구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마라톤 기술위원장 겸 총감독을 맡아 페이스메이커들을 선발하기 위해서 케냐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들의 훈련 캠프는 산 속에, 창고 같은 데에 있고 유리조차 없습니다. 창문을 종이박스로 막고 자고 있더라고요. 제가 왔다고 닭을 한 마리 잡아가지고 요리를 해줬는데, 상당히 귀한 손님한테 접대를 한 거였어요.

-장환수 기자: 금메달리스트가 오셨으니까요.

황영조 감독: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닭은 간식입니다. 소고기 정도는 먹어야 뭐 고기 좀 먹었다 할 정도로 지금 대한민국은 그렇게 배가 불렀단 말이죠. 반면 케냐 선수들은 주식이 '우갈리'라고 옥수수가루를 먹지 않습니까. 스프처럼 해서 먹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까 (이 친구들은) 무겁지도 않아요. 살이 안 쪄요. 가볍다 보니까 부상이 없잖아요.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선수들은 잘 먹고 뛰다 보니까 늘 부상을 안고 삽니다. 그러니까 1년 열두 달 중에 보통 열한 달 정도 운동을 해줘야 되는데 지금 그 정도 운동하는 선수들이 많지가 않아요. 부상으로 인해서 훈련이 연결이 안 된다는 거죠.

-장환수 기자: 감독님의 성공 비결은 지독한 훈련입니까.

황영조 감독: 당연하죠. 저한테 조금 전에 마라톤 천재라고 말씀하셨는데 보다시피 저는 천재는 아니에요.

-장환수 기자: 맞는데요. 제가 그동안 지켜본 걸로는 그렇던데요.

황영조 감독: 아니, 그렇게 느끼는데 제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잘 모르시잖아요. 그건 못 봤잖아요. 그냥 표면적인 것만 가지고 천재라고 지금 말씀을 하시는 거고, 저는 사실 천재는 아니에요. 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당히 노력을 했습니다. 운동은 누가 시켜서 하는 운동이 아니에요. 마라톤은 내가 하고자 해서 열심히 해야 되는 겁니다. 누가 시켜서 시키는 대로 해서 된다면 다 금메달 따죠. 지금 내가 지도하고 있는 선수들이 내가 시키는 대로 다 할 것 같아요. 안 됩니다. 본인이 해야 되는 거예요. 시키지 않는 훈련까지도 해줘야 되는데, 시키는 것도 요즘은 선수들이 못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훈련 강도와 양을 계속 줄여줄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어쩔 수가 없는 거죠.

◆"해녀의 아들이 아니라, 가난을 타고나서 금메달을 딴 거죠"

-장환수 기자: 우리 청년들이 들으면 아주 좋은 말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다시 돌아가서 감독님의 아버님은 어부였고, 어머님은 해녀였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감독님의) 타고난 폐활량은 DNA의 결과다 이런 말이 있는데요.

황영조 감독: 저는 바닷가인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났습니다. 조그마한 시골 어촌마을에서 태어났는데 당연히 어촌 마을이라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거는 고기를 잡는 거고요. 저희 어머님은 제주도에서 물질하는 해녀분이신데, 어머님이 강원도 동해 바다 쪽에 물질하러 오셨다가 저희 아버지를 만나가지고 결혼을 하게 되고 저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이 해녀이고, 아버지가 어부라서 제가 타고난 건 아니에요.

가난을 타고난 거지, (DNA를 타고난)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해녀의 아들로 태어난 제주도 사람들 중에 세계적인 마라토너가 많아야 되잖아요. 오히려 거기는 세계적인 마라톤 선수가 한 명도 없어요. 지금 세계 마라톤을 주도하고 있는 아프리카 케냐 선수들처럼 타고난 선수가 되려면 고지대에서 태어나야 합니다. 산소가 희박한 고지대에서 태어난 애들이 타고난 거죠. 저는 타고났다고 하면 그런 환경이 아니고 가난을 타고나서 헝그리했기 때문에, 저는 이거 아니면 죽는다 생각하고 뛰었기 때문에 금메달을 딴 거예요.

-장환수 기자: 감독님은 데뷔 대회부터 성적이 나기 시작했죠. 벳푸 마라톤에서 처음 한국 신기록을 깼는데 마의 2시간 10분 벽을 깨셨죠. 그리고 네 번째 출전 대회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셨습니다. 그런데 첫 대회부터 그렇게 하는 선수들은 드문 게 아니라, 거의 없거든요.

[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 감독. 2024.10.08 zangpabo@newspim.com

황영조 감독: 마라톤 데뷔를 하려고 해서 한 게 아니었어요. (1991년 동아마라톤에서) 사실은 한 20km 그냥 뛰고 오려고 출전했던 대회인데. 그 당시 91년도에는 제가 5000m, 1만m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마라톤 선수가 아니고 5000m, 1만m 선수였죠. 91년도 아시아육상선수권에 가서 1만m 금메달을 딴 선수입니다. 그런데 페이스메이커로 20km쯤 뛰려고 나갔다가, 30km 지점에서 다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끝까지 뛰었고요. 3등을 했어요. 그렇게 데뷔전 아닌 데뷔전을 치르게 된 거죠. 그 대회를 통해서 제가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표로 선발이 됐고 영국 셰필드 하계 유니버시아드에서 당시 대회 신기록으로 제가 우승을 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본격적인 담금질을 시작하죠.

내가 이제 2시간 10분 벽이 다가왔으니까 제대로 뛰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준비를 해 다음해 2월 달에 벳푸-오이타 마이니치 마라톤에서 한국 기록을 세우게 되죠. 당시 한국 기록은 2시간 11분대였는데 저는 10분대도 아니고 9분대도 아니고 2시간 8분대로 기록을 단축시켰습니다. 한국 마라톤을, 일본과 비교했을 때 한 30년 정도를 우리가 단축시켰다고 늘 얘기해왔습니다. 일거에 세계 톱클래스 반열에 한국 마라톤을 올려놓은 계기가 됩니다.

-장환수 기자: 그러니까 우리 황 감독이 지금으로 치면 오타니 선수와 같은 그런 괴물이다, 천재다 이런 소리를 듣는 거죠.

황영조 감독: 천재라 하는 것은 저를 높게 평가해 주신 거고요. 사실 당시 어린 나이에 마라톤을 할 나이는 아니었어요. 장거리에 좀 더 집중을 해야 될 나이였죠. 제가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도 참가 선수 중에서 제일 나이가 어렸습니다. 그 정도로 제가 마라톤을 할 나이가 아닌데 하게 된 거죠.

zangpabo@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변상문의 화랑담배] 제2회 광복군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 가릉호텔에서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식이었다. 미국 한인 동포들이 보내온 돈 4만원으로 조직한 군대였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0억 원 정도 된다.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 참모장 이범석 장군, 제1지대장 이준식, 제2지대장 고운기, 제3지대장 김학규, 제5지대장에 나월환을 임명했다. 지대장은 지금의 사단장에 해당한다. 모두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를 비롯하여 남북 만주에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에 직접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군 출신이었다. 한국광복군 훈련반 제1기 졸업사진. [사진= 독립기념관]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포고문을 통해 "국내외 동포들에게 알립니다. 1940년 9월 17일부로 대한민국 광복군을 창설하였습니다. 광복군은 1907년 8월 1일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한 날이 바로 광복군 창설일임을 선언합니다. 광복군은 구 한국군의 후신으로 33년간에 걸친 의병과 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을 계승한 전통 무장 조직입니다"라고 했다. 대한제국 국군-의병-독립군의 군맥(軍脈)과 군혼(軍魂)을 분명하게 잇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부대 편성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여단, 사단 6단으로 편성하였다. 총 3개 사단을 조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원이 적은 상황에서 우선 지대를 만들고, 각 지대를 구대와 분대로 연계한 전투부대를 구성했다. 임시정부에서 1940년 9월 19일 중국 국민당 정부에 통보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직원 명단'에 의하면, 부대 규모가 총사령부와 4개 단위부대, 여기에다 조선혁명군 부대까지 포함하여 5000여 명이었다. 임시정부에서는 1941년 12월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1942년에는 미국 측에 "미국이 제주도를 해방 시켜 주면,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를 제주도로 옮긴 후, 광복군이 미군과 함께 한반도 상륙작전을 전개하겠다."라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실제로 미국 OSS 부대(지금의 CIA)와 1945년 4월부터 8월까지 강도 높은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 주요 훈련은 3개월 기간에 고공낙하, 암살법(권총에 특수장치를 하여 소리 없이 암살하는 방법), 통신(암호의 작성 및 해독법, 무전기 조작 및 수리), 교란 행동, 정보수집, 폭파 등 이었다. 일과는 07:00∼12:00 오전 훈련, 13:00∼18:00 오후 훈련, 19:00∼22:00 야간 훈련이었다. 주요 임무는 대한민국으로 낙하산과 잠수함으로 침투하여 미 공군 공습에 필요한 지형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일본군 군사시설 탐지 및 파괴 지하 유격대를 조직하여 연합군 상륙작전 시 제2선에서 연결하는 작전이었다. 마침내 1945년 8월 7일 모든 훈련을 마치고 국내진공작전 출정식을 개최했다. 개시일은 8월 10일이었다. 출정식 때 장준하 경기도 공작 반장은 "나는 조국광복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나의 죽음을 지불하면, 내 능력껏 그 대가가 조국을 위해서 결제될 것입니다. 나의 각오는 한 장의 정수표입니다. 발생인은 장준하, 결제인은 조국입니다"라는 유서까지 작성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08 08:00
사진
'포스트 이시바' 누구?...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직 사임을 공식화하면서, 일본 정국의 관심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로 쏠리고 있다. 집권당 총재가 곧 총리직을 맡는 일본 정치 구조상 이번 총재 선거는 사실상 다음 총리를 뽑는 절차다. 자민당은 조만간 새로운 총재 선거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2024년 9월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경합했던 주요 인사들이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정국 운영이 소수 여당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차기 총재가 야당과 어떻게 연대할지, 어떤 연립 구도를 짤지가 최대 쟁점으로 꼽힌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권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지난달 29~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다카이치가 23%, 고이즈미가 22%를 기록했다. 나란히 1, 2위다. 자민당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고이즈미가 32%로, 다카이치(17%)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카이치는 2024년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에게 역전패했다. 고이즈미 역시 의원 표에서 선두에 올랐지만 당원 표에서 밀리며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당내 기반과 대중적 인지도를 겸비해 차기 선거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주자들이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1981년생(44세)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2009년 중의원 첫 당선 이후 줄곧 '포스트 아베',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았다. 환경상, 농림수산상을 거쳤으며 개혁 성향과 젊은 이미지로 지지층을 넓혔다. 2024년 총선에서 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농림수산상으로 복귀해 쌀 유통 개혁 등 농정 개혁에 매진했다. 대중적 인지도와 '고이즈미 브랜드'라는 정치 자산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1961년생(64세)으로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는 여성 정치인이다. 2021년 총재 선거에 첫 도전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3위를 기록했다. 2024년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의원 72표, 당원 109표)를 얻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 총리에게 역전 당했다. 유일한 여성 후보로서 '보수의 아이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아베 전 총리와 가까웠던 의원 그룹이 주된 지지 기반이다. 이시바 정권에서 당직 제안을 거절하며 독자 노선을 유지해 왔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담당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하야시·모테기 등 잠룡도 주목 고이즈미와 다카이치 두 선두 주자 외에 잠룡들의 행보도 주목된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옛 기시다파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시바 정권의 2인자로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은 당내 경험과 풍부한 인맥을 강점으로 삼고, 아소 다로 전 부총리와 교류를 통해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5선 의원으로, 동기 의원들과 옛 니카이파의 지원을 받으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 총재 선거 이후에도 정국 '안갯속'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표와 당원·당우 표를 합산하는 방식이 원칙이지만, 긴급 시에는 국회의원과 지방 지부 대표만 투표하는 '양원 의원 총회'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 경우 의원 표의 비중이 커져 파벌 역학이 중요해진다. 차기 총재가 선출되더라도 곧바로 정권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헌법상 총리는 국회에서 지명되는데, 자민·공명 양당은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을 잃은 상태다. 따라서 야당이 단일 후보를 세워 결집할 경우, 자민당 총재가 총리로 지명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민당 총재가 총리에 오르더라도, 예산안·세제 개혁 법안 등 국정 운영은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차기 총재는 곧바로 '연립 확대'나 '정책 연대'를 추진할 수밖에 없고, 총재 선거 과정에서도 어떤 야당과 손을 잡을지가 핵심 화두가 된다. 결국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단순히 차기 지도자를 뽑는 절차를 넘어, 일본 정치가 다당제 속에서 어떤 연립 구도를 구축할지 시험대가 되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goldendog@newspim.com 2025-09-08 09:26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기사제목
기사가 번역된 내용입니다.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